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증강현실(AR) 모바일게임 ‘포켓몬고’가 기억난다. 당시 많은 이들은 한여름 뙤약볕 아래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포켓몬 캐릭터를 잡으러 다녔다. ‘포켓몬고’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포켓몬고’를 만든 게임업체 닌텐도의 가치도 뛰었다. 출시 직후 열흘 만에 시가총액이 무려 약 20조 원이나 불어났다.
‘포켓몬고’ 성공 배경에는 주주행동주의가 있었다. 주주행동주의는 주주가 경영진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이를 통해 기업 경영 혹은 지배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행동주의 펀드인 ‘오아시스 매니지먼트’는 2013년 처음 닌텐도의 지분을 확보한 뒤 3년간 지속적으로 모바일게임 출시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2010년 초반 닌텐도는 3년 연속 적자에도 주력사업인 콘솔게임 시장 잠식을 우려해 모바일게임을 기피하고 있었다.
오아시스는 모바일게임 시장의 규모가 콘솔게임 시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점과 슈퍼마리오·돈킹콩 등 닌텐도의 콘솔게임을 즐기던 세대들이 이제 모바일게임으로 옮겼다는 점 등을 주장하며 닌텐도 경영진을 설득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닌텐도는 이를 받아들여 AR 게임업체 니안틱과 합작해 2016년 7월 포켓몬고를 내놨다. 출시 직전 1400원대이던 주가는 같은 달 단번에 3100원대로 치솟았다. 이달 20일 기준으로도 5500원대로 양호하다.
이런 주주행동주의 바람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불고 있다. 최근 여의도에선 국내 자산운용사를 중심으로 주주행동주의 운동이 활발하다. 재벌그룹의 경영에 지나치게 개입한 ‘기업 사냥꾼’이나 단기 차익만을 추구한 ‘먹튀’ 등으로 비쳐졌던, 그간 외국계 헤지펀드의 행보와는 다른 모양새다. 이들은 경영진·오너의 불합리한 경영 방식을 바로 잡고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 12월 태광산업이 트러스톤자산운용의 반대로 계열사인 흥국생명에 대한 유상증자 지원을 포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계열사이긴 하지만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주식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흥국생명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그의 친인척 등이 장악한 사실상의 ‘가족회사’다. 트러스톤운용은 “유상증자 참여는 대주주를 위해 회사와 주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결정”이라며 주주서한을 보냈다. 이처럼 반발이 거세지자 결국 태광산업도 백기를 들고 말았다.
연예기획사 에스엠의 대주주 전횡도 바로잡았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지난해 3월·8월 두 차례에 걸쳐 에스엠에 “대주주인 이수만 총괄프로듀서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과 불공정한 용역계약을 해지하라”고 요구했다. 에스엠은 이를 받아들여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을 조기 종료한다고 공시했다.
주주행동주의는 잠깐의 유행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자본시장을 주도할 투자 전략이라고 본다. 최근 기업 경영의 대세로 떠오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펀드의 개입으로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친환경 경영을 주도한다면 기업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 배당 및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정책을 펼칠 경우 투자 매력도가 높아져 주가 상승도 기대할 만하다.
무엇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주식 저평가)’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반가운 일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로 발생하는 부분이 크다.
특히 일부 대주주들은 오너 일가의 이익을 위해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상속·증여세를 마련하기 위해 지분을 팔거나 물적분할을 일삼아 기업가치를 반토막 내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행동주주 펀드가 비상식적인 경영 행보를 펼치는 대주주·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다면 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행동주주 펀드 측에 대해서도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영위하는 기업에 대해선 최대한 경영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요구된다.
작년 한 해 증시는 힘들었다.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실적도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때일수록 기업들의 숨은 잠재력을 찾아야 한다. 행동주의 펀드가 닌텐도의 경영 성공을 이끌었던 것처럼 국내 기업들도 자산운용사의 요구를 보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새 시대에 맞는 변화를 모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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