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총선 1년여를 앞두고 본격적인 선거제 개편 논의를 위해 20년만에 개최한 국회 전원위원회가 10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됐으나 결과는 기대에 못미치는 것으로 평가됐다.
전원위는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해 크게 국회의원 정수·비례대표 선출 방식·지역구 선출 방식에 대한 합의안 도출을 시도했지만 여야의 입장뿐 아니라 개별 의원마다 이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전원위 자체가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따라 선거제 개편에 대한 국회의 최종안 도출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논의 끝에 결국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최소한의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선거제 개편안 3개 두고 나흘간 전원위 논의에도 사실상 합의안 도출 실패
지난달 21일 김진표 국회의장은 국회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선거법 개정에 관한 정책설명회를 열고 선거법 개정 논의를 위한 전원위원회에서 선거법 개정에 대한 대략적인 의견이 조율될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그는 “전원위를 일주일 정도 해보면 큰 흐름이 정해질 것”이라며 “그 흐름에 따라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과 정개특위가 각 당 지도부와 의사를 조정해 합의할 수 있는 수정안을 4월까지 충분히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전원위에서 여야는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제시한 1안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2안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3안 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두고 논의에 나섰다.
이번 전원위에서 의원 정수를 두고 국민의힘은 축소를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비례대표 의원수를 늘리기 위한 의원 정수 확대를 내세웠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스스로 키워왔던 국회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종식하기 위해서는 의석수를 늘릴 것이 아니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박수영 의원도 “국민 70%가 국회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조사가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주장은 염치없는 일로, 현재 300석의 10%라도 줄여보자”고 제안했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여당의 ‘의원 정수 축소’ 주장을 두고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며 이에 반대했다.
박상혁 민주당 의원은 “(여당의 의원 정수 축소 주장은) 합리적인 선거제 개편은 안중에 없고 지금의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해 보려는 얄팍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의원 수를 줄여 입법부의 역할이 약화하면 누가 좋아하느냐”며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도 시행령을 만들어서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행정부, 각종 이권의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관료들을 누가 견제하느냐”고 말했다.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지역구 수를 현행 253개에서 225개까지 28석을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할 것을 주장했다.
지역구 선출 방식과 관련해서는 국민의힘은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를 내세운 반면, 민주당은 소선거구제 유지와 대선거구제 도입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선거에서 최다 득표자만 당선시키는 소선거구제는 후보자 개인 인물 파악이 용이하고 선거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반면 최다 득표자만 당선되고 나머지 후보들은 당선되지 못하면서 여기에 투표한 표들은 사표가 된다.
중·대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3~5인을 선출하는 제도다. 정당의 지역 독점을 완화하고 정치 신인의 진출 기회를 확대시킨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유권자들이 많은 후보자에 대해 알기 어렵고 또 선거비용이 크다는 단점이 지적된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도시에 선거구를 두고 있는 분들과 대도시·수도권에 선거구를 두고 있는 분들의 이해가 일치되지 않는다”며 “지방과 대도시·수도권은 다른 방식의 선거제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도 “인구 50만 이상 도시는 중대선거구제를, 인구가 적은 농어촌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자”고 제안했다.
이정문 민주당 의원은 “급격한 선거제도 변화에 대한 반발과 국민 수용성 문제 등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것을 주장했다.
반면 같은 당의 박주민 의원은 대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했다. 그는 “일부는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하지만 농어촌이야말로 지역주의의 최대 피해자”라며 “농어촌은 인구 소멸로 선거구 획정이 수시로 바뀌어 지역정치가 실종되는 일이 빈번하다. 선거구 획정이 안정적인 대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또 국민의힘은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정당 득표율과 지역구 선거 결과를 연동하되 연동률을 조정해 반영하는 제도) 폐지와 ‘병립형 비례제’(정당의 득표수에 비례하여 당선인 수를 배정하는 선거방식) 도입을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현행 준연동성을 유지하면서도 지역 대표성을 키우기 위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했다.
전원위 논의 실패 평가에 ‘후속 논의’부터 ‘최소 개편 전망’까지 거론
다양한 입장에서 각기 다른 주장이 나온 가운데 이번 전원위 선거법 개정 논의를 두고 합의안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진지한 숙의 과정이 아니라 남는 것 없는 말 잔치로 끝나고 있다”며 “아무것도 합의된 게 없는데 전원위가 끝나고 며칠 안에 새 합의안을 만들어 통과시키는 졸속입법을 개혁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도 “치열한 토론도 없이, 합의 도출을 위한 성의도 없이, 그저 100인 100색의 의견만 쏟아내고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철규 의원은 “지역구에 따라, 정당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에 합치된 의견이 나오는 건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나흘째 논의하는 이 토론에서 정확한 답이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전원위가 소득이 없이 막이 내렸다는 의견이 나오자 전원위 이후에도 선거제 개편 논의를 이어가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상민 민주당 의원은 “전원위에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면 외부 인사로 구성된 공론위원회를 구성해 시안을 정해놓고 논의토록 해서 결론을 내는 것이 합당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재 국회에서의 선거제 개편 논의를 두고 최소한의 개편만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담론적 수준의 의견이 산발적으로 나와 설계도 없이 집을 짓는 모습이 됐다”며 “전원위 의견을 종합했을 때 국회의원 정수는 300명을 유지하되,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현실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 개편에서는 잘해야 지난 총선에서 가장 큰 논란이었던 ‘위성정당’을 생성하지 않게 되는 수준에만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구제 개편은 여야 합의의 문제가 아니라 의원 개개인의 이익이 걸린 문제다. 특권을 어느 정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합의에 이르기 힘들다”며 “위성정당 방지법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만 그마저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앞서 전원위에 세 가지 개편안을 제시한 정개특위는 전원위에서의 선거제 개편안에 대한 결의안을 바탕으로 법안을 만들기 위한 소위원회 구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정개특위가 구체적인 법안을 마련하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선거제 개편안이 처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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