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죽음을 미리 상정해 보는 일의 의미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김성수의 생활명상 즐기기

오늘을 즐기고 성실히 살아가기 위하여

김성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2-24 09:06:01

‘죽음 명상’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필연적으로 다가올 자신의 종말에 미리 직면해 봄으로써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아름답게 살아 보자는 취지가 깔려 있다. 전문 수행자나 명상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기업이나 집단 모임을 통해서 참여하기도 한다. 프로그램 의 주요 골격은 자신이 ‘죽음의 순간’으로 가서 ‘지금의 삶’ ‘지나온 삶’을 낱낱이 살펴보는 일이다.

당신의 죽음은 허망한 일일까, 두려운 일일까 아니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일까. 그 어떤 사람도 피해 갈 수 없으니 그 공정성 앞에서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의가 없다 하여 다른 심경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죽음에 순응은 하겠는데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 대한 생각들은 번다하다. 소위 ‘구구 팔팔 일이삼(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사흘 만에 죽고 싶다)’이라는 말도 그런 복잡한 심경에서 나온 희망의 구절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서는 오히려 이런 생각이 더 강력하게 작동 중일 수 있다. 죽음이라고? 그거 아직은 나에게 닥치지 않은 일이잖아? 그런 일을 두고 미리 걱정하거나 두려워하느니 그냥 오늘을 즐기고 성실히 살아가면 되는 거 아냐?

당연하다. ‘오늘을 즐기고 성실히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삶에 대한 최상의 수사(修辭)다.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코앞에 놓여 있다. 하나는, 그런 즐거움의 갈피, 성실한 삶의 갈피에 죽음이라는 현상이 늘 복병처럼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제 밤에 당구장에서 한 게임 하고 헤어졌는데 아침에 그의 부고가 온다. 잠시 가게에 다녀온다고 한 사람이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해 심정지 상태라고 한다. 두번째는, 지금 자신의 삶을 ‘제대로 즐기고, 성실히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자기 의심이다. 죽음에 이르러 돌아봤을 때 ‘후회 없이 살아 온 삶이냐’는 것이다. 당신은 때때로 자신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지금 나는 잘살고 있는 걸까.

‘죽음 명상’에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

어쩌면 당신은 죽음이라는 현상을 삶의 항목에서 아예 솎아 내고 싶어 하거나 이미 뿌리째 뽑아 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죽음을 애써 외면하는 이유를 문화인류학자인 어니스트 베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는 늘 죽음에의 공포가 어슬렁거린다.” 생명체로서 동물적인 삶의 욕망은 늘 죽음을 밀어내고자 하는 유혹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죽음 명상은 어쩌면 심해 같은 내면에 가라앉아 있는 근원적 공포를 일부러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언제 닥칠지 모를 자신의 죽음을 ‘지금 여기’라는 현재형으로 맞이해 보는 일인 것이다. 즉, 나의 현생과 상상 속의 죽음을 계합(契合)하고자 하는 시도다. 그러므로 쉽지 않다. ‘지금의 삶’을 명확히 들여다보기 위해 시행하는 과정치고는 낯선 차원의 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가벼울 수 없다. ‘지금의 삶’ ‘지금의 결정’ ‘지금의 상태’ ‘지금의 무의식’을 통찰해 내는 데 더 이상 맑을 수 없는 지혜의 눈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살펴보는 프로그램 중에는 가끔 실연(實演) 과정이 들어 있는 것도 있다. 관과 수의 그리고 종교 의식 등이 그것이다. 당신의 삶 속에 죽음이라는 낯선 미래를 초대하기 위해 뿌리 깊은 의식에 관념적 장치를 설치함으로써 죽음으로의 이입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수의를 입고 두 손·두 발을 묶인 채 관 속에 들어가 누움으로써 생명과의 격절(隔絶)을 실감하게 된다면 그 명상은 일단 성공이다.

하지만 대체로 죽음 명상은 극도로 정숙한 곳에서 앉거나 누운 상태로 이루어진다. 이때는 당신의 상상력과 분위기 조성, 안내자의 적절한 안내가 핵심이다. 조성되는 환경과 과정은 대체로 죽어서 입관 상태에 있거나 죽어 있는 자신을 실감나게 상상함으로써 ‘지금’을 살고 있는 자신의 삶과 대비시켜 주는 일이다. 이때 죽음을 입체적으로 조건화하여 실감을 돕기 위한 수단들이 있다. ‘유서 쓰기’ ‘자신의 묘비명 작성’ ‘추도사’ ‘감사의 글 쓰기’ ‘못다한 말 적기’ ‘장기나 시신 기증서’ ‘다시 살게 된다면 하고 싶은 일’ ‘지금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말’ 등등이 그것이다.

‘죽음 명상’은 경험하게 되는 현상만 놓고 본다면 당신이 그렇게나 매달려 왔던 돈‧명예‧사랑‧가정 따위가 홀연히 사라지는 상황을 일별하는 사건이다. 부모‧배우자‧자녀‧형제‧친구가 일순간에 ‘없음’이 되는 상황을 만난 듯한 시연(試演)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느 쪽이 꿈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쩐지 당신의 일상을 어슬렁거리는 ‘죽음’을 보고 만져본 것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고 만져본 듯’ 살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당신이 ‘죽음 명상’에 관심을 가져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_()_

김성수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