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초가삼간 타기 전에 중국에 할 말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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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저가 수출에 세계경제 몸살
한국 경제 먹거리 중국에 잠식당해
칠레도 부과하는 관세 한국은 못 해

이상준 산업경제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1-17 00:02:40

중국 춘추시대 송(宋)은 꽤 강했다. 송은 기원전 638년 강대국 초(楚)와 싸웠다. 양공(襄公)이 이끈 송 군대는 미리 강가에 진을 쳤고 늦게 도착한 초 군대는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이복형이자 재상이었던 목이가 양공에게 공격하자고 말했다. “적 병력은 우리보다 월등합니다. 그들이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공격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질기로 소문난 양공은 반대했다. “아직 정렬하지도 않은 적을 치려고 어찌 북을 울릴 수 있겠습니까?” 초 군대가 강을 건너서 진을 치자 그제야 송 양공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전투는 패배로 끝났고 다리에 상처를 입은 양공은 시름시름 앓다가 이듬해에 죽었다.

쓸데없는 인정을 베풀다 망하기 마련이다. 양공이 어짊(仁)을 고집하다가 죽은 이야기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이란 고사성어를 낳았다. 모택동은 “나는 송 양공이 아니다”면서 “그런 멍청한 인의도덕은 필요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국시대의 유학자 맹자(BC 372~289)는 양공의 자세야말로 어진 사람의 표상이라고 칭찬했다. 맹자의 영향을 받은 성리학적 전통으로 말미암아 우리 조상은 평소엔 쓸데없는 인정이라고 여겨도 삶에선 도덕군자의 본보기라고 생각했다. 소학수신서는 “남이 곤란할 때 그 사람을 내리누르는 것은 비열한 것이다”면서 “상대가 준비가 다 된 뒤에 정정당당히 맞서라”고 가르쳤다.

총성 없는 경제 전쟁으로 세계가 시끄럽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인공지능(AI) 반도체 관련 수출 규제를 도입한 데 이어 유럽연합(EU)도 중국을 대상으로 통상 보복을 준비한다. 중국 전기차에 수입 관세를 최대 45%까지 부과한 EU는 중국 조달시장에서 EU산 의료기기가 불공정한 차별을 받고 있다며 발끈했다. 어떤 이는 미국과 EU는 강대국이므로 중국과 무역전쟁을 마다하지 않지만 한국은 중국보다 국력이 약해서 곤란하다고 말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참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와 멕시코·칠레·튀르키예 등은 중국보다 국력이 약해도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중국산 수입 철강에 높은 관세를 물렸다.

중국은 왜 말썽꾸러기가 됐을까. 제조업 세계 1위를 꿈꾸는 중국은 산업의 쌀이라는 철강과 석유화학에 대규모 투자를 해 왔다. 미래 먹거리로 불리는 전기차와 2차전지·인공지능(AI) 등에도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세계 공장이 된 중국 경제는 안팎으로 시련을 겪고 있다. 미국의 경제 규제로 수출이 줄었고 경기침체로 내수 시장도 힘들다. 이런 까닭에 중국은 남아도는 생산품을 세계 곳곳에 싼 가격에 판다. 중국의 과잉생산에 따른 밀어내기 저가 수출은 이웃나라 한국 경제를 멍들게 했다.

“솔직히 중국이 이렇게 빨리 D램을 양산할 줄 몰랐다.” 삼성전자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삼성그룹 임원은 깜짝 놀랐다. 미국의 반도체 규제에도 창신메모리(CXMT)가 DDR5를 양산하면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장악한 반도체 D램 시장을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발판이었던 조선산업에서도 중국이 골칫거리다. 중국은 저가 수주를 앞세워 세계 조선 시장에서 점유율 70%를 자랑한다. 오죽하면 HD현대 권오갑 회장이 신년사에서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최첨단 선박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야 한다”면서 “동시에 중국에 잠식당한 기존 시장을 되찾아오기 위한 전략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을까.

철강과 석유화학은 더 심각하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지난해 연말 공장을 폐쇄했다. 중국산 저가 철강에 골머리를 썩혔던 현대제철은 가동률이 10%대로 떨어진 포항 제2공장을 폐쇄했다. 중국산 철강이 안방인 한국 시장까지 잠식하자 눈물을 머금고 공장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석유화학 기업은 고사 직전이다. 핵심 사업까지 팔 정도로 생존이 급선무다. 수천억 원대 적자에 시달리는 롯데그룹 핵심계열사 롯데케미칼은 기초화학 부문 생산을 절반 이하로 줄이기로 했다. SK그룹은 특수가스 세계 1위 기업 SK스페셜티를 팔았고 LG화학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편광판 사업부를 중국 기업에 팔았다.

중국 전기차를 대표하는 기업 BYD는 16일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수출량으로 볼 때 한국 경제의 먹거리인 반도체(1위)와 석유화학(3위)을 비롯해서 자동차(4위) 시장까지 위태롭다. 세계 1위 생산국이 된 중국은 철강 제품(6위)과 디스플레이(8위)는 물론이고 선박(9위) 시장에서까지 한국 제품을 밀어내고 있다.

한국은 생각보다 많은 걸 잃을 수 있다. 전랑 외교를 앞세운 중국의 보복도 두렵다. 그러나 자유무역이란 도덕에 얽매여선 송 양공처럼 비참한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칠레와 인도네시아 같은 개발도상국도 자국 기업을 위태롭게 하면 가만 있지 않는다. 한국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겪지 않으려면 중국에 할 말은 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상준 산업경제부장·부국장 ju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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