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한원석 부장|장혜원·양준규·신성수 기자] 최근 발생한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의료계 특유의 문화도 일각에서는 문제점으로 지목하고 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료계에서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의사와 간호사들의 모습과 달리 그들의 실상은 힘들고 끝없는 고통의 연속으로 보인다. 스카이데일리에서는 이번에 의료계 내부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의료계 인사들을 다양하게 접해보고 그들의 내부 목소리를 들어봤다.
의료계 남겨진 악·폐습… 의대 가는 것보다 입학 후가 더 힘들어
의사라는 직업은 누구나 인정하는 전문직 중의 하나로 꼽힌다. 의학대학교 진학 후 의예과 2년, 의학과 4년의 총 6년을 마치고 나면 ‘의사국가시험’을 통해 의사면허증을 취득하게 된다. 면허 취득 후 인턴과 전공과 레지던트를 마치면 전문의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힘든 과정을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의사’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들과 맞닥뜨려야 한다는 점이다. 대학병원에 근무하거나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들은 각각의 의대 시절과 인턴, 레지던트 시절 겪은 불합리한 일들이 현재의 의료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또한 의대를 졸업했으나 현재는 다른 직업을 가진 졸업생 또한 의대 시절 본인이 보고 겪었던 불합리한 일들이 당시 의사를 꿈꾸던 학생들에게 적지 않은 악영향을 끼쳤다고 떠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한다’는 사명감에 의대에 진학했지만, 부조리를 버티지 못해 포기하는 이들이 의외로 상당수에 이른다”며 대학생 시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턴, 레지던트를 거치면서 더욱 심해지고 결국 같은 일을 후배에게 반복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 이들의 고백이다.
의과대학교를 졸업한 후 현재는 다른 직업을 가진 A씨(32)는 “의대생 시절 상당히 많은 수의 동기 및 선·후배가 악·폐습으로 의사를 포기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과거부터 전해오던 백일당직부터 업무 및 환자 떠넘기기 등은 일상이었다”면서 “흔히 간호사들 사이에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진 ‘태움’ 문화와 왕따 등 셀 수 없는 부조리가 끊이지 않았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현재 개인병원을 운영 중인 B씨(64)는 본인의 의대생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 당시에 비하면 백일당직 같은 문화는 많이 사라진 편”이라고 언급했다. ‘백일당직’이란 새로 들어온 전공의에게 100일 동안 외출과 외박도 허용하지 않고 당직을 서게 하는 관행이다. 이는 ‘전공의 특별법’이 통과된 2016년 말부터 점차 사라지고 있으나 현재도 암암리에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백일당직 같은 문화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불필요한 문화였다”며 “그런 쓸데없는 문화를 없애고 의대생들과 인턴, 레지던트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줘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는데, 당시에는 너무나도 많은 부조리로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탈락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며 아쉬워했다.
‘태움’이 싫어 해외로 눈 돌리는 간호사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간호사는 ‘의사의 진료를 돕고 환자를 돌보는 사람. 법으로 그 자격을 정하고 있다’고 정의돼 있다. 간호사는 의사와 마찬가지로 의학적인 지식을 가진 전문 의료인이다. 그런 전문가인 ‘간호사’조차 악·폐습이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안 좋은 문화와 인식을 피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지역 대학병원의 간호사 C씨(29)는 “간호사 내에서 ‘태움’이라고 알려진 문화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단순한 갈굼에 더해 업무 떠넘기기, 동기 내에서 따돌리기 등의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연차가 쌓인 간호사의 경우 환자나 다른 의사 또는 간호사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태움’이라는 형태로 후배 간호사에게 푸는 경우가 많다”며 “신입 간호사의 경우 태움 문화를 견디지 못해 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서울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 D씨(28)는 병원에서 간호사에 대한 업무 분담이 알맞게 이뤄지지 않고 추가 업무를 모두 막내 간호사에게 떠넘기는 식으로 업무가 전개되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D씨는 “간호조무사와 간호사, 병동 기능원이 각자 업무를 분담해야 하는데, 비용 문제로 모두 간호사가 맡고 있다”면서 “대부분 업무는 모두 막내 간호사가 담당하고 있어 막내 간호사의 업무량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그는 “막내 시절 점심시간에 회사원들이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부러울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부조리한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는 이유에 대해 이들은 병원 자체의 문제와 사회 인식 두가지를 지목했다. C씨는 “병원 자체가 폐쇄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D씨는 “전문직으로 여기는 의사와 반대로 간호사는 환자 또는 의사의 비서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사소한 스트레스가 전부 간호사 내부에서 ‘내리 갈굼’ 혹은 ‘태움’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다”라고 풀이했다.
C씨와 D씨는 현재 ‘NCLEX(National Council License Examination)’라는 미국 간호사 면허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시험을 통과하면 미국 병원에서 비자를 받아 일을 할 수 있으며 이민까지 가능하다.
C씨는 “시험을 준비하는 간호사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국내보다 근무 환경이 좋고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좋은 미국으로 가고자 하는 간호사들이 많은 것만 봐도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D씨 또한 “의료계의 필수 구성원이자 전문직인 간호사의 해외 유출은 우리나라 의료계 발전을 더디게 할 것”이라며 “눈앞에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개선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의료계 악·폐습 해소 위해 인권 교육·인식 개선 필요
의료인들은 내부적인 부조리 해결을 위한 인권 교육과 동시에 의료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부적절한 문화를 개선해야만 의료인들이 본업에 더 집중하고 수준 높은 양질의 진료를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B씨는 “의사들의 인식 개선에 있어 ‘수가’ 등 외부적인 문제의 해결보다 내부적으로 부적절한 문화를 없애고 올바른 교육을 통해 환자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내부적인 스트레스는 곧 환자의 건강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며 “의료인으로서 어떤 것이 우선인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주문했다. C씨도 “약간의 여유조차 보장되지 않는 악·폐습이 하루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아쉬워했다.
이와 관련해 ‘인권의학연구소’에서는 의료인들에게 다양한 환자와의 관계뿐 아니라 본인들의 업무 속에서도 인권이 기초가 될 수 있도록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인권의학연구소 관계자는 “현재 의대 진학 중인 학생과 전문의 등을 대상으로 캠프를 운영하고 있는데, 수업을 듣는 학생 대부분이 학교에서도 이같은 교육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인다”며 “단순히 의학적인 지식뿐 아니라 인권 관련한 교육도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라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의료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해석되는 ‘태움’과 외부의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 괴롭힘 방지법 등의 적극적인 활용에 더해 지속적인 교육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의료계 외부의 인식과 관련해 ‘공공의료의 확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수도권에만 집중된 의료시스템을 통해 의료계 종사자에 대한 사회의 의식이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는 “의료계의 전반적인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육과 법 개정을 통한 의료계 내부의 문제를 확실하게 잡고, 공공의료의 확충을 통해 안 좋게 굳어진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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