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37] 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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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05 06:30:14

윤희숙은 지방에서 올라온 근로자들을 위한 숙소에 입실했다. 구로공단 ‘벌집’보다는 나았다. 희숙은 인천에 오기 전 구로공단 벌집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봉제공장에 취업했던 선배가 사고로 다치는 바람에 옷가지며 물품을 챙기려 들렀다가 1주일이나 머무르게 됐다. 인천 산단공단 숙소 역시 화장실·빨래터·부엌 등을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 환경은 비슷했다. 방은 2인 1실이었다. 윤희숙과 같은 방을 쓸 룸메이트는 전북 임실에서 올라온 공단 9년 차 베테랑이었다.

“아따, 솔찬히 키가 크네, 이 방에서만 파트너 바뀐 게 네 번째랑게, 나가 동이여, 문동이. 자네 이름은 뭐랑가?” 작은 키의 문동이는 거침없이 말을 걸어 왔다. 눈 아래부터 광대까지 주근깨가 새까맣게 몰려 있었고, 눈은 작고 옆으로 길게 찢어졌으며 입술은 두꺼웠다. 가슴보다 배가 더 나올 만큼 살찐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희숙은 그녀와 친하게 지낼 수 있겠다는 감이 왔다. 문동이가 새로 들어온 희숙한테 먼저 말을 걸어온 태도로 판단한 게 아니었다. 인상이 그랬다. “지나치게 친한 척해도 안 되고 너무 경계해도 안 된다, 친한 줄 알았는데 배신하는 년이 있고 적인 줄 알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돕는 년이 있다.” 변태섭의 주의가 떠올랐다.

“지 이름은 고.금.화입니더. 친구들이 고구마라고 불렀어예. 마, 언니도 편하게 불러 주이소.” 문동이는 이름을 듣자마자 깔깔대고 웃었다. “오메, 듣고 봉께 고구마네잉 어따 부모님이 너무했구마, 이름을 지을 때 생각 쪼까 하고 지었어야제. 너는 고구마, 나는 문동이, 동이란 이름이 좋아서 울아부지가 지었다는디 시상에 성을 생각 안 하고 지어 부러서 문둥이라고 놀림을 을매나 받았는지 모른당게. 가운데 동자 중간에 있는 거 ‘ㅗ’ 하나만 헷가닥 돌리면 멀쩡한 사람도 문둥이가 된당게. 니는 고구마, 나는 문둥이.” 박장대소하는 모습이 순진한 아이 같았다.

동이는 비닐 옷장 두 개 중 왼쪽을 가리키며 그걸 사용하라고 했다. 옷장 옆엔 사방 60센티미터 너비의 낮은 책상이 있었다. 책상 위에 중졸 검정고시 교재가 놓여 있었다. 방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동이의 성격이 짐작되었다. 동이는 첫눈에 희숙에게 호감을 느낀 것 같았다. 잠시 밖으로 나가더니 접시에 사과 한 개를 올려 가져왔다.

“여기서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빨리 적응해야 혀, 나랑 있었던 아가들 모두 일을 모댔어. 한 놈은 아파서 나가고 한 놈은 다른 공장으로 가고 또 한 놈은….”

동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괜히 꺼냈나 싶은 표정을 짓더니 화제를 돌렸다.

“나가 봉제회사도 댕겨 봤고, 가발 맹그는 회사도 댕겨 봤고 신발 회사도 댕겨 봤는디 여그가 젤로 쉬워. 여그도 적응 모다면 딴 데서 일 모대. 그랑게 꾀 안 부리고 열심히 하면 그럭저럭 견딜 수 있으니 딴맘 먹지 말고 돈 차곡차곡 모으더라고, 알것냐.”

동이는 희숙이 언니라고 불러 주니 희숙을 동생 대하듯 했다. 희숙은 문동이가 깎아 준 사과를 우적우적 씹으며 책상 위 교재에 눈을 돌리는 척했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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