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데스크칼럼
[스카이 View] 한동훈의 말·말·말 넘어… ‘오른쪽 길’ 찾기
▲ 임명신 정치부장·부국장
지난달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위원장직 수락 연설은 두고두고 기억될 만하다. 그의 연설은 정치의 기본이 비전과 품격을 갖춘 이어야 함을 선명하게 일깨웠다. 무엇보다 운동권 적폐 청산의 시대 인식과 함께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적시했다.  
 
그에게서 J.F.케네디의 이미지를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혜안과 용기를 떠올리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1923공산주의 당부당에서 이승만은 만민평등이란 이상 자체는 옳다()’고 인정한 후 공산주의가 그른(不當)’ 이유 다섯 가지를 열거했다.
  
당시 48세였던 이승만은 공산당의 주장을 사유재산·자본가·지식인·종교·주권국가 폐지라고 요약하며 이것들을 없애면 생길 각각의 폐해를 짚었다. ‘게으른 자 증가’ ‘지혜와 상공업 발달 중단’ ‘사회 전반의 우매화’ ‘덕의(德義) 쇠퇴’ ‘소련만 믿다가 배신당할 것등이다. 공산 체제의 본질을 이토록 단순명쾌하게 풀어낸 을 달리 들어보지 못했다. 
 
한동훈의 말에도 가치관이, 때로는 역사관이 담긴다. 정곡을 찌른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이 전달력 좋은 어조로 쏟아진다.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서면 질의 때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대한 답변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는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의 연작소설 하마에게 물리다’를 들었다. 왜 하필 이것이었을까? 아사마 산장 사건 후일담인 이 소설은 오에 겐자부로의 대표작도, 만만한 읽을거리도 아니다.
 
19722월 카루이자와의 휴양 시설인 아사마 산장에 숨어든 적군파 잔당 다섯 명이 열흘간 일반인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던 중 끔찍한 내부 투쟁·인민재판까지 겹친 끝에 다수의 사상자를 냈다. 당시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일본 사회로 하여금 운동권 환상을 졸업하게 만든 사건이다. 한 위원장이 굳이 이 역사를 소환할 작품을 거명한 데서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읽힌다. 
 
·미 문학의 고전이자 3대 비극에 속한다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 최근 베스트셀러로 부상한 것도 한동훈 효과인 듯하다. 팬카페 게시글에 따르면 어느 예비 고교생과 그 어머니가 보낸 선물에 대한 답례 소포에 이 책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한때 백경’(흰고래)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던 이 장편소설은 매우 다층적이며 심오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모비딕을 저마다 음미해 볼 것을 추천하면서 한 가지만 짚어 두자. 이 책을 선물한 한 위원장의 행위에선 해양문명적 세계관을 천명하고자 한 의지가 엿보인다. 한반도를 대륙 문명의 권위적·퇴행적 질서 끝자락에 묶어 두려는 세력과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 위원장은 모든 길이 처음부터 길은 아니었다. 함께 가면 길이 된다고 했다. 루쉰(魯迅)의 단편 고향 마지막 구절을 재해석한 표현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1920년대 초 중국의 낙후된 현실에 비애를 느끼며 더 나은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20여 년 만에 만난 죽마고우를 나으리로 부르지 않을 세상
 
주인공은 ‘희망이란 단어를 생각하고 그것의 허망함에 불안해 하다 애써 마음을 추스른다. 희망이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도 같다. 길은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청년 루쉰이 한때 좋아한 19세기 헝가리 시인 페퇴피 샨도르가 희망은 창녀. 아무에게나 웃음을 팔고 그녀에게 모든 것을 바쳐 무일푼이 되면 걷어찬다고 읊었지만 마흔 살의 루쉰은 희망=땅 위의 길로 변주해 낸 것이다. 그러나 명언으로 빛날 뿐인 희망론이다.
 
중국의 이 영구적 일당 독재·전체주의로 귀결됐으니 그 전에 병사한 게 루쉰으로선 차라리 행운이다. 공산당 치하에서 숙청을 면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루쉰 없이 중국의 근·현대를 논할 수 없건만 초·중등 교과서에서 퇴출되는 분위기가 강화됐다. 중국·중국인의 전근대성 내지 어두움에 대한 루쉰의 비판이 공산당 주도의 중화 애국주의엔 불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갈 오른쪽’에 있. ‘공산주의 당부당’ 인식이 자유민주공화국 건설로 실현됐듯, 한 위원장의 정책 브랜드인 이민청 역시 마찬가지다. 따스함보다 합리적 상생’, 다양성보다는 국가 통합성·정체성이 우선이다. 약자·서민을 위한 배려도 오른쪽 길’에서 추구돼야 한.
 
장애인 탈(脫)시설화, 의대 증원, 킬러문항·심화수학 배제, 화물운송법 개정안 등 모두 오른쪽 깜빡이를 켠 채 좌회전하는 정책이다. 뭐가 문제인지 현장의 목소리, 아니 인터넷만 열심히 뒤져 봐도 알 수 있다. 좌클릭이 중도·외연 확장이라는 당·정의 착각과 방황을 한 위원장이 정교하고 박력 있는 리더십으로 바로잡아 주시길 고대한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영입1호가 탈원전 친환경에너지 전문가인데 국민의힘은 대책이 있나 모르겠다. 민생과 산업의 근간인 저렴한 전기세를 위해 원전이 답이라고 국민을 설득할 인재를 찾아 전선을 쳐야 한다. 따뜻한 보수 ‘자수성가’ 서사의 인물들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4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새문안로 26 청양빌딩 7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조정진, 편집국장: 고동석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