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58] 하룻밤 정사 후 굿모닝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소설

아내를 등에 업고 외도한 남자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22 06:30:10

하지만 꼭 한나절의 시간만 남겨 두어서는 아니었다. 아내와 잠자리를 하지 못하게 된 후 몇 번, 어쩌다 알게 된 여자들과 술김에 하룻밤을 보내곤 했다. 아침에 그녀들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어둠이 걷히기 전 옷을 주워 입고 그녀들의 침실을 나왔다. 허물을 벗어 놓고 떠나는 한 마리 뱀처럼, 욕망에 항복하고 말았다는 수치심과 자괴감으로부터 슬쩍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던 것이다.

다시는 그녀들을 만날 일도 없었다. 밤 사이 어떤 짓을 했건 나는 나를, 나의 죄를 잊었다. 동료들과 어울리다 늦은 척, 새벽에 집으로 들어간 나는 정력을 소진한 육체를 땀에 전 양말처럼 내던지고 아내 옆에 누워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세례를 받듯 욕실에서 샤워를 했다. 그것으로 나는 정결해졌다.

하룻밤 정사를 끝낸 아침, 나는 마주 앉은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시간이 쌓여 친밀해진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행동과 마음을 제약했다. 여자를 소유한 사내가 드러내도 상관없을 자긍심으로 거들먹거릴 만큼 뻔뻔할 수도 없었다. 지난밤 그녀에게 속속들이 드러낸 나의 욕망이 부끄러웠다. 내 스스로 자부했던 내적 고결함, 나의 어둠과 적막과 고독이 훼손된 것만 같았다. 하운이 나를 유혹했다! 저 여자가 나의 순결을 손상시켰다! 핑계를 대고 있었다.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는 것은 깊이 감추어야 할 나의 당혹감과 난처함을 하운이 빤히 꿰뚫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오해하고 있는 거라고, 하운을 설득하기 위해 나는 말해야 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지난밤 고마웠어요. 아니었다. 내가 만난 여자 중 당신과의 섹스가 최고였어요. 아니었다. 오랫동안 아내한테서 채울 수 없던 허기가 해소됐어요. 아니었다. 당신은 나하고 하는 게 어땠어요? 좋았나요? 아니었다. 아니었다.

혼란이 커질수록 하운에 대한 의심도 커졌다. 통화한 남자하고도 잤을까. 그 남자하고 비교했을까. 최 박사가 그랬다. 이 여자를 믿지 말라고. 하운도 말했었다. 자신이 맡은 케이스는 실패했다고. 죽음 앞에 절박한 남자에 대한 동정심으로 허락한 것이었을까. 오늘이면 사라질 사내와 이 여자도 부담 없이 즐긴 것은 아닐까. 그래, 뜨거웠지! 이 여자, 이혼했잖아. 그동안 남자가 한둘이었겠어? 원래 쉬운 여자일 거야. 그러니 골 아프게 생각할 가치도 없는 거야.

생각이 여기에 닿자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이렇게까지 바닥인 인간이었구나! 빈속에 마신 커피마저 토해 내고 싶을 만큼 나 자신에게 비위가 상했다. 그럴수록 하운에게 근사한, 지금 내 생각을 모두 뒤집을 수 있는 성실하고 정결한 언어를, 그녀의 마음에 꼭 드는 찬사를 해 줘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얼어붙게 했다. 변명하고 싶은 욕망이 커질수록 그녀와 나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깰 수 없는 암석처럼 단단해졌다.

아내 때문이었다. 나와 하운 사이에 아내가 존재했다. 나는 아내를 털어 내지 못했고, 하운은 내가 등에 업고 있는 아내의 무게를 지각하고 있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김규나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