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강 여야 대치가 풀리지 않고 있다. 정치 실종 사태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지난해 박빙 승부 끝에 윤석열정부가 출범했지만, 여소야대 국면에서 윤석열표 정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올해도 답답한 상황이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지지층 결집을 노린 선명성 경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집권여당 프리미엄을 노리고 국정과제 추진에 매진할 태세이며 민주당 역시 다수의석을 확보한 의회 권력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다.
전문가들은 정치 협상이 파국으로 가는 상황에 대해 강경 노선을 택한 윤석열 행정부와 169석 민주당이 장악한 입법부라는 권력이 타협 없이 정면충돌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새해에는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라도 여야가 협치로 꽉 막힌 정국을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야 지난해 정국해법 놓고 정면대립
지난해 정부와 여야는 주요 정책과 정국 해법을 둘러싸고 극명한 시각차를 보였다.
여기에 ‘이태원 참사’ 대응과 ‘대장동 수사’ 등 여야간 첨예한 사안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새해에도 여야 갈등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윤석열정부는 야당의 발목잡기로 장관 후보자의 청문보고서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정쟁의 소용돌이 와중에 신임 대법관 임명 동의 또한 제청 199일 만에 국회를 통과하며 대법관 최장 공백 사태를 불렀다. 올 예산안도 법정 처리시한은 물론 정기국회 회기까지 지나는 극한 대치 끝에 간신히 통과됐다.
지난해 12월 639조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을 두고 다수 의석을 점한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윤석열표 예산’에 대한 삭감에 나섰고, 이에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하며 맞섰다.
여야는 예산안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나라 살림과 국가 장래를 위한 합리적인 토론 대신 정치적 이해득실을 지나치게 따지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정한 예산안 처리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22일 올해 예산안과 예산 부수 법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법정 처리기한(12월2일)을 3주나 넘겼고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최장 지연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여당은 당초 경제 활성화를 위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3%p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수혜 대상이 과세표준 3000억 원 이상 법인이라는 점을 내세우며 초부자 감세라고 공세를 펼쳤다.
결국 예산안은 정부안보다 4조6000억 원 감액됐고 최대 쟁점이었던 법인세는 과세표준 구간별로 각 1%p씩 세율을 인하하는 선에서 절충됐다.
하지만 경제계에서는 1%p로는 법인세 인하 효과가 크지 않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1%p 낮췄다지만 최고세율 24%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1.6%)에 비해 여전히 높다는 것이다. 이에 예산안 협상이 여당과 야당 간 주고받기식의 어정쩡한 타협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선출… 협치시대 돌파구 될까
올해 국민의힘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3월8일로 확정된 가운데 새로운 당 대표의 등장이 여야 협치의 돌파구가 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전당대회 일정이 가시화되면서 국민의힘 차기 당권주자들은 각자의 존재감을 보이려 잰걸음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차기 당권도전 의사를 밝힌 4선 윤상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차기 당대표는 당연히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국정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하고, 총선 승리를 위해 중도층의 민심도 폭넓게 아울러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차기 당대표는 윤석열정부의 국정을 잘 뒷받침하고, 2024년 총선을 잘 치를 수 있는 실무형 당대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제원 의원도 지난달 26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부산혁신포럼 2기 출범식에 차기 당대표 주자인 김기현 의원을 초청하고 “김 의원은 덕장이자 용장이자 자질을 갖춘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장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에 선출될 차기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연대와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그런 리더십 아니냐”며 김 의원에 힘을 실었다.
김 의원도 “자신을 낮추고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성공을 위해 밀알이 되는 희생의 리더십이 요구된다”며 “불협화음 없이 포용과 덧셈의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정부 ‘3대 개혁’ 추진… 협치 필요성 커져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인기가 떨어지더라도 올해 노동·교육·연금개혁 등 이른바 ‘3대 개혁 과제’ 추진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노동‧교육‧연금 개혁을 시도하려면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이라 국정운영 방향이 변화될 지 주목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18일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 강화 방침을 수면 위로 꺼낸 직후 노조 재정을 외부에서 들여다볼 수 있도록 입법 조치에 나섰다.
윤 대통령도 같은 달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청년 200여 명을 만나는 간담회에서 “3대 개혁 중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것은 노동개혁”이라며 “힘을 보태 달라”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3대 개혁은 결국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유연성 △공정성 △안전 △법적 안정성 등 노동개혁의 4대 원칙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 임기 내에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바꿀 수는 없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혁 과제들이 후퇴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추진한 뒤 나머지는 여러분들이 잘 이어받아 더 발전시키고 완성해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개혁과 관련해 “대통령이 진정으로 노동을 존중하는 노동개혁을 바란다면 노조 때려잡기와 시대 역행적 노동 입법을 멈추기 바란다”며 비판했다.
김현정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달 21일 국회 소통관 브리핑을 통해 “노조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지지율이 조금 올랐다고 해서 거칠게 노동계를 몰아붙이려는 것 같은데 노동자도 대통령이 존중해야 할 국민”이라며 “윤 대통령이 노동계의 우려를 무시한 채 노조탄압과 노동개악을 밀어붙인다면 갈등만 양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협치의 책임은 정부와 여야 모두에게 있다며 달라질 것을 주문했다. 경제 위기 극복과 민생 현안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지난해처럼 여야가 정면충돌하면 올해 윤 대통령이 추진하는 노동·교육‧연금 개혁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강조하는 민생입법이 모조리 좌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 충돌로 정치가 멈췄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야당은 윤석열정부의 성과를 막고, 윤 대통령은 야당 입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준금 울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거의 모든 이슈가 정치의 영역에만 들어오면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이전투구의 정치블랙홀에 빠지고 만다”며 “미래지향적이고 민생을 생각하는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합리적인 토론과 상호양보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석열정부의 3대 개혁 과제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장기 프로젝트”라면서 “정치라는 건 결국 각 정당이 서로 양보해서 타협해야 원하는 제도를 입법할 수 있다”며 “지금처럼 서로 일방적인 태도로 밀어붙이면 아무것도 입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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