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46] 밤하늘 별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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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고 여신의 저주를 받은 사냥꾼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05 06:30:10

하운이 대답 대신 팔랑팔랑 손을 내저었다. 아직도 통화 중이었다. 나는 술병을 들고 베란다 난간을 넘어 포치로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별 보며 혼자 술 마셔요.”

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듯 하운이 말했다. 옆에는 다 마신 와인병이 하나 뒹굴고 있었다. 나를 잊고 있었구나, 애써 누르고 있던 질투의 불길이 가슴에서 확, 치밀었다.

“고마워요. 그럼 목요일에 저녁 같이 해요.”

하운이 말하고는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좋아요. 기대할게요. 운전 조심해요.”

하운이 다정하게 인사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제야 나를 쳐다보며 그녀가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오랜 통화로 목이 말랐다는 듯, 내가 필요한 게 아니라 와인이 반가웠다는 듯, 하운은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빼앗아 병째 한 모금 삼켰다.

내 기분은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하운은 이 세계에서 나를 책임져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 낯선 곳에 나를 방치하고, 나를 잊고, 이토록 즐겁다는 듯 다른 사람과 통화를 즐기는 무심함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더구나 목요일이라면, 나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날이었다. 남자가 틀림없는 상대와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 약속을 하는 하운에게 말할 수 없이 서운했다.

“에바는요?”

“시차 때문에 피곤하신가 봐요. 일찍 침실에 드셨어요.”

“최 박사님도 에바가 온 걸 알아야 하지 않나요?”

내가 마땅치 않은 마음을 드러냈다. 에바는 얼마나 자주 한국에 왔던 것일까. 가슴을 쥐고 쓰러지던 주결이 떠오르자 혼자 정의감에 사로잡힌 나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하운은 그런 내 기분에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다시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멀리 허공을 바라보았다.

“저거, 위성일까요?”

하운은 이번에도 내 감정에 대해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남동쪽 하늘을 가리키며 화제를 돌렸다.

“시리우스예요. 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이죠.”

하운과 간격을 두고 벌렁 누운 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두 손을 깍지 끼고 베개처럼 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겨울 별자리가 한눈에 훤히 들어왔다.

“길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목욕하는 여신을 본 사냥꾼이 있었어요.”

나는 한껏 우울해져서 시리우스와 관련된 전설을 이야기했다. 선녀와 나무꾼을 떠올렸는지 하운이 물었다.

“옷을 숨겨서 결혼했나요?”

“화가 나서 사슴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흠. 여신이 몸매에 자신이 없었군요.”

“사냥개들은 주인인 줄도 모르고 사슴을 갈가리 물어뜯어 죽여 버렸어요.”

내 말에 하운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별이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