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쓰는 역사 [15] ‘감사’의 뜻이 담긴 죽미령 달리아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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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에게 반격을 준비할 시간 벌어준 초전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6-10 13:20:51

▲ 달리아는 영국의 식물학자 찰스 다윈의 연구 대상이 되어 ‘다윈의 국화’라 불리기도 한다. 윤상구 사진작가

달리아(다알리아)의 원산지는 중남미다. 16세기 멕시코에 갔던 스페인 탐험가 눈에 띈 달리아는 18세기에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이후 각국에 널리 퍼져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꽃이 되었다. 18세기 후반에는 영국의 식물학자 찰스 다윈의 연구 대상이 되어 ‘다윈의 국화’라 불리기도 헸다.

달리아는 꽃이 크고 꽃잎도 풍성하며 색깔은 다양하고 화려하다. 그 색깔에 따라 꽃말도 여러 가지이다. ‘감사’의 뜻이 담긴 분홍색 달리아는 감사의 선물로 제격이다. 빨간색은 열정·애정을 의미하고 노란색은 긍정적인 에너지나 우정을 뜻한다. 오렌지색은 열정과 창의성을, 보라색은 고급스러움과 세련됨을 나타낸다.

죽미령 평화공원에서 만나는 특별한 달리아

▲ 죽미령 평화공원에 가면 감사의 뜻을 담은 특별한 달리아를 만날 수 있다. 윤상구 사진작가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을 찾으면 특별한 달리아를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색상의 조형물과 그 가운데 배치된 커다란 달리아 형상이 그것이다. 죽미령 평화공원은 6‧25전쟁 때 죽미령 고개에서 치러진 초전과 당시 참전했던 스미스 특수 임무 부대를 기리는 시설이다.

초전은 말 그대로 미군과 북한군이 마주친 첫 번째 전투다. 6‧25전쟁에 가장 먼저 투입된 유엔군은 일본에 있던 미군 제24사단이었다. 1950년 7월 1일 제21연대 제1대대를 이끌고 부산 수영비행장에 도착한 스미스 중령은 오산 북쪽 죽미령 일대 고지에 방어 진지를 마련하고 보병과 포병으로 이루어진 특수 임무 부대를 이곳에 배치했다.

미군은 그때까지만 해도 제2차 세계대전 때 최강 독일과 일본을 이긴 승전국 군대라는 자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북한 공산군은 미군의 참전 사실을 알면 두려움에 빠질 것이고 미군의 모습을 실제로 보기만 해도 도망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두 차례 정찰 작전을 마치면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미군과 북한군이 마주친 첫 번째 전투

미군과 북한군이 처음 만난 날은 7월5일이었다. 비 내리는 새벽, 스미스 부대는 죽미령 고개 부근에 진지를 구축하고 북한군을 기다렸다. 아침 7시경 북한군 전차 여덟 대가 나타났다. 그들은 수원을 점령하고 오산으로 내려오는 중이었다. 스미스 중령은 포격을 명령했다.

그런데 소련제 T-34전차는 포탄을 맞고도 계속 움직였다. 전차가 스미스 부대 진지 600m 앞까지 다가왔을 때 미군은 75밀리 무반동총으로 사격해 전차에 명중시켰다. 놀랍게도 북한군 전차는 잠시 멈칫할 뿐 계속 전진하여 고지를 향하여 올라왔다. 조금 후에는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보병과 북한군 트럭이 약 10km의 긴 행렬로 나타났다.

북한군 전차는 스미스 부대의 퇴로를 차단하는 동시에 보병 진지를 짓밟고 쳐들어왔다. 방어선은 이내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원하기로 한 포병 대대와는 통신 두절 상태였고, 통신이 된다 하더라도 이미 미군 진지 안에 북한군이 쳐들어왔기 때문에 포를 쏠 수 없었다. 아군의 포탄이 적을 막아내기는커녕 적의 박격포탄과 전차 포탄이 아군의 참호 속에 떨어졌다.

미군은 이 전투에서 400여 명 부대원 중 150명이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북한군 전차 두 대를 파괴했지만 그 외 30여 대는 포대 진지까지 뚫고 스미스 부대의 방어선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갔다. 제52포병 대대는 모든 화포를 잃었고 131명 중 31명이 전사 또는 행방불명되었다.

참전 용사들의 헌신과 희생의 수혜자는 대한민국 국민

▲ 달리아의 색깔은 다양하고 화려한데 그 색깔에 따라 꽃말도 여러 가지다. 윤상구 사진작가

이 전투를 통해 북한은 미군의 참전을 알게 되었다. 북한은 미군이 참전하지 않거나 참전하더라도 멀리 있는 미군이 한반도에 오기 전에 전쟁을 끝낸다는 계획 아래 남침을 감행했다. 그런데 전쟁이 시작된 지 열흘 만에 미 지상군을 마주쳤다는 것은 그들의 작전에도 커다란 차질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맥아더 장군도 이 전투를 통해 북한군의 전력을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죽미령 초전을 두고 적의 전력을 파악하지 못한 오만한 미군의 부끄러운 패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모든 작전이 적의 고지에 깃발을 꽂아야만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지켜야 할 곳을 지키는 방어 전투, 다른 부대가 이동할 수 있도록 시간을 끌어주는 지연 전투도 충분히 가치 있는 전투다. 스미스 부대는 적에게 포위되었음을 알고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싸웠고 최선을 다해 적절한 시기까지 버텼다. 여섯 시간 15분 동안의 이 격전은 아군이 반격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의미 있는 전투였다.

죽미령 평화공원에 달리아 조형물이 만들어진 이유는 달리아가 ‘감사’의 꽃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보훈의 달 6월을 맞아 곳곳에 달리아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달리아 꽃이 아니라도 우리는 조국을 위해 헌신한 분들과 함께 6‧25전쟁 참전 용사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머나먼 타국에 와서 목숨 걸고 싸운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의 수혜자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참전 용사들에 대한 감사의 정이 온 국민의 가슴에 깊이 새겨지길 바란다.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임유이 기자 ly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