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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회사채 부진에 기업 ‘돈맥경화’
돈이 돌지 않는 회사채 시장… 기업들 자금경색 위기
자금시장 경색에 10월 회사채 순상환액 4.8조… 신용스프레드 1.4%p
우량 기업도 수요예측서 번번히 미매각… ‘레고랜드 사태’ 찬물
내년 상반기까지 회사채 62조 원 만기… “위기대응 매뉴얼 만들어야”
윤승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11-09 00:07:01
▲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회사채 순발행액은 -4조8379억 원으로 발행액보다 상환액이 두 배 이상 많았다. ⓒ스카이데일리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인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회사채 순발행액(발행액에서 상환액을 뺀 금액)은 한 달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했고 회사채 금리는 5.5%(AA-등급)를 넘어섰다. 회사채 수요 감소로 비우량 기업뿐 아니라 신용등급이 높은 우량 기업도 회사채 목표금액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은행 대출에 의존한 채 어렵사리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기준금리가 고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초 70조 원에 가까운 회사채 만기가 돌아온다. 부채 비율도 이미 높아 더 이상 은행 대출에 의존하기도 벅찬 상태다. 다가올 대규모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위기대응 매뉴얼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올 1~10월 회사채 수요예측 15% 모집금액 미달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회사채 순발행액은 -4조8379억 원으로 집계됐다. 받은 돈(3조6921억 원)보다 돌려준 돈(8조5300억 원)이 두 배 이상 많았다. 2개월 연속 순발행 6000억 원대를 유지한 9월과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올해 5월·7월에도 순발행이 적자를 기록했지만 그때 규모는 각각 -6111억 원, -2740억 원이었다. 5조 원에 가까운 순상환액은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06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회사채 금리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0월 말 무보증 3년 만기 회사채 금리는 신용등급 AA- 5.580%, BBB- 11.424%를 기록했다. 9월 말에 비해 각각 0.3%p, 0.291%p 오른 수준이다. 국고채(3년)와 회사채(무보증3년)AA- 간의 차이인 신용스프레드도 1.395%p에 달했다. 9월 말 1%p 미만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상승 폭이다. 신용스프레드가 올랐다는 건 그만큼 투자자들이 회사채에 대한 투자 위험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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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시장에서는 회사채 투자를 신중히 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연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발행된 회사채 264건 중 40건(15.15%)은 수요예측 경쟁률이 1 미만이었다. 수요예측 경쟁률이 1 미만이라는 것은 채권 주문금액이 목표 발행금액에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특히 수요예측에 실패한 40건 중 3분의 1(14건) 이상은 10월 한 달간 발생한 물량이었다.
 
일례로 지난달 20일 한화솔루션(AA-등급)은 2년물·3년물로 나눠 총 1500억 원 규모로 회사채 발행을 계획했지만 2년물에 130억 원의 유효수요를 받는 데 그쳤다. 3년물에서는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했다.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갖춘 통신업 LG유플러스(AA)도 발행 목표금액을 채우지 못했다. LG유플러스는 지난달 19일 1500억 원 규모로 회사채 수요예측에 나섰지만 2년물에서 900억 원, 3년물에서 100억 원 등 1000억 원의 매수 주문만 받았다.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오동훈 기자] ⓒ스카이데일리
 
한온시스템(AA-)도 지난달 19일 3000억 원 규모의 3년물·5년물 공모채 발행을 위해 수요예측을 실시했지만 500억 원의 투자수요를 확보했을 뿐이었다. HDC와 한화그룹의 합작회사인 통영에코파워(A+)도 지난달 27일 510억 원 규모의 3년 만기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에 나섰지만 전량 미매각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밖에 콘텐트리중앙(BBB), SK렌터카(A+/A), JB금융지주(AA+), 한진(BBB+) 등도 모집금액보다 적은 투자수요를 기록하며 미매각됐다.
 
회사채가 잇달아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는 데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채권금리가 치솟는 가운데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한 게 대표적이다. 이는 강원도의 채무보증 거부로 신용등급 A1인 레고랜드 자금유동화기업어음(ABCP)을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뜨린 사건이었다. 지자체 보증 채권도 부도가 날 수 있다는 공포감이 확산하면서 회사채 시장 분위기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적자 늪에 빠진 한국전력(AAA)이 한전채를 대량 발행한 점도 회사채 경색에 영향을 미쳤다. 채권시장의 자금이 우량채로 꼽히는 한전채로 쏠렸기 때문이다. 한전은 올 들어 10월까지 26조 원 이상의 한전채를 발행했다. 2년 전(3조 원)과 비교하면 9배 늘어난 규모다. 한전은 지난달 말에도 4100억 원의 2년물·3년물 회사채를 발행하며 시중자금을 빨아들였다.
 
