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23] 싸늘한 아내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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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아내와 아이들의 소풍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03 06:30:12

터미널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환승을 거쳐 도착한 곳은 처가가 있는 목동 아파트 단지였다. 걸음이 빨라진 나는 아이들을 볼 생각에 온몸이 떨리기까지 했다. 겨울방학은 시작되지 않았겠지만 토요일이었다. 아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아이들과 소란하고 유쾌한 주말을 즐기며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전화기를 꺼내 아내의 번호를 눌렀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을 11층을 올려다보았다. 벨이 오래 울린 뒤에야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웬일이야?”

아내의 첫 번째 반응이었다. 걸음을 멈추었다.

“어…….”

나는 당황했다. 싸늘한 목소리 때문이라기보다 눈앞에 아내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재빨리 뒤돌아 건물 옆으로 몸을 감추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아내가 먼저 물었다.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어?”

아내에게 내가 먼저 전화한 것은 처음이었으므로 연락한 이유가 집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했다. 나는 고개를 내밀어 아내를 엿보았다. 방금 아파트 건물에서 나온 아내를 맞이한 건 남자였다. 달봉이었다. 앞에 세워 둔 흰색 승용차 운전석에서 내린 달봉은 아내의 손에서 가방을 받아 들고 트렁크에 넣었다.

“무슨 일인데?”

대답이 없자 아내가 다그쳤다.

“어, 저기, 애들하고 볼까?”

“언제?”

집 앞에 왔다는 말은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때 장모가 건과 한을 데리고 나왔고 달봉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우리 강건! 우리 강한! 오늘 신나게 놀아 볼까?”

달봉이 넉살 좋게 큰소리로 아이들을 반겼다. 자동차 뒷자리에 태우기 위해 큰아이를 담뿍 올려 안았다. 달봉의 어깨 너머로 건의 얼굴이 보였다. 건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를 알아본 건의 까만 눈동자가 크고 동그랗게 반짝였다.

‘아빠?’

건이 입술을 달싹였다. 들리지 않았지만 아이는 분명 아빠, 하고 발음했다. 달봉이 아이를 뒷자리에 태웠다. 장모가 반대쪽 베이비시트에 한을 앉혔다. 짙은 색 창유리 필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건은 자동차 뒷좌석 유리창에 매달려 나를 찾는 게 분명했다.

“지금 갈까?”

“나 지금 아이들하고 놀이공원 가는 길이야.”

달봉이가 건을 베이비시트에 태우려고 했지만 아이가 뒤 유리창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 달봉이 대신 장모가 몸을 반쯤 밀어 넣고 아이를 달랬지만 허사였다.

“아빠만 찾네요.”

달봉이 이마의 땀을 훔쳐 내며 말했다. 장모가 미안한 듯, 고마운 듯 달봉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 그래. 애들이 신났겠구나. 장모님하고 같이 가는 거야?”

“아냐, 친구하고…. 어디야?”

“어, 시내 나왔다가.”

나는 얼버무렸다. 오히려 달봉이와 간다고 말했다면 오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 사이 달봉이도 장모도 아내의 통화가 끝나길 서먹하게 기다렸다. 아내가 그들에게 잠깐 기다리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장모가 달봉에게 차에 타라고 재촉했지만 그는 예의 바르게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서 있었다.

“늦게 오겠구나.”

내가 물었다.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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