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참빗과 손자병법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칼럼

[스카이 View] 참빗과 손자병법

적을 모르고 나를 알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진다
적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움마다 반드시 위태롭다
중국과 미국 참빗을 잘 알고 첨단기술을 잘 지켜야 위태롭지 않다

이상준 산업경제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2-13 00:02:40

손자병법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백 번 이긴다(知彼知己百戰百勝). 그러나 손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손자가 모공편에 이렇게 말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百戰不殆). 적을 모르고 나를 알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진다(不知彼而知己一勝一負). 적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움마다 반드시 위태롭다(不知彼不知己每戰必殆).”

모처럼 손자병법 모공(謀攻)편을 읽으면서 임진왜란(1592~1598)을 떠올렸다. 한·중·일 삼국은 16세기 세계 최대 전쟁 임진왜란을 저마다 다르게 기억한다. 우리는 왜구 난동으로 보지만 일본은 조선 정벌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왜구에 대항해 조선을 도왔다고 주장한다. 한·중·일 삼국은 432년 전 서로를 알고 있었을까.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일본은 서로를 몰라서 놀랐다. 조선은 일본군이 그렇게 강할 줄 몰랐다. 일본도 조선군이 그렇게 약할 줄 몰랐다. 조선을 도왔던 명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강이었던 당의 100만 대군을 물리쳤던 고구려 후예 조선이 약해서 놀랐고, 남쪽 바닷가를 약탈하던 왜구로만 여겼던 일본이 너무 강해서 놀랐다. 조선은 명과 일본에서도 강한 나라로 손꼽혔다. 그러나 조선군은 오랜 평화 속에서 칼을 휘두르는 법을 잊었다. 약 100년 동안 전국시대를 거친 일본군은 칼 쓰는 솜씨가 빼어났다. 특히 조총을 앞세운 일사분란한 전술 앞에서 조선군과 명군은 속수무책이었다.

강력했던 일본과의 전쟁에서 조선이 지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첫째 국민이 남달랐다. 관군이 무너졌으나 의병이 나타났다. 일본에선 우두머리가 항복하면 나머지도 항복하지만 조선에선 임금이 도망가도 남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

둘째 체제가 우월했다. 조선은 고려를 개혁해서 만든 백성을 위한 나라다. 귀족에게서 뺏은 땅을 백성에게 나눠 주고 수확물 가운데 10%만 세금으로 거뒀다. 조선을 몰랐던 일본은 전투에선 이겨도 민심을 얻을 수 없었다. 일본군은 조선 농민에게 수확물 30%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에선 절반 이상을 거두므로 나름 선심을 베풀었으나 조선 농민이 화가 날 만했다. 세금 때문에 의병이 많이 생긴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셋째 첨단기술도 빼어났다. 배(판옥선)와 화포(천자총통)가 뛰어나서 이순신이 이끈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압도했다. 고구려가 청야전술로 당군의 보급을 막았듯 조선은 판옥선과 거북선을 앞세워 일본군 보급을 끊었다. 조선은 삼포왜란(1510)·사량왜변(1544)·을묘왜변(1555)을 겪으면서 기존 전투선으로 왜구를 상대하기 어려움을 깨달았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았기에 일본 수군의 장점인 백병전을 피하면서 조선 수군의 장점인 화포전에 유리한 전투선을 개발했다. 판옥선은 지붕을 덮은 2층 구조로 만들어져 적이 선상에 오르기 어렵고 포를 높게 설치해 화포전에 유리했다.

명군은 일본군 못지 않게 횡포를 부렸다. 오죽했으면 “왜적이 해를 끼친 것은 얼레빗과 같고 명군이 해를 끼친 건 참빗과 같다”는 말이 백성 사이에서 퍼졌을까. 빗살이 굵고 성긴 얼레빗과 달리 참빗은 빗살이 가늘고 촘촘해서 명군이 조선 백성을 훨씬 더 수탈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선조 임금은 ‘나라를 새로 만들어 준 것과 같은 은혜(再造之恩)’를 베풀었다며 명을 떠받들기만 했다. 손자가 말한 대로 적을 모르고 나도 모르니 전쟁이 끝나고 나서 나라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전쟁이 없지만 총성 없는 전투(경제)가 여전하다. 중국 참빗은 특히 롯데그룹을 겨냥했다. 한국 정부가 2016년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롯데 골프장에 고고도미사일 방어 체계(THAAD)를 설치하자 중국 정부는 중국에 있는 롯데그룹 사업장을 조직적으로 괴롭혔다. 롯데그룹은 중국 안에 있던 사업장을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포기했다. 중국 참빗은 석유화학업계도 괴롭혔다. 롯데케미칼은 한 때 영업이익이 3조 원에 육박했으나 올해 3분기 영업손실만 4136억 원에 이르렀다. 중국산 플라스틱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한국 시장을 공략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관세를 부과해서라도 중국산 참빗으로부터 롯데케미칼을 지키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다. 국가 주도의 첨단기술 개발도 빼어났다. 반도체 육성 사업(1982년)은 오늘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성장의 발판이 됐다. 사이버코리아21 계획(1999년)도 세계 최초로 초고속 통신망을 보급하는 원동력이 돼서 한국을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미국 참빗도 반도체(삼성전자)와 2차전지(LG에너지솔루션)·자동차(현대차그룹) 공장을 사실상 빼앗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 공장에서 생산해야 한다고 협박하면서 보조금 지급을 약속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보조금 지급을 취소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한국 경제가 위태롭다. 중국과 미국은 자유무역이 아닌 보호무역을 앞세워 참빗으로 긁는다. 중국과 미국을 잘 알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할 때다.

이상준 산업경제부장·부국장 ju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