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여파로 주식시장이 약세장을 이어가면서 기업공개(IPO) 시장도 부진을 겪고 있다. 대어급 기업들마저 저조한 성적을 거두거나 상장을 철회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불황 속에서 중소형 공모주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중소형 공모주는 낮은 몸값과 성장 기대감, 주가 안정성 등을 앞세워 IPO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업계는 연말에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수익률이 높았던 점을 고려해 11·12월 IPO를 진행할 ‘알짜배기’ 중소형주에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
IPO 침체 속에서 중소형 IPO 선전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IPO를 진행한 기업은 98곳, 공모금액은 15조5671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105개, 17조8934억 원)와 비교해 기업 수는 7곳, 공모금액은 2조3263억 원 줄었다. 이마저도 1월 상장한 역대 최대 공모주인 LG에너지솔루션(10조9225억 원)을 제외하면 4조6446억 원으로 쪼그라든다. 지난해의 4분의 1 수준이다.
이 같은 감소세는 대어급 IPO로 기대를 모았던 대형 비상장사들이 상장·공모를 포기한 결과다. 올 상반기 유가증권시장에서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원스토어 등은 상장 철회에 나섰고 하반기에는 코스닥시장의 라이온하트스튜디오도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후 상장 과정을 철회했다. 뿐만 아니라 심사 승인까지 완료하고 중단한 현대오일뱅크, 심사 단계에서 미승인으로 끝난 교보생명, 청구서를 접수하지 않았지만 신규 상장 후보군에 들었던 CJ올리브영, SSG닷컴, 케이뱅크 등도 증시 침체로 IPO 수요가 줄어들자 증시 입성을 뒤로 미뤘다.
IPO 시장이 얼어붙는 와중에도 중소형 IPO만큼은 선전하고 있다. 3개월간(8월9일~11월8일) 공모주청약을 진행한 기업 22곳(스팩·리츠 제외) 중 청약증거금이 1조 원 이상 몰린 기업은 8곳에 달했다. △티쓰리엔터테인먼트(5조8000억 원) △모델솔루션(5조1000억 원) △에스비비테크(4조6000억 원) △대성하이텍(4조2000억 원) △뉴로메카(3조7000억 원) △알피바이오(2조9000억 원) △오에스피(2조2000억 원) △이노룰스(1조4000억 원) 등이다.
이들은 모두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이 2000억 원 이하로 작았다. 모델솔루션의 시가총액은 1720억 원, 뉴로메카 1666억 원, 대성하이텍 1195억 원, 티쓰리엔터테인먼트 1195억 원, 알피바이오 1017억 원, 오에스피 785억 원, 에스비비테크 737억 원, 이노룰스 643억 원 수준이었다. 수요예측·공모주청약도 대부분 1000대 1 이상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일례로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티쓰리엔터테인먼트는 1~2일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1744대 1의 경쟁률을 거두며 공모가 희망 밴드(1500원~1700원) 상단인 1700원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밴드 상단(1700원) 이상을 제시한 비중이 99.61%에 달했다. 7~8일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공모주청약에서도 경쟁률 1384 대 1을 올리며 기대감을 키웠다.
협동로봇 전문기업 뉴로메카도 지난달 20~21일 진행한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165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희망 밴드(1만4000~1만6900원) 최상단인 1만6900원으로 공모가를 결정했다. 참여 기관의 90% 이상이 희망 범위 상단을 적어냈다. 26~27일 공모주 청약에서는 배정 물량(37만5000주)에 4억3321만 주 몰리면서 경쟁률 1182대 1을 달성했다.
중소형 공모주가 IPO 침체 속에서도 선전하고 있는 이유는 몸값이 낮아 수급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이다. 상장 직후 물량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대형 공모주보다 주가 안정성에서 우위에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3개월간 IPO 청약증거금 1조 원 이상을 모은 신규 상장사 7곳의 공모가 대비 상장 첫 날 수익률(종가 기준)은 평균 42.9%에 달했다. 로봇부품업체 에스비비테크는 상장일 150.4%(1만2400원→3만1050원)의 수익률을 올렸다.
