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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작은 곧 정성의 시작… ‘깨어있음’의 전형
욕망을 씻어버린 자신과 타인의 관찰이자 ‘깨어있음’

김성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6-03 09:02:57

누군가에게 정성스러운 대접을 받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그런 순간을 되돌아보면, 행복은 물질의 문제만은 아님이 분명해진다. 물 한잔을 받아 들고 나에게 오는 그의 걸음걸이, 두 손의 위치, 눈빛, 걸음의 속도, 신발 소리, 표정, 탁자에 놓이는 물의 출렁임, 물잔을 내리고 쟁반을 거둬드는 속도와 흐름…. 누군가 당신에게 정성을 다해 주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준다.

쥐를 잡으려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고양이는 대상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몸을 최대한 낮춘 상태로 소리 없이 다가간다. 대상에 대한 집중이 있고, 집중 속에 소리 없는 움직임이 미세하다.

쥐의 입장에서는 생사가 달린 문제이지만, 생명의 순환 구조 속에서 고양이 또한 단순한 위락이 아님을, 그 움직임이 신랄하게 보여 준다. 멈춰 있되 움직이고, 움직이되 멈춰 있는 지극한 집중의 연속 동작. 하지만 이 고양이의 동작에는 뭔가가 빠져 있다. 반면에 다른 뭔가로 가득 채워져 있다.

당신은 이 고양이의 움직임에서 정성(精誠)을 읽을 수 있는가. 아닐 것이다. 대상에 대한 강력한 집중과 고요, 미세한 움직임을 보면서도 그 안에 ‘온갖 힘을 다하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은 읽기 어려울 것이다. 왜? 쥐를 잡으려는 고양이의 마음 상태를 짐작해 보면 알 수 있다. 감탄할 만큼 ‘지극한 집중’ 속에 숨겨진 욕망을 보기 때문이다.

정성의 씨앗은 ‘알아차림’과 ‘깨어 있음’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랑’도 정성이다. 사랑의 시작은 곧 정성의 시작이다. 그와 약속 시간을 정하는 순간부터 나의 시공간을 열어 놓는다. 만나러 가는 순간까지 나의 옷맵시를 살핀다. 옷 냄새도 살피고, 머리를 흔들어 샴푸 냄새도 점검한다. 입안을 다시 헹구고, 일회용 입안 청결제도 챙긴다. 어쩌면 사랑이 시작된 게 아니라 그에 대한 정성이 시작됐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정성이 생략된 사랑은 ‘고양이와 쥐’처럼 욕탐이 주인이다.

어린 시절, 어른들의 제사상 차리는 모습은 전형적인 정성의 시공간이었다. 아낙네들의 수다는 백부의 헛기침 한 번에 뚝 그친다. 기름과 고기가 프라이팬 위에서 요란하게 익어가는 냄새나 소리 따위가 그 공간의 우두머리다. 제주(祭主)인 큰 백부는 제사상에 손수 음식을 나르고, 위치를 잡아 고요히 접시를 내리고, 이리저리 젓가락을 옮긴다.

나의 기억은 당신의 그 동작에 멈춰 있다. 제사상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면서도 멈춰 있는 듯하고, 먼 상머리로 손을 뻗치면서도 늘어진 옷소매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음식을 피한다. 백부는 집안 전체의 시공간을 관망하는 듯 집중해 있고, 집중해 있으면서 보지 않는 곳이 없다. 긴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그것이 ‘깨어 있음’의 전형임을 알았다.

‘정성’이라는 의미가 당신의 삶에 느낌표로 다가온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역린>이라는 영화 속 대사로도 유명한 ‘중용 23장’은 ‘정성’의 의미와 지향을 보여준다.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 정성을 다하면 배어 나오고/ 배어 나오면 드러나게 되니/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감동을 준다./ 감동하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새로워지니/ 오직 지극한 정성이 있어야만/ 능히 변화할 수 있다."

정성은 변화를 위한 것이다. 정성은 ‘욕망을 씻어내린 자신과 타인의 관찰’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행위다. 물론, 지향점이 없는 정성 또한 정성을 비껴간 셈이다. 하긴, ‘행위의 지향점’에는 쥐를 잡고자 하는 고양이와 같은 지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욕망에 기댄 동작이므로 술수(術手)에 가깝다.

정성을 언급하다 보면 자연스레 ‘느림의 미학’이 뒤따른다. 정성을 다하려면 어쩐지 느리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한다.

특히, 현대인은 ‘속도 바이러스’에 전염돼 있는 환자와 같다,고 한 하인리히 하이네의 지적은 반문하기 궁색하다. 그런 점에서 ‘정성’이라는 비물질적 정신 작용은 ‘속도 바이러스’를 치유하는 데 쓰임이 좋다. 단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다.

속도가 느리면 자연스레 공간을 덜 갖게 된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기차는 더 많은 공간을 누리지만 걷는 사람은 시간을 누리는 대신 공간 점유율이 떨어진다. 느림과 비움이 한 쌍으로 가는 이유다.

그럼에도 당신은 작은 일이라도 정성스레 하고 정성스러운 대접을 받고 싶은가. 그럼으로써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가. 시간과 공간, 둘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하고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다면, 나는 당신에게 감사하다.

그렇게 비운 마음을 위해 선물이 하나 준비돼 있다. 사실은 이제까지 언급한 모든 ‘정성’의 행위 속에 씨앗처럼 박혀 있는 핵심 요인을 드릴 참이다. 그것은 ‘알아차림’이다.

제사상을 차리는 어린시절의 백부께서는 어떻게 그런 정성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앞서 언급한, 그 엄숙해야 할 시공간에 대해 몸과 마음이 예민하게 깨어 있었기 때문이다. ‘깨어 있음’. 다시 말해서 자신과 타 존재에 대한 정성의 씨앗이 당신의 내면에 생동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명상을 공부하면서 나는 ‘깨어 있음’이 ‘알아차림’과 ‘형제 언어’라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이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고,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는 상태의 지속. 그런 ‘알아차림’ 속에서는 ‘시간’이나 ‘공간’에 대한 욕구가 힘을 얻지 못한다.

알아차림은 당신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발동하는 한 느려도 좋고, 빨라도 좋다. 다만, 그러함을 알면서 행동하면 된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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