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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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대한민국과 CIA’를 지면에 연재한다.
침례회 교단 최초의 신학교
한국에서 최초로 개척된 침례교회는 1896년도에 충남 논산에 설립된 강경(江景)교회이고 두 번째가 1896년 공주(公州)교회, 세 번째가 1898 내가 다니던 칠산(七山)교회라고 한다. 1950년에 미국의 남침례회 해외 선교부에서 존 애버나티(John Abernathy) 박사를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해 침례교단이 새로운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교회에서는 그분을 나요한 목사라고 불렀다.
나요한 목사가 1953년 대전에 침례교 성경학교를 설립하고 학생을 모집한다는 소문이 났을 때 칠산교회 한태경 목사로부터 급히 연락이 왔다. 그때 한 목사님은 대전성경학교 신약 교수로 임명되었는데 칠산교회에서 나를 비롯해 세 사람을 데리고 대전에 갔다. 전국에서 약 60명의 남녀 학생이 모였다. 교실과 기숙사가 있는 시설에서 우리는 가족과 같은 분위기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학비는 전액 미국 선교사들의 선교부에서 부담했고 기숙사비만 학생들이 부담했다.
얼마 후에 이 성경학교가 침례회 신학대학으로 승격되어 우리는 침례교단 최초의 신학교 학생이 되었다. 같은 구내에 남녀 기숙사가 있었고 식당은 학생들 자율로 운영했다. 각 지방에서 학생들이 모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지방 사투리로 대화를 했고 때로는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웃기는 일도 있었다.
한국말이 서툰 여학생
학생들 중에서 영어는 내가 제일 잘했다. 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로부터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눈길을 끈 학생이 또 한 명 있었다. 나와 동갑인 장시원이라는 여학생이었는데 미모는 출중했으나 한국말이 아주 서툴고 어색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일본 규슈에서 나고 자랐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방이 되자 부모를 따라 귀국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기숙사비 일부를 벌기 위해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누룽지가 나오면 사람들 모르게 살짝 내게 건네줬다.
결국 그녀도 내게 관심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이 허물도 없이 학교 생활을 계속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후에 느낀 일이지만 운명의 길을 가름하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내 주변에서 감돌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기숙사엔 엄격하고 무섭기로 소문 난 사감 집사가 남녀 기숙사에 각각 한 명씩 있었는데 그 두 사감 집사가 우리 두 사람을 자주 불러 그들의 가족 식사에 참석시켰다. 사감 집사들은 무슨 특별한 음식을 차리는 날이면 내게만 살짝 몇 시까지 집에 오라고 귀띔을 하곤 했다. 그런데 가 보면 언제나 그녀가 먼저 와 있었다. 어째서 그 두 분이 우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을까.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서로 마음으로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다. 출출할 때는 마음에 맞는 몇몇 학생들이 기숙사 밖 대전역 부근으로 찹쌀 도넛을 사 먹으러 몰려다녔는데 그때 그녀가 꼭 우리 편에 끼곤 했다. 하얀 설탕가루가 묻은 찹쌀 도넛이 그때는 왜 그렇게도 맛이 있었는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당시 나는 훗날 그녀가 나의 배필이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보지 못했다.
울릉도의 병아리 전도사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동급생인 이진석과 강창석이 학교를 그만두고 울릉도에 가자고 나를 꼬드겼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신학교 생활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울릉도에 간다는 게 내게는 새로운 도전으로 느껴졌다. 그 당시 울릉도에는 침례교회가 14개 있었지만 연로하신 김석규 목사님 한 분이 순회 목회를 하고 있어 젊은 전도사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목회 실습 전도사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포항을 거쳐 울릉도에 들어갔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두 살, 지금 같으면 세상물정 모르는 선머슴이지만 그때 우리는 너무나 조숙했고 어른스러웠다.
