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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深頌(심송)안호원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 : 20>
며칠 전 학교동문의 모친이 돌아가셔서 조문을 간 적이 있었다. 낮 시간이라 문상객이 없었다.
동문이 회고한 모친의 이야기는 이렇다.
모친께서는 지난 4일 102세 생신을 가족들과 지낸 후 저녁에 아들 셋과 손자 손녀들을 모두 대면(對面)한 후 잠이 들 듯 조용히 운명을 하셨다. 교회 권사이기도 한 모친께서는 지난해 겨울부터 곡기(曲技)를 끊고 떠나시겠다고 하셨다.
자식들이 겨울엔 춥기 때문에 돌아가시면 안 된다고 하며 식사할 것을 간청하니 ‘그래야 겠구나. 자식 걱정 시키면 안 되지’라며 다시 수저를 들었다. 4일 역시 모친의 생신을 차려드리기 위해 자식·손주들이 모두 모였는데, 저녁상을 물린 후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고 하셔서 모두들 어머니 앞에 모였다. 모친은 자식들 손을 일일이 잡으시더니 그만 자야겠다고 하시며 누우신 후 바로 운명을 하셨다.
자식들이 모두 임종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고인도 고통 없이 조용히 영면(永眠)을 하신 것이다. 절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동문의 모친은 100세가 넘도록 사시면서 베풀기를 좋아하고, 남에게는 절대로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한 분이다. 심지어는 며느리들에게 부담주기 싫다며 자신의 속옷 빨래를 손수 하셨다.
늙은이가 있는 집일수록 깨끗해야 한다며 매일같이 방과 거실을 물걸레로 닦고, 유리창도 닦았다. 심지어는 자식들이 준 용돈을 모아 대학교 총장인 작은 아들 손에 쥐어주면서 ‘다른 욕심 부리지 말고, 교육만 열심히 하라’고 하셨단다.
그동안 망설이고 있던 수의(壽衣)를 모친이 100세가 되었을 때 준비를 해놓았다고 했다. 수의는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이 입혀주는 옷이다. 이 옷을 입는 순간, 생이 마감된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인생의 시작·끝 함께하는 배냇저고리와 수의서 찾은 행복한 삶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평생 옷을 입고 살아야 한다. 문득 그 많은 옷 중에 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남이 입혀주는 옷과 가장 마지막으로 입는 옷이 한 사람에게 있어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면서 처음으로 입는 ‘배냇저고리’와 죽어서 마지막으로 입는 ‘수의’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두 옷에 모두 주머니와 매듭이 없으며, 자기 스스로가 입을 수 없다는 것, 평생 단 한 벌, 한 번뿐이라는 것이다. 화려하지도 않다는 것도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주머니가 없다는 것은 욕심을 내 집어넣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다는 뜻이다. 매듭이 없다는 것은 얽히고설킨 마음이나 맺힌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없는 것 또한 이 세상에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남이 처음으로 입혀주는 배냇저고리 옷을 시작으로, 남이 마지막으로 입혀주는 한 벌의 수의로 한 삶을 마감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자,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들이 불필요한 짐들처럼 무겁게 만 느껴진다.
매듭과 주머니가 없는 배냇저고리로 시작한 인생이지만 성장을 할수록 점점 많은 주머니에 길들여지며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주머니에 담게 된다. 매듭도 부족해 지퍼까지 달린 옷을 입는다. 모두를 주워 담기에만 바쁘다 보니 인간과의 관계가 유순하지 못하게 되고, 사회가 살벌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데, 나 혼자 잘 났다고, 나 혼자만 잘 먹고 살겠다고 몸부림을 치며 욕심을 부린다. 아무리 명예를 얻고 재물을 쌓아둔다 한 들, 결국은 남이 입혀주는 수의 한 벌을 마지막으로 인생을 마무리 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아닌가. 배냇저고리 한 벌로 시작해서 수의 한 벌로 끝나는 우리의 인생을 많은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잊고 산다.
모든 인간은 부귀영화, 빈부와 상관없이 소박하고 단조로운 수의를 입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매듭을 풀고 가려면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도 말고, 또 미운 사람을 만들지 말고, 원한을 사서도 안 된다. 버리고 비우면 또 채워지는 것이 있음을 안다면, 작은 것 하나에도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랑을 베푸는 소중하고 귀한 삶을 사는 우리가 돼야 한다.
많은 문상객들이 고인에게 흰 국화와 잔을 올리며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거듭 언급하는 것이지만 아름다운 삶으로 마감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 하나까지도 주머니에 담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얽히고설킨 매듭은 바로 풀어야 한다. 탈무드에 나오는 글을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과 가장 강한 사람, 그리고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글이 있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서부터 배움을 가진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또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감사하는 삶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행복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감사가 있는 곳에는 은혜가 있고 사랑이 있다. 그리고 섬김이 있고 천국이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남의 손으로 입혀질 마지막 수의의 의미를 생각하며 산다면 타인에게 아픔을 주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며 가진 것을 베풀고, 이웃과 나눔으로써 현명하며 행복하고도 고귀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상객들이 몰려들며 하나 둘 자리를 잡고 앉는다. 상주와 인사도 없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편 119 ;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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