대어급 공모주들이 초라한 성적을 거둔 점도 중소형 IPO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몸값 3조’로 관심을 모았던 더블유씨피(WCP)는 수요예측에서 33대 1의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해 공모가를 희망 밴드 하단(8만 원)보다 낮은 6만 원으로 확정했지만 공모주 청약에서 3915억 원의 증거금을 모으는 데 그치며 체면을 구겼다. 쏘카도 밴드 하단(3만4000원)에서 공모가(2만8000원)를 대폭 낮췄지만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 등으로 경쟁률은 14대 1에 그쳤다.
특색 있거나 성장 기대감이 큰 점도 주목을 끌었다. 유기농 반려동물 사료 생산업체 오에스피가 대표적이다. 오에스피는 빠르게 성장하는 반려동물 사료 시장에 힘입어 수요예측에서 1583대 1, 청약에서 1019대 1을 기록했다. 국내 시제품(프로토타입) 업계 최초로 상장에 도전한 모델솔루션도 관심을 받았다. 모델솔루션은 자동차·IT 제품, 의료기기 등의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회사다. 삼성전자·구글·현대차·테슬라 등 다국적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연말까지 14곳 수요예측·공모청약 앞둬
10일 기준 48개사들이 상장예비심사청구서를 제출한 뒤 심사 승인을 앞둔 상태다. 연말까지 ‘알짜배기’ 중소형 공모주를 향한 관심은 지속될 전망이다. 이달 10일까지 6곳이 IPO를 진행했고 연말까지 14곳이 공모주 청약에 돌입한다. △인벤티지랩 △펨트론 △바이오인프라 △에스에이엠지엔터테인먼트(SAMG) △자람테크놀로지 △바이오노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SAMG는 17~18일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거쳐 24~25일 공모주 청약을 진행한다. 공모가 밴드는 2만1600~2만6700원이다. 공모 주식 수는 175만 주이고 구주매출은 없다. 예상 공모 규모는 378억~467억 원, 예상 기업 가치는 1932억~2388억 원이다. SAMG는 미니특공대, 캐치티니핑 등 인기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콘텐츠 제작사다. 자체 캐릭터·브랜드를 바탕으로 키즈 콘텐츠를 제작해 다양한 국내외 매체들에 공급한다.
체외진단키트 제조·판매 기업인 바이오노트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에 도전한다. 내달 8~9일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거쳐 13~14일 공모주 청약을 진행할 계획이다. 공모가 밴드는 1만8000~2만2000원이다. 공모 주식 수는 1300만 주(구주매출 포함)다. 공모 규모는 1872억~2288억 원으로 예상된다. 예상 기업가치도 1조8700억~2조2900억 원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연말 신규상장 기업들 중에서 높은 주가수익률을 기록하는 기업들이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낮은 공모가로 상장한 다음 자기 기업가치를 찾아 반등한다는 분석이다. 흥국증권에 따르면 5년간(2017~2021년) 월별 신규 상장기업의 1개월 주가수익률이 가장 높은 달은 10·11·12월이었다. 수익률은 각각 평균 30.8%, 42.8%, 33.3%에 달했다.
최종경 흥국증권 연구원은 “연말 성수기 기업 수는 많아지고 공모가는 안정돼 낮은 공모가로 상장하는 기업들을 좋은 투자 기회로 삼는 전략을 제시한다”며 “추가적으로 코스닥 특례 상장 기업들의 경우 이러한 성수기 효과가 보다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특례 상장 기업들의 연말 상장 역시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증권업계는 내년 IPO 시장과 관련해 투자자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금리 상승이 투자자의 요구 수익률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올해와 비슷하게 특정 업종 또는 종목으로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유진형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상장예정기업과 IPO 주관사가 공모가밴드 하향, 공모액 축소, 기존 투자자 보호예수 비율 증가 등 공모조건을 공모 투자자에게 더 유리하게 조정하고 있다”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인상이 일단락될 것으로 보이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공모 투자자 우위의 시장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므로 IPO 투자자는 이러한 시장 변화를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세라 대신증권 연구원은 “내년 IPO시장은 특정 섹터 및 종목에 관심 집중이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며 “전반적으로 IPO 시장에서 밸류에이션 부담을 느끼는 반면 주식시장 하락이 지속될 시 IPO 종목들의 수요예측과 수익률 양극화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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