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 지배인이든 음식점 대표든 어느 자리에 있든 가장 중요한 것은 손님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A급의 재료와 서비스를 통해 손님을 만족시키는 것은 쉬워요. 그러나 B+급의 재료와 서비스를 A급, A+급으로 끌어올려 손님을 만족시키기란 대단히 어려워요. 피 나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죠.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프리미엄이라고 생각해요. 보다 저렴한 가격에 보다 높은 만족도를 제공해야 하는 거죠. 손님에게서 ‘이렇게 싼 가격에 이 정도 수준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라는 평가야말로 최고가 아닐까 생각해요.”
‘서울’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뇌리를 스치는 지역은 단연 ‘강남’이다. 2012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례없는 히트를 치면서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도 익숙해진 글로벌 명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명성 높은 강남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앞에서는 맥을 못 췄다. 코로나 여파로 강남 거리를 찾는 손님이 크게 줄면서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이 같은 위기에도 손님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레스토랑이 있다. 바로 ‘어거스트 힐’이다. 강남 상권에서 현재의 상호를 걸고 장사한 지 이제 4년 차에 접어든 레스토랑이지만 맛과 비주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서 SNS에 이른바 ‘강남 맛집’으로 소문났다.
이 레스토랑이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되기까지는 임병호 지배인(29)의 공이 매우 컸다. 오픈 당시 브랜딩, 마케팅, 인테리어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을 찾기란 힘들 정도다. 굵직한 절차를 직접 도맡아 처리했음에도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들과 한결 같이 믿어 주는 대표가 없었다면 어거스트 힐을 지금의 수준으로 키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임 지배인에게서 사람에 대한 믿음이 느껴졌다.
앳된 얼굴 이면엔 요식업에서 성공하겠다는 목표로 청춘 바친 노력 있어
레스토랑을 총괄하는 위치에 오른 지 햇수로 3년이 된 임 지배인을 본 사람들은 간혹 놀라곤 한다. 앳된 얼굴을 하고서 지배인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것이 사뭇 의외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럭셔리 및 하이엔드급 레스토랑의 지배인들은 대체로 나이가 어느 정도 있어요. 자신의 분야에서 오랜 기간 묵묵히 일하며 한 단계씩 성장해 비로소 지배인에 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요. 그분들에 비하면 저는 경력도 짧고 업무상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나 열정과 성실함만큼은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요. 또 상대적으로 더 젊기에 요즘 트렌드를 보다 빠르게 읽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다양한 마케팅에 도전하는 것을 꺼리지 않죠. 동료 직원들과 또래다 보니 소통이 수월한 것도 장점인 것 같아요.”
지배인으로서의 책임과 자부심이 엄청난 그도 처음부터 이 직업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임 지배인은 20대 초반에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요식업에서 성공하겠다는 꿈을 품게 됐다고 회상했다.
“돌이켜보면 갓 스무살이 됐을 당시 저는 인생에 대한 고민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군대에서도 앞으로 뭘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끝도 없이 생각했죠. 그러다 ‘장사의 신’이라는 책을 읽고 엄청난 흥분에 사로잡혔어요. 왠지 재밌어 보이기도 했고 장사를 통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거든요.”
“꿈이 생기고 난 후 포털 사이트와 SNS 등에서 장사와 관련된 키워드를 수도 없이 검색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청년장사꾼’을 발견하고 이곳에서 일을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돼요. 열정 가득한 장사 정신으로 낡고 오래된 상권을 새롭게 되살리겠다는 청년장사꾼의 목표가 제 뇌리에 깊이 박혔거든요.”
당시 군 복무 중이던 임 지배인은 연락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 일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SNS 메시지는 물론이거니와 자필로 편지까지 써 보냈다. 이를 좋게 본 청년장사꾼이 일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임 지배인은 마침내 음식점과 관련된 일을 배울 수 있게 됐다.
“전역한 다음 날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청년장사꾼에서 하루라도 빨리 일하고 싶었거든요. 일주일 정도 아르바이트해서 받은 돈과 군대에서 모아둔 돈 등 약 80만원을 손에 쥐고 무작정 상경해선 청년장사꾼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게 됐어요.”
“그곳에서 일하면서 좋았던 점은 하나의 조직, 기업이 성장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던 거예요. 작은 점포에서 시작한 음식점이 하나 둘 매장을 늘려 나가고 새로운 장르의 음식점도 다양하게 오픈하는 등 몸집을 키워나가는 동안 규모에 맞춰 체계가 변화하는 모습을 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죠.”
