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아아 우크라이나… 7.27에 생각하는 전쟁과 정전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데스크칼럼

임명신 국제문화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7-24 00:02:40

7월27일은 71년 전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조인된 날이다. 북한에선 전승기념일로 기념돼 온 이 날의 의미를 우리는 대부분 모른 채 살았다. 대한민국 건국·호국·산업화 세력이 역사 해석 주도권을 상실한 이래 6·25와 7.27의 의미 역시 서서히·철저히 혹은 처음부터 왜곡됐다.

1월 윤미향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 명의로 국회 건물을 빌어 열린 한 토론회에서 북한의 전쟁관을 옹호한 주장이 난무해 충격을 준 바 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지지자들은 6·25전쟁을 민족해방전쟁으로 여길 사람들이다. 다만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끔찍한 전쟁은 없었을 테고 그 시점에서 통일됐을 것이란 시각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지난 30여 년 간 꽤 늘어나 있다.

이런 역사관은 나아가 정전협정문에 대한민국 측 서명이 빠져 있다는 게 전쟁 당사국으로서 부끄러운 일인양 여기게 만들었다. 2020년 영화 ‘강철비2’에서 대통령(정우성 분)은 이 사실이 금시초문인 아내에게 학교 선생이면서 그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준다. 7.27 정전협정의 내막과 의의를 모르면 이에 동조하기 쉽다. 실은 정전협정 거부야말로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비범한 ‘신의 한 수’였다. 미국을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 끌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이승만은 반공포로 석방을 전격 감행했다. 정전협상 판 자체가 깨질 위험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년도 안 돼 또 전쟁에 말려든 미국 등 주요 참전국 리더들이 경악했다. 자국 내 여론을 신경쓰며 한반도 상황을 하루빨리 수습하고 발을 빼고픈 그들은 이승만에게 끌려다니게 됐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성사돼 특히 미국은 단단히 코가 꿰였다.

애당초 ‘분단 상태의 휴전’이란 통일주의자 이승만으로선 용납 못 할 일이었지만 국제정세상 불가피한 상황에서 벼랑 끝 전술이 구사됐다. 이승만은 정전을 위한 협상에 아예 응하지 않음으로써 휴전, 즉 분단 지속에 끝까지 반대하는 명분을 세울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북한·중공을 상대로 협정에 임한 미국을 조종하며 국익을 챙길 수 있었다.

7.27 정전협정 불참의 또 하나 성과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엔군사령부(16개국 연합·유엔사)의 존재다. 정전을 거부한 대한민국이 북진 통일을 시도해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유엔 차원의 유일한 참전 사례인 유엔사가 정전 상태 감시차 한반도에 남게 됐다. 유사시 유엔 명의로 나설 수 있어 북한으로 인한 급변 사태에 중국이 함부로 끼어들 수 없다는 효과도 발휘한다.

3년째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떠오른다. 대한민국처럼 될 수 있을까. 지정학적 유사점을 생각할 때 자연스레 도달하게 되는 질문이다. 우울한 예상 속에 새삼 주권국가로서의 생존이 얼마나 만만찮은 일인지 통감하게 된다.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워싱턴 정상회의에서 이뤄진 우크라이나 지원 약속들은 향후 자국중심주의 물결 속에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의제에 오르지도 못했다. 러시아 승산의 전망 때문이다. 카길·듀폰·몬산토 등 우크라이나의 농지 약 30%를 사들인 다국적 기업들 이외의 미국인에게 이 전쟁 지원은 무의미한 지출이라고 일찍부터 지적됐으며 그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지난 주 미 공화당 전당대회에 찬조 연설자로 나선 터커 칼슨(전 폭스뉴스 앵커), 이후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J.D.밴스 상원의원 모두 확실히 선을 그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전쟁은 미국 일이 아니다” 심지어 “지원을 계속한다는 것은 납세자들에 대한 모욕”이라고까지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대한민국의 지난 70여 년 같은 역사가 재현되길 바란다. 전쟁을 통해 온전한 ‘국민’으로 거듭나 거기서 중산층이 나오고(산업화) 차차 권력의 견제·감시시스템을 구축(민주화)하는 과정 말이다. 그러나 현재로선 우크라이나전쟁과 6·25전쟁 사이에 다른 점이 더 두드러진다.

젤렌스키에게 강대국을 쥐락펴락할 이승만 식 경륜을 기대하긴 어렵다. 또 시대 상황이 완전히 다르고 미국 등 서방이 그때의 그들이 아니다. 냉전의 최전선 대한민국에겐 비극과 혜택이 공존했다. 자유세계의 후원과 한국인들의 잠재력이 만나 꽃을 피웠으며 산업화 과정에서 거대한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던 것도 사실상 냉전 상황 덕분이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무엇의 최전선인가. 우크라이나전쟁 아니었으면 미국과 러시아는 대립할 필요가 없었고 궁극의 위협인 중국을 제어하기 더 어려워질 일도 없었다. 함께 피 흘릴 나라가 없다는 것 또한 냉엄한 현실이다.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의 고통을 이해하지만 21세기 러시아가 권위주의 정권이긴 해도 스탈린이나 김일성 체제 정도는 아니다. 소련과의 분명한 단절을 강조해 온 것도 푸틴의 러시아다.

소련 해체 이래 30여 년, 짧게는 2014년 마이단 혁명 이래 서방세계의 약점까지 빠르게 우크라이나에 전수된 듯하다. 서구식 ‘역사(적폐) 청산’인 캔슬컬처 흐름까지 판박이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뒷배인 유럽연합(EU)의 주류는 신좌파 내지 정치적올바름(PC)주의에 침윤된 지 오래다. 아아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이 늦어질수록 스스로 파괴된다. 서방 말에 이끌려 전쟁을 지속한 게 패착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