“매듭 장식이 전통적인 것이라고 해서 단순히 전통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 현대인들이 보기에도 심미적으로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매듭으로 문고리를 만든다거나 매듭 장식을 응용해 와인병 담는 주머니를 만들고, 매듭 장식을 컵받침으로 사용하는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쓸 수 있도록 실용성이 가미된 작품들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 전통 매듭이 현대적인 멋으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오히려 전통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경복궁 뒤편 북촌에는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기와집 사이 골목을 돌아다닌다. 색색깔의 한복도 화사하지만 그 가운데 알록달록한 노리개의 술이 찰랑이는 모습이 시선을 끈다. 한 평생 노리개와 매듭 장식을 만들며 전통문화 전파에 헌신한 심영미 전통 매듭 기능 전승자(76)를 북촌의 동림매듭공방에서 만나봤다.
궁중 매듭 장인인 시왕고모님으로부터 3대째 이어온 매듭 장인
심영미 전승자의 시댁은 궁중에서 매듭 만드는 일을 했던 시왕고모님부터 시작해 줄곧 매듭과 장신구를 만들어오던 장인 집안이었다. 그의 시아버지는 당시에도 유명한 매듭 장인으로, 노리개와 장신구를 전문으로 만들던 시아버지의 공방에는 항상 50명 가까이 되는 처녀들이 노리개를 사려고 옹기종기 모여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심 전승자도 그 중 하나였다.
“단옷날이었던가요. 거리에 나갔는데 노리개가 눈에 띄었어요. 어찌나 색감도 좋고 아름답던지. 만드는 법을 배워보고 싶어지더라구요. 당시 제가 살림살이를 위해서 부업을 하려고 하는데 시아버님께서 노리개 공방의 일거리를 맡겨주셨어요. 공방에서 일거리를 가져다가 집에서 시키는 대로 만들어서 다시 드리는 방식이었지요. 그렇게 몇 번 납품을 했더니 시아버님께서 제가 잘한다고 생각하셨는지 공방에 들어와서 제대로 일을 시작해달라고 하셔서 들어가게 됐어요.”
매듭 제작 공방에서 일을 배우면서 점차 매듭 제작에 매력을 느끼게 된 심 전승자는 매일같이 공방을 드나들었다. 그런 심 전승자가 당시 아버지의 공방에서 함께 매듭 제작 일을 돕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심 전승자 부부는 지금까지도 서로 협력해 아름다운 매듭 제작에 힘을 쏟고 있다.
노리개의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는 술은 명주실로 만든다. 누에에서 막 뽑아낸 명주실은 잿물을 넣고 삶아 뻣뻣함을 덜하게 하고 부드러움을 가미하는 작업을 거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잿물의 양이다. 잿물을 너무 많이 넣으면 실이 녹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너무 적게 넣으면 실이 뻣뻣해 술의 가치가 떨어진다.
잿물에 삶은 원사는 잿물을 제거하기 위해 여러 번 헹군 뒤 물기를 제거한다. 물기가 완전히 제거된 후에야 염색을 시작할 수 있다. 염색은 심 전승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정 중 하나다. 색감을 구별하는 능력이 탁월한 심 전승자의 손을 거치면서 흰 원사는 오색빛깔 아름다운 색실로 탈바꿈한다.
“천연염료는 일반적인 화학염료와 달리 사용하고 나면 쉽게 색이 바래요. 처음부터 원하는 선명한 색을 내기도 쉽지 않지요. 저는 오랜 세월 익혀온 감으로 천연 염료에서 원하는 색을 뽑아내고 있어요. 어느 타이밍에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어떤 재료를 어느 정도 넣어야 하는지 등을 몸으로 익힌 것이지요.”
매듭 장식 문화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일본 등 동북아 국가에서도 널리 퍼져 있다. 심 전승자는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매듭이 최고라며 그 이유로 높은 완성도를 꼽았다.
“일본은 다회 등 끈 기술이 많이 발달돼 있어요. 그래서 기계로 실을 짜더라도 손으로 짠 것처럼 예쁘지요. 하지만 다회 사이에 심을 넣어 끈에 힘을 불어넣는 우리와는 달리 심을 넣지 않은 일본의 끈은 힘이 없어요. 또한 술의 매 가닥을 꼬아서 튼튼하게 만들지 않아 우리 것에 비해 완성도가 낮지요.”