1955년 3월 초, 우리는 포항에서 알마크 여객선을 타고 11시간 동안 밤새 항해해서 다음 날 아침 9시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김석규 목사님 댁에서 며칠간 휴식한 후 강창석은 저동침례교회, 이진석은 도동침례교회, 그리고 나는 사동침례교회와 중령침례교회에 전도사로 배치되었다. 이후 우리 병아리 전도사들 주변에 같은 또래의 청년층 신자들이 모이기 시작해 교회는 매주 축제 분위기였다.
나는 사동교회와 중령교회를 지키면서 남양교회와 학포교회에도 한 달씩 가 있었다. 우리들의 활동은 총회와 신학교에 보고되었다. 훗날 2007년 기독교한국침례회가 발간한 역사연감 1003쪽에는 사동교회 3대 교역자로, 1005쪽에는 중령교회 2대 교역자로 내 이름이 올라 있다.
울릉도는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한 섬이다. 주민들은 착하고 순박하며 부지런했다. 섬은 마치 팽이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벼농사를 지을 평평한 무논은 한 군데도 없이 농경지가 모두 경사진 밭이며 감자와 보리가 주곡이었다. 우리는 울릉도에 머무는 동안 내내 보리밥과 감자밥만 먹고 살았다. 그러나 공기 좋고 물 좋고 여러 가지 산나물과 바다 생선이 밥상에 올라왔다.
사오월에는 미역을 따고 오뉴월은 꽁치 잡는 철이며 육칠월에는 오징어잡이로 섬 전체가 분주하다. 오징어 철이 되면 먼바다에 어선들의 불빛이 성시를 이룬다. 여름에는 교회 청년들과 함께 바닷가에 나가 전복·소라·홍합을 가마니로 따다가 소여물 쑤는 큰 가마솥에 삶고 밀짚 방석에 모여 앉아 즐겁게 먹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헬리콥터 비행장도 생기고 섬 주위에 포장도로가 있어서 승용차와 택시·화물차가 다니지만 당시엔 자전거조차 없이 그저 걷거나 노 젓는 배를 타야 했다. 그래도 그때 우리는 교회로부터 끔찍한 사랑을 받았으며 울릉도에서 지낸 나날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
청혼의 회오리바람
그러나 그런 중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 병아리 전도사 셋이 20대 초반의 총각이었기 때문에 딸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청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지혜롭게 처신해야 했다. 내가 전도사로 일하고 있던 사동교회에서도 처녀 몇 명이 나 한 사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 아랫집에 사는 집사 한 분은 단도직입적으로 자기 딸과 혼인하라고 간청했다. 이 전도사와 강 전도사는 어떻게 그 회오리바람에서 벗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그 무렵 신학교의 장시원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우리가 대전을 떠난 후에 자신도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에 있는 선교부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아직 그녀에게 확실히 마음을 정한 건 아니었지만 은근히 그녀의 소식이 궁금했고 편지가 왔을 때는 너무 기뻤다.
울면서 떠난 울릉도
한여름이 지나갔다. 바닷가에서 오징어 말리는 덕대가 사라지면 여름이 끝난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또 찾아왔다. 도동에 있는 경찰서에서 수시로 찾아와 내가 징병 기피자라고 괴롭히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징집영장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기피자가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그해 연말에 고향에서 징집영장이 나왔다는 기별이 왔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울릉도를 떠나야 했다.
떠날 때 교회로부터 오징어 한 축을 선물로 받았고 도동항에서 배를 타고 사동 앞을 지날 때 내가 머물던 숙소 앞마당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도 울었고 그들도 울었을 것이다. 나를 아들처럼 아껴 주시던 김숙희 집사님이 제일 많이 울었을 것이다. 도동과 저동에 있던 이 전도사와 강 전도사도 이듬해에 울릉도를 떠났고 신학교에 돌아가 졸업을 했다. 두 사람은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 본격적인 목회 생활을 시작했지만 나는 군에 입대한 후 운명에 이끌려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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