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97] 왜 가까이 있는 건 소중한 줄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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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쳐 버린 것만 아쉬워하는 외눈박이 사랑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24 06:30:10

“당신은 가까이 있는 건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요. 잡을 수 없는 것, 놓쳐 버린 것만을 아쉬워하는, 그런 외눈을 가진 사람이니까요.”

나는 항복했다. 그녀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하운과 나는 방을 나와 주차장으로 갔다. 그녀가 나를 차에 태워 데려다준 곳은 어두운 골목길이었다.

“우리, 마지막인 건가요?”

나는 풀이 죽어서 물었다. 하운이 내 눈을 바라보았다. 따뜻하지만 사무적인 트러스트 미 재단 일원의 눈빛이었다.

“당신이 내 삶에 들어오길 원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당신의 삶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해서, 당신과 내 삶이 무관한 것은 아니에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난 당신 편으로 남아 있을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와 눈빛에는 인간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진실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조금도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궁금한 게 있어요.”

차에서 내리려다 말고 내가 물었다. 어두운 골목 앞에 자동차를 세운 하운이 나를 돌아보았다. 가로등은 오늘도 켜지지 않았다. 자정까지는 고작 1시간 남짓 남아 있었다.

“그 아이, 악마의 발톱인가요?”

몇 시간 전 어비수스의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주차한 자동차가 있었다. 정신없이 템플로 뛰어가느라 스치듯 잠깐 본 것이었지만 차에서 내린 소년은 분명 지하철에서 만난 파란 운동화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적 있던 마이크가 운전석에서 내려 안대로 눈을 가린 아이를 안내하고 있었다. 하운은 잠시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아인, 투명해지고 있어요. 세상에서 자신을 지워가는 거지요. 슬픔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유난히 하얗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아이도 죽게 됩니까?”

하운은 다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트러스트 미는 정답을 갖고 있지 않아요. 답을 찾아내는 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죠.”

하운이 멀리, 골목 끝까지 빼곡하게 채워진 어둠을 바라보았다.

“답을 찾을 때까지 지켜봐 줄 수 있을 뿐이에요.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하운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 아이도 답을 찾아낼 거예요. 용감하게 트러스트 미의 문을 두드리고 스스로 찾아왔으니까요. 당신처럼.”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고 나는 말하지 못했다. 하운이 계속 이야기했다.

“당신도 그 아이도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스스로 이겨내게 되겠죠. 수많은 문제를 만나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끝까지 걸어가게 될 거예요.”

그녀가 날 보며 미소 지었다. 처음에 만났을 때 느꼈던 냉정하지만, 신뢰할 만한 미소였다.

나는 차에서 내려 문을 닫았다. 하운도 운전석에서 내렸다. 내가 하운에게 다가가 붕대가 감기지 않은 손을 내밀었다. 고마웠다, 말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말도 하지 못했다. 하운이 내 손을 잡고 악수했다. 그녀가 손을 놓으려 할 때 내가 그녀를 끌어당겼다. 세상의 끝에 선 듯 그녀를 가슴에 안았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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