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쓰는 역사 [34] ‘꽃 피는 대나무’라 불린 닭의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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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장풀을 가까이 두고 즐겼던 두보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0-28 11:27:13

‘달개비’로도 불리지만 ‘닭의장풀‘ 혹은 ‘닭의 밑씻개’ 등 야릇한 이름을 지닌 이 식물의 꽃은 주로 아침에 핀다. 이슬이 맺힌 채 피어나고 해 질 무렵 꽃잎을 닫는 ‘하루살이꽃’으로 영어 이름도 ‘데이플라워(dayflower)’다.

닭의장풀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가 몇 가지 된다. 닭장 주변에 흔히 자라는 풀이어서, 꽃잎 모양이 닭벼슬을 닮아서, 가늘고 속이 비어 있는 줄기가 닭 창자 같아서, 양 갈래로 나뉜 꽃 모양이 닭 모래집과 비슷해서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전란 등으로 파란만장했던 두보의 일생

닭의장풀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번식력도 뛰어나 잡초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닭의장풀을 매우 좋아했던 당나라 시인 두보는 이를 마디째 뜯어다 수반에 꽂아 가까이 두고 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고 한다. 두보는 닭의장풀을 ‘죽절채’라고 불렀는데 그 잎이 댓잎과 흡사해 ‘꽃 피는 대나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두보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란과 재해로 피란을 다니거나 가족과 헤어져 외롭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등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두보를 특히 힘들게 했던 재앙은 ‘안녹산의 난’이었다. 755년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자 가족과 함께 피란길에 올랐던 두보는 가족을 강촌에 남겨 두고, 새로 즉위한 황제 숙종을 찾아 닝샤성으로 향했다. 하지만 황제를 만나기도 전에 반란군에게 붙잡혀 수도 장안으로 끌려갔다.

두보는 장안에 억류되어 지낼 무렵의 심경을 ‘춘망(春望)’이라는 한시에 담았다.

나라가 망하니 산과 강만 남아 있고(國破山河在)/ 봄이 온 성에는 풀과 나무만 무성하구나(城春草木深)/ 시절을 생각하니 꽃이 눈물 흘리게 하고(感時花濺淚)/ 이별한 새는 마음을 놀라게 하는구나(恨別鳥驚心)/ 봉화 연기가 석 달 동안이나 계속되니(烽火連三月)/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보다 값지다(家書抵萬金)/ 흰 머리를 긁으니 머리카락이 또 짧아지고(白頭搔更短)/ 이제는 비녀조차 꽂지 못하겠구나(渾欲不勝簪)

안녹산의 난이 일어난 때 당나라 황제는 현종이었다. 현종의 통치 초기는 ‘개원의 치’라고 일컬을 정도로 태평성대였다. 경제적 번영을 이룬 것은 물론 실크로드를 통해 당나라의 선진 문화가 서역으로 전파되었고 서역과 활발한 교역을 이룬 장안은 국제도시로 인정받았다.

당나라를 뿌리째 흔들어 놓은 안사의 난

그러나 양귀비를 들인 이후 현종은 정치에 무관심해졌다. 이임보라는 재상이 나랏일을 대신했는데 그는 사리사욕만 챙기는 전형적인 탐관오리였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귀족 세력을 견제했고 이민족 출신을 변방의 절도사로 등용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이민족으로서 절도사가 된 인물 중 하나가 안녹산이다.

페르시아인 아버지와 돌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안녹산은 당나라 군대에 들어가 변방 토벌 작전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그는 권모술수로 현종과 양귀비의 신임을 얻었는데, 불뚝한 그의 배에 무엇이 들었느냐고 현종이 묻자 안녹산은 충성심이 가득 들었다고 대답할 정도로 아첨을 일삼았다. 양귀비보다 열 살 넘게 나이가 많았지만 안녹산은 자신을 양아들로 삼아 달라고 양귀비에게 간청하기도 했다.

이임보가 세상을 떠나자 양귀비의 사촌 양국충이 재상이 되었다.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안녹산은 755년 반란을 일으켰고 이듬해 자신이 세운 나라 대연(大燕)의 황제가 되었다. 반란군이 장안으로 쳐들어오자 현종은 피란을 떠났지만 황제를 호위하던 금위군이 양국충을 제거하고 양귀비도 죽일 것을 현종에게 강요했다. 결국 양귀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현종은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길게 이어진 전란 속에 ‘짧았던 즐거움’

757년 안녹산이 부하 안경서에게 살해되었지만 전란은 끝나지 않았다. 이듬해 안경서의 부하 사사명이 반란을 일으켜 대연의 황제 자리를 빼앗았다. 안녹산의 난이 사사명의 난으로 이어졌고 이 ‘안사의 난’은 10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이 전란으로 큰 타격을 입은 당나라는 국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망국의 길을 걷게 되었다.

말년의 두보는 ‘강남봉이구년(江南逢李龜年)’이라는 시를 지었다. 당대 최고의 명가수 이구년과의 만남을 노래한 이 시에서는 삶에 지친 두보의 허무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기왕의 저택에서 (당신을) 늘 보았고(岐王宅裏尋常見)/ 최구의 집에서도 수없이 (당신의 이야기를) 들었소(崔九堂前幾度聞)/ 바로 경치 좋은 이곳 강남에서(正時江南好風景)/ 꽃 지는 시절에 그대를 또 만났구려(落花時節又逢君)

닭의장풀의 꽃말은 ‘짧았던 즐거움’이다. ‘짧은’이 아니라 ‘짧았던’이라 과거 시제를 꽃말에 사용한 것이 왠지 예사롭지 않다. 일생 전란과 재해에 휩쓸려 살았던 두보의 삶에서 편안하고 즐거웠던 시절은 얼마나 될까. 유난히 굴곡진 두보의 삶이 아니더라도 거의 모든 인생은 ‘하루살이꽃’처럼 짧고 허망하다. 힘든 세월을 정신없이 지내고 어느 순간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보면 어느새 ‘꽃 지는’ 때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대부분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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