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업을 시작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커피를 내릴 때마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곤 해요. 만일 제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편견의 벽을 넘지 못했다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오진 못했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고향 분들에게 편견의 벽을 넘을 마음만 가진다면 함께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
커피는 현대인에게 있어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음료다. 눈을 뜨면 모닝커피부터 찾을 만큼 우리 생활과 가깝다. 커피의 고소한 향기는 우리의 마음을 여유롭고 안정케 하며, 나름 조금의 여유도 선사한다. 커피는 콩의 종류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로스팅 과정도 다양해서 그 맛은 천차만별이다. 커피는 수요가 큰 시장이지만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기엔 경쟁이 치열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커피가공 시장의 중심에 탈북여성 기업인 박혜성 ㈜진솔 대표(36)가 있다.
박 대표가 경영하는 주식회사 진솔은 전국 편의점과 커피전문점에 공급하는 ‘DUTCH COFFEE STORY’ 브랜드 41가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 이 회사에서는 커피 마니아들에게는 익숙한 ‘콜드브루 커피’도 생산된다.
“‘진솔’은 진실하고 솔직한 기업이라는 뜻이에요. 고객을 우선에 놓고, 고객을 위한 정직한 서비스를 실천한다는 것이죠.”
사회적 편견을 이겨내고 더치커피·수제도넛 전문제조기업 세워
“어릴 때부터 경영학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2011년 7월 한국에 입국한 후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죠. 하지만 졸업 후 전공분야의 직업이 아닌 사회복지사가 됐어요. 왠지 모르게 저와 같은 탈북민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복지사로 일하면서 맡은 업무를 원만히 하기 위해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했고, 회원이 100여명인 봉사단도 만들어 봉사를 꾸준히 해왔죠. 그 당시 탈북민들의 취업이 하도 어렵다 하여 직접 나서서 경험삼아 면접도 봤어요. 하지만 탈북민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장벽이 생각보다 높더라구요. 그래서 그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복지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창업해서 그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죠. 그러다 경험이 쌓이면서 커피전문점을 넘어 더치커피·수제도넛 전문제조기업인 주식회사 진솔을 세우게 됐어요. 현재는 남북한 출신 임직원들이 함께 힘을 모아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요.”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박혜성 씨는 광주광역시에 정착했다. 아무도 없는 낯선 땅에서 그는 조금은 늦은 나이었지만 대학 경영학부를 졸업하고 송광종합사회복지관에서 사회복지 담당자로 취직했다. 경영학부 출신인 그가 복지관에서 일하게 된 것은 자신과 같은 탈북민들을 돕고 싶어서였다. 복지사로 일하면서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호남대학교 사회복지과에 편입해 공부도 했다.
한편으로 100여명의 ‘한마음봉사단’을 조직해 자원봉사도 다니고 탈북민들의 취업을 위해 직접 면접현장에 나가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탈북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장벽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특히 취업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괜찮을 거라 생각한 직업마저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는 복지사 초창기엔 취업에 실패했다는 탈북민들의 이야기가 믿기지 않아 자신이 직접 이력서를 쓰고 면접에 응한 적도 있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회사마다 면접을 본 후 궁금해서 탈락 이유를 물어보면 그에게 돌아오는 답은 대체로 비슷했다고 한다.
“우리 일은 서비스직이어서 억양이 이상하면 바로 매출에 영향을 미쳐요”
그는 이런 말을 여러번 듣고 나서야 탈북민들의 취업이 왜 힘든지 알게 됐다고 전했다.
도넛 서비스로 영세가게의 반전을 이끌다
“아무리 애를 써도 탈북민들의 취업 문제는 난제였어요. 복지사가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제가 창업해보기로 결심하게 됐어요. 모아둔 돈으로 친한 동생과 함께 동네의 자그마한 커피가게를 인수했어요. 번화가의 가게는 금액상 비싸서 엄두를 못 냈죠. 하루 매출이 겨우 16만원을 오르내리는 B급 상권이었어요. 변신이 필요했어요. 서비스가 생명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매일 도넛을 만들어 커피를 드시는 분들에게 드렸죠. 손님들의 반응이 점점 좋아졌고, 매출도 오르기 시작했어요. 가끔 남는 도넛은 당일 복지관에 가져가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달라며 전하고 오곤 했어요.”
