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거래정지 장기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는 종목이 100개에 육박할 정도다. 2년 이상 거래정지 상태인 곳도 상당했다. 주식 거래정지는 부실기업을 일정 기간 추방해 투자자의 피해를 예방하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만 문제점도 많다. ‘개미’들의 투자금을 묶어 사고팔지 못하는 등 재산권을 침해하고 변동성이 심한 시황에서 시장구조를 왜곡한다. 전문가들은 주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거래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거래정지 제도를 ‘장기 중단’ 정지가 아닌 ‘일시 멈춤’ 정지로 바꿔야 한다고 제언한다.
평균 거래정지 기간 192일… 정지일수 비율 81%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7일 기준 국내 증시에서 거래정지 조치를 받은 종목은 총 93개로 집계됐다. 시장별로 유가증권(코스피) 10개, 코스닥 72개, 코넥스 11개였다. 이 가운데 150일 이상 거래가 정지된 종목은 78개(83.9%)로 절반을 훌쩍 넘겼다. 2년 이상 거래정지를 이어가고 있는 곳도 24개(25.8%)에 달했다. 코오롱티슈진과 신라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거래정지 종목 93개의 238일(1월1일~8월26일)간 평균 거래정지 기간은 192일로 정상 거래일수(161일)를 초과했다. 비율로 환산하면 80.7%다. 10년 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작년(69.0%)을 크게 웃돈다. 올해 신규로 정지된 41곳도 평균 134일간 거래하지 못했다.
주식 거래정지 조치가 장기화되는 이유는 2018년 이후 개정 외부감사법이 시행됨에 다라 감사환경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현재 거래가 정지된 종목(93개)의 거래정지 사유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34개로 가장 많았다. 상장폐지 사유 발생(30개)과 투자자보호(7개), 감사의견 거절(7개)도 상당했다. 나머지는 SPAC 합병(5개), 회생절차개시신청(5개), 기타공익과 투자자보호(2개), 주식병합 등(2개), 투자유의종목(1개) 등의 순이었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신규로 거래가 정지된 기업 중 감사의견 미달 이외의 사유만으로 거래가 정지된 기업은 적었다”며 “대부분 감사의견 변형과 함께 내부회계관리제도의 효과성,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 등이 의문시되는 경우가 복합적으로 나타나 상장회사로서의 적격성에 대해 심층적인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재무상태 및 사업운영에 관한 기본 정보를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매매거래를 허용하는 것은 투자자 보호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기에 거래를 정지한 상태에서 사안의 개선과정을 지켜볼 필요성은 충분하다”며 “감사의견 미달로 인한 거래정지의 장기화는 일정부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주식 거래정지 장기화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투자자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정지 제도는 정보 비대칭적 상황에서 무정보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실시하지만 상당 기간 거래를 제한함에 따라 주식을 자유롭게 처분하는 측면에서 투자자의 재산권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거래정지 종목에 투자금이 묶인 ‘개미’로서는 답답한 상태다.
신라젠은 경영진의 배임·횡령 혐의로 2020년 5월부터 2년 3개월째 거래정지 상태다. 이들의 소액주주 수는 16만5483명, 소유주식은 6792만6063주다. 거래정지 직전 주가(1만2100원)로 소액주주의 투자금을 계산하면 총 8219억원이다. 1인당 500만원 수준이다. 한국거래소는 내달 코스닥시장위원회를 개최해 신라젠의 상장폐지 여부를 심의·의결할 예정이다. 상장폐지로 최종 결정되면 소액주주의 주식은 ‘휴지조각’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밖에 회계 조작 의혹 등으로 거래정지 종목에 편입된 코오롱티슈진의 투자자도 3년 3개월째 주식을 팔지 못하고 있다. 쌍용차 투자자는 2년 가까이 애태우는 중이다. 이처럼 거래정지로 인해 주식을 매매하지 못한 채 묶인 투자자의 자금은 총 7조4235억원(시가총액 기준)에 달한다.
거래정지 장기화에 따른 시장구조 왜곡도 문제로 지적된다. 수개월 간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부정적 거시환경 정보가 주식시장에 반영되면서 대다수 기업의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거래정지 기업의 상반기 평균 수익률은 –0.46%로 보합세를 유지했다. 일례로 대규모 횡령사태에 따라 올해 1월3일부터 4월27일까지 매매거래가 정지된 오스템임플란트는 거래정지 기간 코스닥지수가 13.3% 하락할 때 시가총액 규모는 22위에서 14위로 상승했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시장지수의 낙폭이 큰 상황에서는 거래정지 종목이 시장지수 대비 초과 수익률을 기록할 만큼 주가와 기업가치 간 괴리가 심화된다”며 “이는 향후 거래재개 시 주가 변동성의 확대로 이어져 또 다른 투자자 보호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에 거래재개 절차에 대한 개선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美, 거래중단 최대 10영업일 초과하지 않아
미국은 이와 조금 다르다.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직접 거래중단(trading suspension) 조치를 발동할 때도 매매 중단일이 최대 10영업일을 초과하지 않는다. 시장구조의 왜곡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의미다. 이유는 간단하다. 매매거래를 정지할 경우 일시적으로 유동성을 0으로 만들어 정상적인 거래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두 나라 간 차이가 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거래재개의 절차상 요건에서 비롯된다. 한국은 원인 사유의 해소를 거래재개 요건으로, 미국은 원인 사유에 대한 공시를 거래재개 요건으로 정한다. 미국의 경우 파산·회생절차 등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에 대해 의문스러운 사안도 사인을 투명하게 밝히고 충실하게 공시하기로 한다면 거래의 연속성을 보장한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이 원인 사유의 해소를 요건으로 두는 이유는 시장교란 행위로부터 투자자 피해를 예방하고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는 관점에서 투자자 보호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며 “비숙련 투자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매매거래정지 제도와 연계해 기업의 악재를 중심으로 거래정지 조치를 발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다만 투자자의 잠재적 피해 예방에 방점을 두고 거래정지 제도를 운영할 경우 거래정지의 장기화가 불가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한 정보 경쟁과 시장의 가격발견기능 강화를 기대하기 어렵고 시장구조 왜곡으로 인한 암묵적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도 거론된다. 주주와의 소통에 있어서도 거래재개의 요건이 원인 사유의 해소라면 경영진이 불리한 정보를 적시에 공시하기보다 이를 은닉하거나 공시를 최대한 지연할 유인이 커질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정보환경을 강화하고 시장 자율기능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투자자 보호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과거 연도 내부회계관리제도 검토(감사) 의견이 연속적으로 비적정에 해당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되면 해당 사유의 충실한 공시를 전제로 거래정지를 예외로 하는 방안이다. 또 계속기업 불확실성 사유만으로 감사의견이 변형될 경우 그러한 사실을 충실히 공시하는 것을 전제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를 시장의 판단에 맡기자는 의견이다.
이 연구위원은 “거래정지 제도를 기업이 새로운 정보를 시장에 충실히 공급하는 유인체계로 활용하려면 매매거래재개의 절차 상 요건을 원인 사유의 해소에서 충실한 공시로 전환할 필요성이 제기된다”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 공시에 대한 인식개선과 투자 문화의 성숙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고 장기적으로는 상장적격성이 떨어지는 기업의 신속한 퇴출을 위해 장외시장의 활성화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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