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king)달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 달러화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원·달러 환율)는 연초 1200원을 돌파한 뒤 1300원, 1400원을 차례차례 뚫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다. 경기침체 우려 등을 감안하면 연내 1500원 돌파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증권업계는 달러 강세로 이득을 볼 수 있는 ‘고환율 수혜주’에 관심을 쏟고 있다. 환율 상승에 따라 수익성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자동차 등 수출업종이나 외국인이 지분율을 높이고 있는 개별종목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3개월 새 원화 가치 하락 폭 ‘세계 3번째’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6원 오른 달러당 1435원으로 마감했다. 지난달 30일(1439원) 이후 10여일 만에 다시 1430원대로 치솟았다. 작년 말(1190.5원)과 비교해 벌서 20.5%(244.5원) 오른 상태다. 갑작스러운 하락세는 아니다. 지난달 28일에 이미 144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원·달러 환율이 1440원을 넘어선 건 금융위기였던 2008년 12월1일(1440.5원) 후 14년 만이다.
미 달러화 강세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원화 가치 하락세는 주요 통화 중에서도 유독 심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최근 3개월(7월6일~10월6일) 사이 8.0% 떨어졌다. 31개 주요 통화 중 원화보다 미 달러화 대비 가치가 떨어진 곳은 물가상승률이 80%에 육박한 아르헨티나의 페소화(-15.2%)와 뉴질랜드의 뉴질랜드달러(-9.2%) 2개뿐이었다. 심지어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치는 일본의 엔화(-6.48%)보다도 하락 폭이 컸다.
원화 약세는 주가 폭락을 불렀다. 코스피지수는 원·달러 환율이 13년 6개월 만에 1360원을 돌파한 9월2일(2409.41)부터 11일(2192.07)까지 9.0% 떨어졌다. 성장주로 구성된 코스닥지수는 무려 14.8%나 하락했다. 강달러 압력에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이 주로 돈을 뺐다. 이 기간 외국인의 순매도 금액은 1조5218억원에 달했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 외국인 수급 간에서는 대체로 음(-)의 상관계수를 보인다”며 “외국인 입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상승할 때 환차손을 키울 수 있어 자금 이탈을 가속한다”고 설명했다. 노 연구원은 “환율 상승을 수출 둔화의 결과로 보면 펀더멘털 측면에서 외국인 순매도를 유발할 수도 있다”며 “환율, 외국인 수급, 펀더멘털 간에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달러 강세는 국내 증시 수익률 약화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의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금리가 무섭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지난달 21일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하며 정책금리를 2.25~2.50%에서 3.00~3.25%로 올렸다. 목표치로 설정한 인플레이션 2%를 달성할 때까지 긴축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9월 점도표(dot plot·연준 이사와 연방은행 총재들이 예상하는 향후 정책금리를 점으로 찍은 표)에서 나타난 미국 정책금리 수준은 올해 말 4.375%, 내년 초 4.5%~4.75%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연준이 물가 안정을 위해 고강도 통화긴축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글로벌 강달러 부담은 연말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원·달러 환율 1차 저항선을 1500원으로 설정하고 해당 수준을 돌파하면 금융위기 고점인 1567.7원까지 추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도 “향후 1개월 원·달러 환율 밴드는 1390~1500원을 제시한다”면서 “대외적으로 10월 중 연준의 긴축에 대한 경계가 재차 고조돼 강달러 압력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고 대내적으로 4분기 수출 감소 전환이 확실시되고 국제유가가 반등하고 있어 무역적자가 재차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외국인 사랑받는 KT&G, 수출 비중 높은 현대차 관심 ↑
달러 강세를 당분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주식시장에서 ‘고환율 수혜주’를 찾아 투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증권업계는 외국인이 순매수하고 있는 종목에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원화 약세로 한국 증시 매력도가 떨어졌음에도 꾸준히 사들인다는 것은 앞으로 닥칠 금리 인상, 경기침체 우려 등을 극복할 만큼 투자 매력을 보유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KT&G는 이에 부합하는 종목으로 꼽힌다. 외국인은 40일간(9월1일~10월11일) KT&G를 2268억원 순매수했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두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은 줄었지만 KT&G는 외국인 지분율이 35.16%(작년 말)에서 42.11%(11일)로 급증했다. 담배산업 특성상 수출 비중은 크고 원가율은 낮아 고환율이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속적인 달러 강세 영향으로 궐련담배 수출 판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다”며 “현재의 환율 흐름이 이어진다면 3분기와 3분기 평균 환율은 2분기 대비 각각 6%, 10% 정도 높은 수준에서 형성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중동 수출의 변동성이 안정화됐고 코로나 사태 완화로 신시장 유통망이 회복된 점을 감안한다면 중기적으로 달러 강세에 따른 실적 개선 효과가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매출에서 수출 비중이 높은 종목에 투자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생길뿐 아니라 미 달러화로 받은 판매대금을 원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환차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수출주로 자동차 업종에 주목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대차의 올 상반기 매출액(29조3689억원) 중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4.7%(16조760억원)에 달했다. 이 기간 기아의 수출 비중은 61.6%(13조1249억원)로 더 높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현대차의 매출액은 1200억원, 기아의 매출액은 800억원 늘어난다는 분석이 있다. 이를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현대차는 6월30일(1301.5원)부터 9월30일(1439.0원)까지 1조6500억원의 환차익을 봤을 가능성이 크다. 이 기간 기아의 환차익 규모는 1조1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노동길 연구원은 “환율 상승에 따라 마진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업종을 선택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은 매출액 전망 자체가 증가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자동차는 환율 효과를 가장 크게 기대할 수 있는 업종인데, 자동차의 12개월 선행 매출액이 지난해 초에 비해 25%가량 늘어났고 이익률 전망치도 지난해 5% 초반에서 현재 6.5%까지 상승했다”고 진단했다.
완성품(세트)보다 부품이 강달러에 더 긍정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반도체, 2차전지, 전기전자·통신장비, 디스플레이 등이 대표적인 부품 업종이다. 세트인 스마트폰, PC, 가전 등은 달러뿐만 아니라 현지 통화로 매출액을 발생하지만 부품의 경우 글로벌 세트 업체들에게 B2B 형태로 공급하기 때문에 달러 매출이 주를 이룬다. 최근과 같이 달러 혼자 강세를 이어가는 상황에서는 달러 결제 비중이 높은 부품업체가 세트업체보다 수혜가 크다고 볼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이 원·달러 환율 변동에 따른 기업들의 영업이익 민감도를 분석한 결과, 연평균이 원·달러 환율이 10% 오르면 추정 영업이익이 LG에너지솔루션은 46%, LG이노텍은 36.1%, SK하이닉스는 35.9%, LG디스플레이는 흑자전환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철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요 2차전지 회사의 매출액은 대부분 달러로 이뤄지고 비용(매출원가+판관비)에서 달러 노출 비중은 약 80%다”며 “아직 2차전지 회사들의 영업이익률이 높지 않아 환율 변동에 따른 매출액 증가는 영업이익 증가에 큰 도움이 되지만 외화표시 부채가 많기 때문에 영업외 부문에서는 환율 상승이 대체로 부정적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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