“중국은 일본보다 더 해요. 중국은 술을 만들 때 리리앙실(인견실)을 사용하거든요. 실이 더 약하기도 한데다가 일본과 마찬가지로 술을 꼬지 않아 완성도가 떨어지죠. 중국의 매듭은 워낙 다양한 종류의 매듭이 많아서인지 특별히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매듭의 앞과 뒤가 똑같이 생긴 우리 것에 비해 중국의 매듭은 앞만 아름답고 뒤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에요.”
우리 전통 매듭, 단순한 전통으로 남지 않고 현대 장식으로 거듭나길 바라
평생 매듭을 만들어온 심 전승자는 처음 매듭을 만들고자 한 이유를 ‘색깔’이라고 꼽을 만큼 색감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색을 좋아한다. 그는 매듭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색’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예전에 태조 어진에 걸 유소(초상화 양 옆에 달아 꾸미는 매듭 장식)를 만든 적이 있어요. 낡은 어진 옆에 선명한 색감의 유소가 걸려 있으면 어울리지 않겠더라고요. 그때 어진은 낡은 상태였으니까 유소도 낡고 바랜 느낌이 나는 색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처음부터 바랜 색을 내는 것은 선명한 색을 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에요. 당시에 정말 염색에 신경 써서 유소를 완성했네요.”
색도 중요하지만 매듭의 의미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심 전승자는 말했다. 상황과 시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사용된 매듭은 법도 및 문화를 제대로 숙지한 상태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노리개나 매듭이나 모양이 다 달라요. 그리고 각기 다른 모양에는 각기 다른 뜻이 담겨있죠. 가령 매미 노리개는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안주머니에 자주 찼어요. 이슬만 먹고 사는 매미의 청렴결백함을 본받아서 과거에 급제해 나랏일을 할 때 재물을 탐하지 않는 훌륭한 인물이 되라는 의미지요. 또 매미가 땅 속에서 7년 동안 기다린 끝에 세상 밖으로 나오는 그 인내를 본받으라는 의미도 있어요. ”
“결혼식에서는 가슴에 단 노리개를 보면 결혼식의 주인공인지 하객인지 알 수도 있어요. 법도대로라면 일반적으로 가슴에 단 노리개의 술이 하나거나 둘이면 하객이고 남색, 노랑, 다홍색으로 된 술 셋이면 결혼식의 주인공이죠. 장식을 이용해 예의와 법도를 표현할 수 있는 거예요.”
“노리개와 매듭 장식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마치 넥타이와도 같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양복 정장을 잘 갖춰 입어도 넥타이를 제대로 매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듯이 제아무리 아름다운 한복을 갖춰 입는다 한들 노리개와 매듭 장식이 없으면 어딘가 부족해 보이지요. 어떻게 보면 매듭은 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예의를 갖춰 상대방을 정중히 대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렇듯 매듭 장식은 우리 복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한 축을 담당하고 있죠.”
심 전승자는 자신이 만든 매듭과 함께 시대에 길이길이 자신의 이름 또한 함께 남을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기쁘다며 매듭 만들기를 시작한 것에 한 치의 후회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태 현대인의 감각을 사로잡는 작품을 만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술이 긴 매듭을 지금 사람들은 더 좋아하지요. 아까 보여드린 매미 노리개도 원래는 그렇게 술이 길지 않아요. 술과 매듭을 잇는 부분도 본래 유리로 돼 있는데 제가 일부러 은으로 바꾸고 술도 더 길게 만들었어요. 현대에서도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면 전통 공예품도 단순히 전통에 묶여있을 게 아니라 시대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심 전승는 향후 매듭 제작을 위한 책을 펴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는 책에 자신의 평생 역작을 모두 수록할 것이라며 누구든 책을 읽기만 하면 매듭 제작법을 알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소소한 꿈을 밝히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심 전승자는 3대를 이어온 매듭장인으로서 이 시대만의 예술과 감성이 담긴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저는 매듭제작 전승자로써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가 이전 시대의 작품을 보며 그 시대를 느끼듯 후대의 누군가 또한 오늘날의 매듭 작품을 보고 ‘이것이 2000년대의 매듭 작품이었구나’ 하며 감탄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우리 매듭이 시대를 가리지 않고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해왔음을 후손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박정은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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