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순매도 행진을 이어온 외국인 투자자가 최근 순매수로 돌아서는 등 코스피가 바닥에 근접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외국인은 최근 한 달간 유가증권시장에 약 3조 원을 쏟아부으며 코스피 2200선을 지켜냈다. 반도체, 2차전지 등 핵심 업종을 담았다. 연초 이후 과도하게 떨어진 코스피의 저평가 매력이 매수세를 키운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가는 변동성 지표와 천연가스 가격이 하락 중인 점을 고려해 코스피가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외국인이 3.3조 순매수하자 코스피 2250선 탈환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9월29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총 3조3551억 원을 순매수했다. 이틀(10월20·28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거래일에 매수 포지션을 유지했다. 10월로 한정하면 순매수 금액은 2조9665억 원에 달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외국인이 매월 평균 1조1400억 원가량을 순매도한 것을 고려하면 확연히 늘어난 규모다.
외국인의 매수세에 힘입어 코스피지수의 하락세도 멈췄다. 9월28일 2100선까지 추락했던 코스피는 10월4일 2200선을 탈환한 데 이어 10월27일에 2250선을 돌파했다. 이 기간 코스피의 상승률은 4.56%로 개인 비중이 높은 코스닥지수(2.04%)보다 두 배 이상 컸다.
저평가 매력에 외국인이 매수세를 키운 것으로 풀이된다. 코스피는 연초 이후 23.82%(28일 기준) 떨어졌다. 대형주로 구성된 코스피50의 하락률도 -26.74%에 달했다. 이는 미국 대표 지수인 다우존스산업(-9.57%)·S&P500(-18.15%)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의 유로스톡스50(-15.95%), 일본의 닛케이(-5.86%), 영국의 FTSE(-4.56%)보다도 큰 낙폭이었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도 낮은 상황이다. 코스피의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월28일 기준 각각 28.50배, 1.12배로 집계됐다. 코스닥(35.25배, 2.28배)보다도 한참 낮았다. 1월3일 102.37배, 2.09배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해서도 크게 줄었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크게 하락한 점도 투자 매력도를 높였다. 미국은 외국인 전체의 41.2%(9월 기준)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미국인 입장에서 자국 통화로 한국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장기 투자로 접근하면 이득이다. 원·달러 환율은 10월28일 기준 1425.50원으로 올해 들어 19.74% 떨어졌다. 주요 6개국(EU·일본·영국·캐나다·스웨덴·스위스)의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가 같은 기간 15.40% 하락한 것에 비해 컸다.
종목 중에서도 외국인은 반도체주를 적극 사들이고 있다. 한 달간(9월29일~10월28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1조3174억 원, 7681억 원 순매수했다. 유가증권시장 순매수 1·2위다. 전체 순매수금액 중 62.2%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 두 종목을 사는 데 쏟아 부은 셈이다. 외국인이 올 들어 9월28일까지 삼성전자를 10조 원 이상 순매도했던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매수세는 굉장히 낯설다. SK하이닉스의 순매수도 6841억 원으로 크지 않았다.
저가 매력이 수급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342조685억 원(10월28일 기준)으로 6월 말 자본총계 327조9066억 원과 비슷했다. SK하이닉스는 자본총계(66조7602억 원)가 시가총액(60조7154억 원)을 넘어섰다. 삼성전자는 PBR이 1.31배, SK하이닉스는 0.92배다. 이는 당장 이 회사를 청산하더라도 본전은 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SDI(7189억 원)·LG에너지솔루션(4070억 원)·포스코케미칼(1241억 원) 등 2차전지 관련 종목도 외국인 순매수 3·4·6위를 기록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발효에 따라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견인했다. 수출 비중이 높은 담배기업 KT&G의 순매수금액도 2163억 원으로 상당했다. 한 달 동안 1거래일(10월24일)을 제외하고 계속 사들였다.
