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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조약기구(NATO·나토) 32개국 외무장관들이 3∼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 모인다. 2일 나토에 따르면 마르크 뤼터 사무총장 주재로 이틀간 열리는 이번 회의에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참석한다. 회의 첫날 오후 고위급 협의체 ‘나토·우크라 이사회’ 실무 만찬에 시비하 장관도 함께할 예정이지만 우크라이나의 염원인 ‘나토 가입’ 쪽으로 진전될지는 미지수다.
이번 회의를 통해 회원국들 간 ‘이견 재확인’ 이상의 것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우크라의 나토 가입이야말로 러시아로선 받아들이지 못할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2022년 2월 전쟁 발발의 먼 배경이기도 하다. 우크라가 나토의 일원이 되면 만일의 경우 러시아는 5분 내 모스크바 타격을 당할 수 있다. 유럽의 빵바구니로 불리는 비옥한 우크라이나 평원이지만 러시아에겐 오랜 안보 위협이다. 실존적 두려움으로 치자면 나폴레옹전쟁과 나치침공의 최대 피해자 러시아 쪽이 강렬하다.
2019년 2월 우크라이나가 헌법 개정안에 ‘나토 가입’을 명시해 통과시킨 직후 페트로 포로셴코 당시 대통령이 “역사적 순간”이라며 감격을 표했다. 일부 석학 등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가운데 우크라의 나토를 향한 질주와 함께 러·우전쟁의 불씨가 지펴진 셈이다. 거대 다국적 기업과 연결된 서방 세계 정치인들이 부추긴 측면 또한 부인 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게 만든 2013년 11월~2014년 2월 이른바 ‘유로마이단 혁명’ 배후가 서방이었고 심지어 몇몇 정치인들이 현장에서 연설까지 했다.
‘나토의 동진(확장)은 없다’ 말만 믿고 1991년 소련을 자진 해체한 후 약 10년간 극도의 경제난과 사회혼란으로 지옥을 본 러시아에겐 ‘서구에 속았다’는 배신감이 크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깃발 아래 벌어진 러시아계 주민 핍박을 종식시키고자 받아들인 2014년 민스크협정이 우크라 재무장을 위한 시간벌기였다는 게 밝혀져 러시아에게 다시 한 번 좌절감을 안겼다. 러·우 전쟁을 초래한 또 하나의 이유다.
시비하 장관은 지난달 29일 “이번 나토 외교장관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 절차 첫 단계인 ‘가입 초청’을 결정해달라”고 서한을 보냈다. 그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영국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나토 가입이 승인된다면 러시아 점령하의 영토를 수복하지 못하더라도 휴전협상에 임할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가입시킬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게 나토의 처지다. 헝가리를 제외하면 늘 한목소리로 우크라 지원을 다짐하지만 실현할 의지·역량 모두 턱없이 부족하다.
젤렌스키가 영토 일부를 포기하면서 휴전협상에 임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긴 개전 이래 처음이다. 그는 전날 EU 새 지도부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계기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토 가입이)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며 연일 나토의 결단을 공개 촉구하기도 했다. 북한군 파병설을 내세우며 감행한 러시아 후방 공격도 극초음속 탄도미사일 ‘오레슈니크’가 맞대응하듯 발사되자 우위를 잃었다.
내달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미국의 대(對)우크라 지원이 중단되거나 조기 휴전협상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관측되면서 나토의 시름은 더욱 깊어만 간다. 10월 초 취임하자마자 연일 주요 회원국들을 잇달아 방문하던 뤼터 사무총장도 지난달 26일 이후 공개 행보를 멈춘 상태다. 나토 가입을 전제한 우크라 측 ‘출구전략’에 적극 동조하기 난감한 내부 사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나토는 7월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되돌릴 수 없는 경로에 들어섰다”고 선언했으나 가입초청 등 구체적인 타임라인을 제시하지 않았다. 미국·독일 등 ‘반대파 회원국’들이 러시아와의 직접 대결을 우려한 것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 여전히 ‘파병’을 말하는 EU 엘리트가 있다. 1일 안사통신·유락티브 등에 따르면 갓 취임한 EU 신임 외교안보 수장 카야 칼라스 위원은 키이우행 야간열차에서 취재진의 파병 관련 질문에 “어떤 옵션도 배제돼선 안 되며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칼라스 위원은 구 소련 일원이던 에스토니아의 총리 출신이자 대러 강경파다. 그녀는 사견임을 전제한 다음 향후 휴전협상 시 EU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휴전을 말하려면 푸틴이 다시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필요하다”며 파병 필요성을 역설했다. 비서구인들에겐 생소한 인식이다. 러시아는 감당 못할 만큼의 광대한 영토를 가졌고 에너지·식량 자급국이다. 푸틴 역시 ‘영토 욕심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입장을 기회 있을 때마다 밝혔다.
한편 “우크라이나가 선택할 일” “(우크라를 위한) 가장 강력한 안전보장이란 나토 가입” 등 칼라스의 발언은 실속 없이 남발돼 온 EU 엘리트들의 수사(修辭) 범위를 넘지 못한다. 다만 “EU 내 합의 도출이 갈수록 힘들어진다. (추가 지원 외에) 다른 선택지가 안 보인다”는 토로엔 나토의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나토의 주축인 미국의 조 바이든 현 정부가 지난 번 우크라의 러시아 후방 타격을 위해 장거리미사일 제한을 해제한 것 같은 중대한 다른 결정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 이번 나토 회의에서 설사 원론적 합의에 도달한다 해도 트럼프 취임 후 뒤집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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