“또 장사하기 위해 갖춰야 할 자질이 정말 많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서비스 정신으로 손님을 응대하는 접객 방법부터 사업 아이템 발굴, 메뉴 개발·구상, 매장 인테리어 디자인 및 소품 배치, 직원 관리 방법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죠. 선배들 어깨 너머로 하나하나 보고 배우고 모르는 게 있으면 귀찮을 정도로 질문하면서 제 몸에 체화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그렇게 3년을 일한 임 지배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미국 유타주에 컵밥 사업 진출을 목표로 삼은 청년장사꾼으로부터 현지에 투입될 인력으로 참여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은 것이다. 임 지배인은 미국 내 컵밥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12시간가량 일한 후에도 퇴근하지 않고 남아 메뉴 개발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통근하는 시간이 아까워 집 대신 매장에서 자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1년 가까운 시간을 투입한 보람도 없이 임 지배인은 미국 비자 인터뷰에서 입국을 거절당했다. 그간의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당시엔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미국 컵밥 사업 성공이라는 목표만을 보고 달려왔는데 갑자기 달려가야 할 지향점이 사라지고 말았으니까요. 성취해야 할 목표가 없어지자 삶이 참 무기력해지더라고요.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과감히 퇴사하고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제 몸과 마음은 여전히 요식업에서의 삶을 그리워하고 있었나 봐요. 몸이 근질근질하고 마음도 썩 편치 않아 한 달 만에 다시 상경하고는 반지하 월세방 벽면 하나 가득 종이를 이어 붙이고 제가 지금까지 배운 것이 무엇인지, 이를 토대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을 쭉 적어 봤어요. 하얗던 종이가 글씨로 빽빽하더라고요. 그동안 허투루 산 것은 아니구나 싶어 내심 뿌듯했어요. 그리고 종이에 쓴 내용들을 다시금 읽어보면서 저만의 가게를 차려야겠다는 목표를 더욱 명확히 세웠어요.”
하루에 세 곳서 일하던 알바생에서 지배인·음식점 대표로 우뚝
그길로 임 지배인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쁘게 살기 시작했다. 선술집, 편의점, 프랜차이즈 카페 등 하루에만 세 군데서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수면 시간은 4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얼른 돈을 모아 가게를 차리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그 일념으로 힘들다는 생각도 잊은 채 부지런히 달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청춘을 바쳐 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임 지배인 앞에 새로운 기회가 나타났다. 지금의 어거스트 힐을 운영 중인 최재민 대표를 소개받은 것이다. 임 지배인은 최 대표로부터 새로운 레스토랑 론칭부터 운영까지 함께 일궈보자는 제의를 받고 혼자가 아닌 다같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흔쾌히 합류하기로 결정한다.
레스토랑에서 매니저로 일을 시작한 그는 불과 1년 만에 지배인 자리에 오르게 됐다. 홀과 테이블이 항상 깨끗하도록 애쓰고 손님의 입맛에 음식은 맞는지, 혹시라도 필요한 것은 없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등 친절한 서비스가 배어 있는 그의 모습에서 지배인으로서의 가능성이 충분히 드러나서였다. 임 지배인은 레스토랑을 찾아준 손님들이 즐겁고 좋은 인상만 가지고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이었을 뿐이라고 멋쩍어했다.
그러나 매니저와 지배인이라는 직함의 무게는 확연히 달랐다. 임 지배인은 홀만 신경 쓰면 되는 매니저와 달리 주방과 홀 등 레스토랑 전체를 총괄해야 하는 지배인이 매우 힘들고 어려운 자리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지배인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정말 많아요. 손님에게 제공되는 음식, 홀 분위기와 청결뿐만 아니라 식자재, 신메뉴, 시기별 마케팅 프로모션, 직원 인사 등 크고 작은 것을 모두 고려해야 하죠.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인간관계였어요. 주방과 홀 직원 간의 관계, 대표님과 직원들 간의 관계 등을 잇는 중간자의 역할을 지배인이 하기 때문이죠.”
“주방과 홀의 경우 일하는 공간이 다르고 업무에 대해서도 잘 모르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바쁠 땐 서로 예민하게 대응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것이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서로의 업무를 바꿔 일해 보도록 하면서 각자의 고충도 느껴 보고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랬더니 요즘은 주방과 홀 직원 간에 사이가 상당히 좋아졌어요.”
브랜딩, 마케팅, 고객 서비스, 인사 관리 등 다방면에서 팔색조 매력을 뽐내는 임 지배인은 최근 새로운 직함을 하나 더 추가했다. 20대 초반의 임 지배인이 꿈꿨던대로 음식점 ‘대명호’의 대표가 된 것이다. 임 지배인은 레스토랑 지배인과 음식점 대표,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쉬지 않고 도전하는 지금의 삶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솔직히 레스토랑 지배인과 음식점 대표를 병행하다 보면 체력적인 한계를 많이 느껴요. 시간은 한정돼 있는데 이를 쪼개 레스토랑과 음식점을 동시에 고려하고 운영한다는 게 물리적으로 참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시는 대표님과 믿을 수 있는 동료 직원들이 있어서 두 가지 다 잘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지배인이든 음식점 대표든 한 가지 일에 집중했을 때 동료 직원들이 나머지 일에서 제 몫을 해주고 있으니까요. 이 같은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대표님, 동료 직원들과 함께 오래도록 재밌게 일하고 싶어요.”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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