“간혹 오시는 손님들 중에는 고향이 강원도인지 부산인지 에둘러 묻는 분들이 있어요. 그때마다 저는 탈북민임을 숨기지 않았죠. 진심이 통하니 솔직히 말투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았어요.”
당시 가게 오픈은 오전 10시였다. 하지만 그는 새벽 4시면 가게로 나갔다. 가게가 제 모습을 갖추기까지,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딸은 매일 도넛을 만드는 엄마 옆, 유모차에서 아침을 맞았다고 한다. 7개월 만에 가게 매출은 일평균 66만원으로 뛰었고 도넛 서비스 효과로 인해 여러 곳에서 납품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각지 않은 곳에서 대박을 터뜨린 그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동네 커피가게가 커피를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처음 창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탈북민과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였던 만큼 사업 확장은 필수였어요. 물론 기업을 일으켜 세울 만한 자금은 없었죠. 그래서 광주대학교에서 진행했던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된 거죠. 법인을 만들고 사업개발비를 투자받고, 소자본 창업부터 시작해서 전문가 상담을 통해 배워나갔어요.”
“그렇게 2019년 11월 광주 평동산단에 사회적 통일기업인 첨단 세븐빈 콜드브루 생산라인을 구축할 수 있었어요. 많은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현재 저희 회사는 국내외 특허가 등록된 전자동 콜드브루 머신 40대를 구축하고 있어요. 식품 생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위생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모든 공정에 살균 프로세서를 도입했어요. 필요 커피추출용 원수(原水), 추출원액, 포장용기에 이르기까지 안전하고 위생적인 콜드브루 커피를 생산하고 있죠.”
이왕 시작한 거 국내를 넘어 글로벌 기업 바라 봐
진솔은 국내 최고의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HACCP(해썹·한국산업기술표준인증) 인증도 이미 받았다. 진솔은 현재 커피베이와 이랜드 더카페 등 국내 1000곳의 커피숍에 콜드브루 제품을 납품 중이다. 이는 국내 대기업을 제외하면 최대 규모의 더치커피 생산량이라고 한다.
지금 그는 콜드브루 이온 음료 개발로 해외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고객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무언가에 계속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 박 대표의 생각이다. 두 개의 직영점도 운영하는 박혜성 대표는 현장 바리스타들의 목소리에도 늘 귀를 기울인다. 고객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타 카페와 경쟁이 된다는 것이다.
“저에게 목표는 크게 두 가지예요. 하나는 질 좋은 커피를 저렴하게 공급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죠. 또 하나는 탈북민들과 취약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거예요.”
회사는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직격탄을 맞았지만 박 대표는 거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직영점 두 곳과 본사 모두 매출이 조금은 줄었지만, 여전히 가동 중이고 탈북민 5명을 포함한 16명의 직원 모두가 주말도 반납한 채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시기는 오기 마련이에요. 커피도 우리 앞까지 오려면 수많은 공정을 거쳐야 제 맛을 내듯 사람도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저는 저희 기업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이미 중국 시장을 목표로 한 커피 생산을 해온 터라 다른 나라에서도 바이어들이 브랜딩을 원하고 있죠. 앞으로 탈북민을 비롯한 임직원들과 함께 ‘진솔’은 사람 중심의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늘 새로운 길을 개척할 거예요. 새롭게 부상하는 프리미엄 콜드브루 커피 시장에서 직원 모두가 고객에게 최상의 맛과 멋을 드릴 때까지 무한한 열정과 도전으로 최선을 다해야죠.”
[한대의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