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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CIA와 대한민국’을 지면에 연재한다.
반공 소년 이승복
1968년 1월21일 청와대 기습 작전에 실패한 인민군 총참모부 정찰국은 포기하지 않고 대남 교란작전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1968년 10월30일부터 11월2일까지 3회에 걸쳐 124군부대 무장공비 120명을 남한의 울진·삼척 지역에 침투시켰다.
120명의 무장공비는 10월30일에 원산에서 공작선을 타고 남하해 경비가 소홀한 동해안 울진과 삼척에 상륙했다. 그리고 군복·신사복·등산복 차림으로 15명씩 조를 구성해 강원도 산악지대의 농촌 마을에 접근했다.
이들은 부락민들에게 북한 찬양 선전을 하며 남자들에게는 남조선 혁명을 위해 노동당이나 인민 유격대에 가입하라 했고, 여자들에게는 여성동맹에 가입할 것을 강요했다. 이에 불응하거나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 무자비하게 칼로 찌르고 돌로 쳐서 살해했다. 당시 남한의 대(對)간첩 대책본부는 11월4일에 대통령 훈령 18호에 근거해 강원도의 정선·영월·삼척 지구에 ‘을종 사태’를 선포하고 군경과 예비군을 동원해 공비 소탕작전을 개시했다.
공비들은 12월9일 밤에는 평창군 산간 마을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인 이승복 군을 만났는데 북한과 남한 중 어느 쪽이 좋으냐고 묻고는 이승복 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대답하자 무참하게 입을 찢고 절굿공이로 머리를 쳐서 죽였다. 어머니 주대하(당시 33세)와 두 동생 승수(당시 7세)와 승자(당시 4세)도 이때 함께 살해당했다. 하지만 승복 군의 형 승권(당시 15세·호적 이름은 이학관)은 36군데나 칼에 찔리고도 살아남았고, 아버지 이석우도 다리에 칼을 맞고 필사적으로 도주해 목숨을 건졌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공비 토벌작전은 12월28일까지 약 2개월간 진행되었으며 113명을 사살했고 7명을 생포했다. 그때 우리 측에서는 군·경·민 합해서 사망자 82명·부상자 67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생포된 7명은 즉시 서울 대방동에 있는 수용소로 후송되었고 한·미 합동심문반이 총동원해 이들을 심문했다. 전시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였다.
그때는 아직도 국내의 모든 대공 심문활동을 미 502군사정보단이 주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측 수석 심문관이었던 내가 합동심문반의 활동을 총지휘했다. 당시 북에서는 청와대 기습 작전의 실패와 울진·삼척 작전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노동당의 대남사업 총책이었던 허봉학과 민족보위상 최광·정찰국장 김정태가 숙청되었다.
우리 정부에선 강원도 평창군 산간 벽촌에서 어린 나이에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용감하게 반공정신을 보여 준 이승복 어린이를 기리기 위해 기념관과 동상을 세우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그 이야기를 실어 자라나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애국심을 심어 주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내내 친북좌익 언론은 이승복 피살사건을 군사 정권이 꾸며낸 조작이라고 주장하며 국민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뿐인가. 전교조는 지금도 이승복 피살 사건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대한민국은 참으로 희한한 나라다. 하지만 이승복 어린이의 애국심은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역사 속에서 계속 ‘반공’을 외칠 것이다.
친구의 교통사고
총을 쏘고 대포를 쏘는 전쟁은 끝나고 휴전상태에 들어갔지만 북한은 끊임없이 전투 태세를 유지하며 간첩들을 남파해 남한 사회에 친북 지하조직을 구축하고 대한민국을 전복시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지긋지긋하도록 남한을 괴롭혀 왔다.
전방에서는 북한의 인민군과 민간인들이 북에서 살기가 힘들어 남한으로 귀순하고, 후방에서는 침투한 간첩들이 자수하거나 체포되어 대방동 수용소에 몰려왔다. 일반 국민은 평온하게 생업에 열중하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을 때 한·미 양국의 정보기관에서는 보이지 않는 숨은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미 502군사정보단이 대한민국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가장 치열하고도 위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502군사정보단의 심문관들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야근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며 전국을 누비며 지방출장 근무도 했다. 한·미 양국의 심문관들이 모두 애국심이 투철하고 노련한 사람들이었지만 특별히 양국 정부가 인정하는 유능한 심문관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그 당시 치안국(경찰청) 소속 대공 심문관이었던 김오대 씨와 김주홍 씨가 있었고, 국군 측에서는 나중에 안기부 대공 수사단장을 역임한 한철흠 씨가 있었다. 또 보안사에는 한문석 씨가 있었고, 미군 측에서는 나와 이정엽이 유능한 심문관으로 거론되었다.
이정엽은 전북 전주 출생이고 나는 충남 부여 출생으로 우리 둘은 능력이나 인간적 기질이 비슷하여 서로 믿고 의지하며 아주 친하게 지냈다. 우리는 서로 존경했고 한쪽이 잘되어도 절대로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가족끼리도 친하게 지냈다. 평생을 살면서 마음과 뜻이 통하는 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들 하는데, 우리가 바로 그런 사이가 아니었을까. 이정엽의 영내 가명은 쥰(June)이었고 나의 가명은 마이클(Michael)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미군 측 10여 명의 심문관들 중에서 늘 업무량이 가장 많았고 중요한 대상이나 특별한 대상의 심문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다.
1969년 3월 말 중부전선에서 인민군 장교 한 사람이 귀순했다. 이때 이정엽과 나는 이틀간 밤 12시까지 교대로 집중 심문을 하는 등 강행군을 하고 중요한 요점 심문이 끝난 3월30일 새벽 1시에 퇴근했다. 나는 기진맥진한 채로 집에 가서 깊이 잠들었는데 꼭두새벽에 부대에서 급히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유능한 인재의 안타까운 죽음
부대에는 부대장과 장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정엽이 전날 밤 귀가하는 길에 운전병이 과속으로 몰던 차가 전복돼 아스팔트 길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뇌진탕으로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양쪽 귀가 울기 시작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이정엽의 집으로 가서 그 부인을 데리고 용산에 있는 미8군 병원으로 갔다. 부인이 초조한 표정으로 “우리 집 그이가 교통사고라도 나서 많이 다쳤나요?” 하고 물었지만 나는 북받치는 눈물을 참고 그저 “모르겠어요, 가 봐야 알겠네요”라고만 대답했다.
바로 전날 밤까지도 같이 일하던 친구가 불과 몇 시간 후에 유명을 달리한 것이었다. 너무나 허무하고 허망했다.
그는 아직도 내 가슴속에 살아 있다
미 502군사정보단에서 일하던 모든 사람이 이정엽의 죽음을 슬퍼했다. 우리는 부대장(部隊葬)으로 이정엽의 장례식을 치렀다. 나는 평생에 그때처럼 슬피 운 적이 없었다. 아까운 37세의 젊은 나이에, 유능한 인재여서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그가 떠난 것은 우리 부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커다란 손실이었다.
나는 이 친구를 보내고 오랫동안 허탈감 속에서 살았다. 꿈속에서 자주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만났고, 꿈에서 깨고 나면 온몸이 저리고 아팠다. 이정엽은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지금 안양에서 조금 떨어진 청계산 천주교 묘지에 누워 있지만 내 가슴속에선 그가 언제나 살아서 숨 쉬고 있을 것이다.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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