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78] 내 아버지의 적통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소설

내 아내를 탐하지 말라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9-25 06:30:10

그런데도 나는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하루하루 그의 독설이 무거워졌다. 평론가마다 취향이 다르다고, 술 취해 한 말이니 마음에 담지 말라고 몇몇 선배가 나를 위로했지만, 그날 그 순간이 결코 지워지지 않았다.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한 글자를 쓰면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설은 그렇게 쓰는 게 아냐.” 다시 한 글자를 쓰면 “그런 걸 누가 읽는다고?”

그의 비웃음이 쟁쟁하게 귀에 들렸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스스로를 끝장내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면서도 나는 시들어 버렸다. 어린 시절 소각장 앞에서 차마 집어던지지 못했던 소설을 나는, 불태워 버렸다. 그렇게 내 안의 소설가는 살해당했다.

비록 교회는 옮겼지만 달봉은 버젓이 자신이 내 아버지의 적통이라고, 저토록 넉넉한 미소와 저토록 부드러운 목소리로 세상에 선포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은 아들. 저 확실한 전승. 확고한 후계. 혈연은 중요하지 않았다. 달봉이 아버지의 적자였다. 멀리 도망치는 것으로 억누르고 외면하고 부정했던 뜨거운 불길이 가슴속에서 다시 활활 살아났다. 나는 시기하는 카인이었다. 더구나 나의 아벨은 내 아내와 내 아이들까지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유리의 결혼식장을 나와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을 때 달봉을 떠올렸다. 만약 내가 오늘 밤 죽게 된다면, 그에게 아내와 아이들을 맡기는 것이 옳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너그러움을 가장하고서라도 그래야 한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다. 나는 진심으로 아내와 아이들의 행복을 바랐고, 그래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보지 못한 어떤 것이 아내의 마음에 그토록 견고한 믿음을 심어 준 것일까. 정말 아내와 아이들을 맡겨도 되는 것인가. 모든 질투를 녹이고, 아무런 원망도 없이 달봉을 만나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눈앞에 달봉이 보이자 끓어오르는 질투를 걷잡을 수 없었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를 향해 돌진했다. 다짜고짜 달려가 그의 턱을 날렸다. 달봉의 턱뼈에 나의 주먹이 닿는 순간, 그의 얼굴이 한쪽으로 휙, 돌아갔다. 성경책과 찬송가 책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달봉이 비틀, 뒤로 나자빠졌다. 손뼈가 으스러질 듯 아팠다. 교인들과 주변에 있던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며 영문을 몰라 웅성거렸다. 내 입에서는 익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문장들이 상스럽게 터져 나왔다.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그것도 모르는 새끼가 목사라고?”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겠지만 젊은 목사 달봉이는 불리했다. 불시에 일격을 당한 달봉은 턱을 감싸 쥔 채 씩씩거리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소리야?”

달봉이 일어나 몸을 털며 침착하게 감정을 추스르려 애썼다.

“너 지난밤, 내 마누라랑 잤잖아.”

나는 막무가내로 악다구니를 쓰며 그에게 다시 덤벼들었다. 입 밖으로 천하디 천한 말이 비명처럼 내뱉어지는 순간, 그 날카로운 창날은 달봉에게 닿지 않았다. 부메랑처럼 돌아와 내 심장에 박혔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김규나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