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94] 강윤희, 너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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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4-28 06:20:50

승연은 승준 엄마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무엇보다 승준 엄마가 딸 수정에게 어떤 저의로 그런 말을 했는지 참을 수가 없었다. 내년 대학입시를 앞두고 예민한 상태에 있는 딸이다. 수정의 심사를 뒤틀리게 해서 성적을 떨어뜨릴 의도였는지, 식사 자리에서 당한 망신에 대한 보복이었는지 몰라도 충분히 유치하고 저급한 시도였다.

승준 엄마는 이미 수정으로부터 자신이 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에, 잘 있었어요? 공부하는 애가 얼굴에 신경 못 쓸 텐데 어쩜 갈수록 예뻐지냐며 뜬금없는 소릴 해댔다.

승연은 더는 기다릴 수 없어서 다짜고짜 따졌다. 수정이가 받은 충격을 생각하면 머리채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슨 얘기를, 어떤 의도였는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내 딸에게 무슨 말을 한 거죠?”

“무슨 말을 했냐니, 내가 무슨 말을 해요. 엄마 닮아서 예쁘다고는 했는데.”

승준 엄마는 시치미를 뗐다. 승연 입에서 그 이야기가 나오길 기다린 것이다. 입에 담기도 끔찍한 내용을 승연이 먼저 꺼내길 바란 것이다. 다음 순서는 승연이 몰라서 그래요? 수정이한테 별 얘기 다 했던데! 하며 따지는 거겠지. 승연은 이런 능구렁이한테는 정공법을 써야 한다는 걸 알았다. 승준 엄마는 미끼를 덥썩 문, 대가리 나쁜 열대어였다.

“당신 나 알아? 내가 학교 다닐 때 뭐 했는지, 당신이 더 잘 알 거 아니야. 좋아, 그럼 나는 승준이 찾아가서 당신이 뭘 하고 다녔는지 이야기할 차례네요. 내가 바보인 줄 알아요?”

승연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승준 엄마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승준 엄마 반응이 그려졌다. 그게 아니라, 수정 엄마가 뭔가 오해하고 있나 본데, 하며 변명할 것이다. 승연의 예상대로였다. 그게 아니라, 오해 어쩌구 하며 승준 엄마는 만나자고 했다. 무조건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블러핑은 효과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승준 엄마는 기억에 없는 사람이었다. 앨범을 뒤져 봐도, 기억을 분해하고 헤집어 봐도 승준 엄마에 대한 데이터는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이제 승준 엄마의 시간 여행으로 들어가 퍼즐을 맞추면 된다. 며칠 전부터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안절부절못했던 승연이었다.

승준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몰라도 당장 만나자는 걸로 봐서 승준 엄마 역시 승연과 과거 어느 한 부분에 공통분모가 존재했을 것이다. 승준 엄마가 스스로 털어놓을 때까지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급했다. 음료수 주문도 안 했는데 승준 엄마가 변명을 시작했다.

“내가 지난번 이태리 음식점에서 우리 만났을 때 난 긴가민가했었죠. 내가 아는 오승연 씨 맞나 해서. 그래서 수정이한테 엄마 이름이 오승연이냐고 물었던 거고. 맞다,고 하니 옛날 기억이 나더라고요. 그 얘기밖에 안 했어요. 다른 건 일반적인 얘기였지 수정 엄마 얘기가 아니라니까. 수정이가 뭐라 그래요? 난 딴 얘긴 안 했어. 그때 우리 다 묻기로 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해. 그리고 우리 그 일이랑 상관없잖아요.”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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