회사채 경색으로 기업 대출 한 달간 9조 늘어… 기업 부채 118%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자 기업들은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 잔액은 지난달 27일 기준 703조7512억 원으로 9월 말(694조8990억 원)보다 8조8522억 원 증가했다. 특히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기업의 대출 잔액이 크게 늘어났다. 한 달 만에 5조8592억 원 불어나 전체 증가액의 66.2%를 차지했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2조9930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은행에서 대출을 지속 받기도 벅찬 상태다. 기업들의 빚(부채)이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한국 비금융 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2분기 기준 117.9%에 달했다. 세계에서 홍콩(279.8%)·싱가포르(161.9%)·중국(157.1%)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1년 전(111.7%)전과 비교하면 무려 6.2%p나 뛰었다. 기업들의 상환능력이 악화될 경우 연쇄적 부실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돌려줘야 할 채권 금액도 어마어마하다. 금융권에 따르면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ABS 포함) 규모는 약 9조8828억 원이다. 이어 내년 상반기(1∼6월)에 추가로 52조7968억 원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한다. 이를 합치면 약 62조6788억 원에 이른다. 만기가 돌아오면 자금을 상환하거나 차환(회사채를 새로 발행해 만기 회사채를 갚는 것)해야 하는데 부채 급증과 회사채 수요 감소 등을 고려하면 상환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달 23일 △채권시장 안정펀드(채안펀드) △비우량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유동성 부족 증권사 지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HF) 사업자 보증지원 등 50조 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나흘 뒤에는 한국은행의 증권사·증권금융 대상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방안도 내놨다. 신용도 높은 공공기관의 회사채 발행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오동훈 기자] ⓒ스카이데일리
 
1일에는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가 95조 원 규모의 시장안정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시장 유동성 공급 확대 73조 원 △채안펀드·증권시장안정펀드 참여 12조 원 △지주그룹 내 계열사 자금공급 10조 원 등을 연말까지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대책에도 증권가에서는 단기간 내 회사채 시장 위축이 크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화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정책발표 이후 점차 온기가 도는 듯은 하나 단기조달 시장의 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비우량 등급 금융사에 대한 경계감과 스프레드 확대는 지속되고 있다”면서 “연말까지는 금리 인상이 지속되고 유동성 부족과 북클로징(회계장부 마감)으로 채권 매수세가 감소하면서 크레딧 약세는 연말까지 지속될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도 “금융당국의 채권시장 안정화를 위한 조치에도 아직 크레딧시장은 혹한의 시절에서 큰 변화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며 “일부 초우량등급에서 투자수요가 나타나고 있으나 강하지는 못하고 채안펀드를 통해 발행에 나선 회사들의 신용가산금리(기준금리에 신용도 등 조건을 덧붙이는 금리)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조치들이 유동성이 필요한 곳에 자금이 유입되는 효과가 있겠지만 신용가산금리를 진정시키는 데는 다소간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자금시장 지원 대책에 PF ABCP 및 증권사 CP 매입 등 전향적인 조치를 포함하는 등 정부의 지원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파악되지만 단기자금시장을 비롯한 크레딧채권시장의 기능 회복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며 “이를테면 기관들의 자금 여유가 없고 여유자금이 있는 일부 기관도 금리인상기 자본손실을 우려해 크레딧채권 매수를 주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회사채 경색과 같은 유동성 위기가 내년에 대규모로 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제기하며 정부의 대응을 주문했다. 경기 침체에 대비해 우리나라도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한 전체적인 구조를 중앙은행인 한은 중심으로 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시장안정화기구의 재원마련을 민간금융회사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은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활용해 금융시장안정화기구의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며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자금조달의 신속성, 대규모 장기자금조달의 용이성과 같은 장점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시장의 환경이 극심하게 나빠질 때 정부의 시장안정화 조치는 신속하고 과감하게 실행돼야 한다”며 “위기의 징후가 뚜렷해지면서 금융사나 일반 기업의 파산위험성이 급증한다면 금융시장안정화 조치는 즉각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집행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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