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29] 아벨을 떠난 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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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속에 갇힌 사람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11 06:30:10

“아벨을 흐뭇하게 여기시고 그가 바치는 제물을 기쁘게 받으셨으나 카인은 좋게 여기지 않으시고 그가 바친 제물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는 성경 구절은 아버지와 나와 달봉의 관계를 예견한 것만 같았다. 더구나 아버지를 이은 것은 피로 연결된 내가 아니었다. 내가 탯줄 잘린 고아처럼 아버지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지하 세계를 하염없이 맴도는 동안 “저것이 사람 구실이나 할까 모르겠다”며 혀를 차던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천방지축 개구지던 달봉은 신학을 공부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었다.

아담의 첫 번째 아내 릴리트는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아들까지 잡아먹었다는 모함을 받았지만 카인이 릴리트의 아들은 아니었을까, 나는 추측했다. 이브의 아들인 아벨을 질투한 릴리트의 아들 카인, 생각이 거기에 닿자 모든 게 명확해졌다. 내가 바로 카인이었다. 달봉이 아벨이었다. 나는 아벨을 살인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떠나야 한다는 조바심에 시달렸다. 그러한 상상이 나의 고립과 소외를 정당화시켰고 그들의 세계로부터 점점 나를 멀어지게 했다.

아버지를 잊고 살았다. 차라리 아버지도 없는 고아이길 바랐다. 아내와 아이가 내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도 떠났고 나는 혼자였다. 아버지를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내 발걸음에 그리움의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나온 자리, 나를 존재케 했던 사람, 삶의 순환선을 쉼 없이 달리게 했던 내 인생의 출발역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발그레한 뺨과 작은 입술, 둥근 이마, 커다란 눈이 웃었다. 아버지가 그린 것은 건의 그림처럼 단순화되어 있는 사내아이였다. 나는 유리창 너머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제 저토록 작아졌을까. 아버지는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연약하고 구부정한 낯선 노인일 뿐이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요.”

조금 전 상담실에서 담당 의사가 말했다.

“현실은 사라지고 과거 속에 갇혀 버린 거죠. 곧 그마저도 사라질 테지만.”

3년 전부터 아버지는 치매를 앓았다. 천길자와 고부간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고 있던 아내는 생전 감정 표출을 하지 않던 아버지가 화를 내고 욕설을 뱉고 물건들을 집어 던져서 그들 가족이 힘들어한다는 이야길 전해 주었다. 집에서 간병하기가 힘이 드니 치매 전문 요양병원으로 모셔야 할 것 같다며 내게 동의를 구했을 때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그 사람들 마음대로 하라며 아내를 통해 뜻을 전했다.

“사모라고 부르는 건 어때?”

천길자를 가리켜야 할 때면 우물우물, 호칭을 선택하지 못하는 내가 딱하다는 듯 통화를 마친 그날 저녁, 아내가 제안했다. 목사의 부인(師母)이란 뜻보다는 어머니라는 한자가 들어 있어서 그들과도 타협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어떻게든 나를 가족의 이름으로 그들과 묶어 놓고 싶어 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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