나정환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에 대한 저가매수와 환차익을 고려한 코스피 수익률 때문에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 투자한 것 같다”며 “반도체 업종의 실적은 부진하지만 역사적 저점에 도달한 밸류에이션 측면에서의 매력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달러 기준 코스피 연초 대비 수익률이 매우 낮아 원·달러 환율이 더 이상 오르지 않고 하락세를 보인다면 외국인은 주가 반등과 환차익 두 가지 부분에서 모두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변동성지수 하향 국면 진입… 물가상승 우려도 사라져
증권업계는 코스피200 옵션 변동성지수(V-KOSPI)를 근거로 반등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공포 지수’라 불리는 V-KOSPI는 옵션 가격에 반영된 시장의 기대 변동성을 나타내는 지수다. V-KOSPI가 오른다는 것은 투자자들의 심리가 불안하다는 뜻이다. 반대로 V-KOSPI가 하락 국면에 진입하면 주가도 의미 있는 반등 국면을 진행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V-KOSPI 선물은 10월28일 기준 22.70로 9월28일(25.80)과 비교해 3.1p 낮아졌다.
정인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10월 들어 코스피가 완만한 반등 시도를 보이는 가운데 V-KOSPI도 고점대를 형성하고 있다”며 “V-KOSPI는 9월 말 6월 고점대에 도달한 후 등락을 거듭하면서 단기 고점을 낮추는 모양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코스피 반등은 일반적으로 V-KOSPI의 급락과 더불어 나타나기 때문에 변동성 지수가 단기 하락세를 형성해야 주가도 좀 더 강하게 반등할 수 있다”며 “V-KOSPI가 아직 30일 이평선(이동평균선)을 이탈하지 못했지만 이탈 시 하락 폭 확대(주가 반등 국면)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는 점도 호재다. 유럽의 물가상승률을 낮춰 금리 인상 기조를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달 26일 기준 메가와트시(MWh)당 104.3유로로 전쟁 발발 직전이던 2월23일 88.9유로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 천연가스 공급 중단 등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MWh당 339.1유로까지 급등한 8월26일과 비교하면 약 70% 급락한 상황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천연가스 가격 급락은 자연스럽게 유로화 가치 반등으로 이어지고 있고 유럽 경제가 겨울철 에너지 대란 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기대감이 유로화 가치를 패리티(1달러=1유로) 수준까지 상승시켰다”며 “시차는 있겠지만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의 급락으로 유럽 생산자·소비자물가의 가파른 상승세가 한풀 꺾일 수 있고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진 각종 심리지표들이 반등할 수 있는 모멘텀 역할을 할 공산이 높다”고 말했다.
증권업계는 내년 코스피에 대해 하방보다 상승에 무게를 두며 2600선을 탈환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삼성증권은 내년 코스피지수 등락범위로 2000~2600p를 제시했다. 분기별로 1분기 2000~2400p, 2분기 2200~2600p, 3분기 2200~2600p, 4분기 2100~2500p 순이다. 글로벌 경기침체 현실화를 비롯해 △미미한 연준의 피봇(Pivot·전환) 가능성 △수출 부진과 기업 실적 불확실성 추가 심화 등이 내년 시장의 변수가 아닌 상수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적극적 리스크 관리를 병행하더라도 투매보다는 보유, 관망보다는 매수 대응이 유리하다는 점을 짚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 국내 증시 주가·밸류에이션·수급 환경은 글로벌 순환적 위기(Soft Landing)를 넘어 경기침체(Hard Landing) 현실화까지 상당수준 선반영했다”며 “침체 진입 이후 도미노식 크레딧(채권)·뱅킹·소버린(채무상환) 리스크의 연쇄화가 아니라면 내년 코스피의 잠재적 최대 기대 손실은 -10% 내외로 한정될 전망이다”고 강조했다.
다만 원·달러 환율 및 주가 상승에 따른 코스피 리스크는 우려스러운 점이다. 단기간에 급등할 경우 차익 실현 가능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p 인상)’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악재다. 미국의 고용지표는 실업률 3.5%, 실업수당 청구건수 22만 명 등 견조한 편이다.
나 연구원은 “외국인의 코스피 순매수 추이는 이어질 것으로 판단하나 만약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거나 주가 반등으로 한국의 밸류에이션 매력도가 하락한다면 외국인의 차익 실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미국 고용 지표도 견조하기 때문에 물가 지표가 유의미하게 하락하지 않으면 내년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러한 통화정책 불확실성은 증시 하방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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