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쓰는 역사 [18] 힘든 시절을 우리 국민과 함께 극복한 아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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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미움 속에도 꿋꿋하게 버텨 온 아까시
우리나라 기후에서 자랄 수 없는 진짜 아카시아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7-01 10:17:37

▲ 아까시나무와 그 꽃은 우리 국민이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극복한 식물이다. 윤상구 사진작가

만일 식물에도 감정이 있다면 아까시는 무척 억울할 것 같다. 우선 이름부터 그렇다. 원래 학명이 ‘로비나 슈도-아카시아(Robinia pseudo-acacia L.)’인데 종명에 들어간 ‘슈도(pseudo)’는 ‘가짜’라는 뜻이다.

이는 ‘진짜’ 아카시아와 잎이 나는 방식이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니까 스웨덴의 식물학자 카를 폰 린네가 18세기에 분류하고 명명한 이 학명부터 사이비(似而非)의 뜻을 담고 있다.

19세기 말 일본 사람들이 가짜 아카시아를 한반도로 들여왔다. 그때 ‘가짜’라는 말을 빼고 그냥 ‘아카시아’라고 부른 것이 지금까지 굳어진 것 같다. 원래 아카시아는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관목으로 우리나라 기후에서는 자랄 수 없는 나무다.

꽃은 노란색이고 1년 내내 푸른 잎은 기린이나 코끼리가 좋아하는 먹이다. 동요 ‘과수원 길’ 가사인 “아카시아꽃 하아얗게 핀…”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우리나라 산림청과 학계에서는 노란 꽃의 ‘진짜’ 아카시아와 하얀 꽃이 피는 ‘가짜’ 아카시아를 구분하기 위해 가짜 아카시아에 ‘아까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학명과 국제식물명명규약을 어긴 조치이다.

그러니까 이 나무는 처음부터 ‘가짜’라는 학명을 얻었고 전혀 다른 식물인 ‘진짜’로 오해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국제적으로 인정도 못 받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까시라는 새 이름이나마 제대로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아카시아’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결국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신세가 된 셈이다.

아까시의 억울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본이 우리 산림을 훼손하기 위해 일부러 아까시나무만 골라 심었다거나 가시 때문에 나무하기도 어렵고 장작으로 태우는 것 외에는 필요가 없는 데다 번식력이 강해 다른 수종을 해치고 조상 산소까지 파고든다는 등의 소문으로 공연히 미움받는 나무가 되었다. 급기야 아무짝에 쓸모없다는 ‘아까시 무용론’에 모조리 뽑아 버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대두되었다.

박정희정부 시절 사방림·연료림 조성 나무로 활용된 아까시

▲ 그릇에 수북이 담아놓으면 흰쌀밥과도 같아 배고픈 시절 작으나마 위안이 되었던 아까시꽃, 윤상구 사진작가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까시의 혜택을 많이 입은 나라다. 아까시는 박정희정부 시절 사방림·연료림 조성 목적으로 대거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삼림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황폐해졌다. ‘벌거벗은 붉은 산’ ‘민둥산’이 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도 산림녹화 사업을 진행했지만 나무를 심어 자라는 속도보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는 속도가 더 빨랐기에 산림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그런데 5‧16군사정변 직후 군부는 ‘5대 사회악’에 도벌을 포함시켰다. 군부는 불법 도벌업자를 엄벌하는 한편 산림녹화를 위한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박정희정부는 1962년 산림법을 제정해 농촌에서 의무적으로 연료림을 조성하도록 했다. 1967년에는 산림청을 발족하면서 아까시·리기다소나무·오리나무로 사방림을 조성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1970년대 초에는 제1차 치산 녹화 10개년 계획이 수립되었다. 산지 100만ha에 아까시나무 같이 빨리 자라는 나무와 밤나무 같은 유실수를 7대 3으로 심는다는 내용이었다. 아까시나무는 놀라운 복원력과 왕성한 생명력 때문에 이 사업에 선택되었다.

아까시는 우리나라 녹화사업의 1등 공신

녹화사업의 1등 공신 아까시가 본격적으로 천대받기 시작한 것은 아까시나무 덕분에 산사태 걱정이 사라지고 석탄 연료 보급으로 땔감 걱정이 사라진 후부터였다. 산림이 원상복구되자 사람들은 아까시를 ‘숲의 독재자’라 부르며 미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카시아든 아까시든 가짜 아카시아든 그 이름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 나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얘기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아까시나무는 봄마다 ‘하얗고 맛도 좋은’ 꽃을 활짝 피우고 그 향기로 온 산을 물들여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 준다. 잎은 영양분이 충분하여 토끼나 염소 먹이로 활용되었고 그 풍성한 꽃은 벌들의 먹이가 되었다가 꿀이 되어 인간에게 돌아온다.

우리나라에서 채취되는 꿀의 70% 이상을 아까시꽃에서 얻는다니 이 나무는 양봉가의 보배인 셈이다. 게다가 왕성한 뿌리로 산의 흙을 단단하게 붙들고 있어 예나 지금이나 사방림 조성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내구성도 좋아 소품의 목재로 쓸 만하다.

그릇에 수북이 담아 놓으면 흰쌀밥과도 같아 배고픈 시절 작게나마 위안이 되었던 아까시 꽃. 아까시나무와 그 꽃은 우리 국민이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극복한 식물이다. 어려운 시절 우리에게 물질적‧정신적 도움을 주었던 아까시나무의 고마움을 어찌 잊겠는가.

학명 변경까지는 힘들더라도 아카시아와는 완전히 차별된 보다 예쁜 국내용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어떨까. 무엇이든 명예 회복은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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