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없지만 어머니도 행여 다칠까, 혹여 아플까, 사랑과 걱정이 교차하는 눈길로 나를 지켜 주었을 것이다. 지금 내 아이들이 놀이에 열중하느라 제 엄마의 자상한 미소를 눈에 담지 못하는 것처럼, 어머니도 내가 모르는 사이 세상을 배우고 익히느라 골몰한 나를 바라보며 모든 시름을 잊고, 내 아내처럼 미소 지었을 것이다.
나는 멀찍이 서서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아내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함께 살 때도 나는 언제나 아내와 아이들이 그려 내는 풍경 밖에 존재했다. 늘 피곤하고 늘 바쁘고 늘 고단했다. 근무 교대로 낮밤이 수시로 바뀌었으니까. 지하터널을 맴도느라 햇빛 아래 서면 불안했으니까. 아내가 다 이해해 주길 바랐다. 가족은 늘 그 자리에 있을 줄만 알았다.
아내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보고 웃어 주길, 안아 주길, 직장생활과 살림을 야무지게 해내는 자신에게 수고한다, 고맙다고 말해 주길, 우리의 미래를 함께 꿈꾸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아내에게 바랐던 것처럼 똑같이, 아내도 내게 관심과 사랑을 바랐을 것이다.
“강건! 강한!”
내가 다가서며 아이들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나를 돌아보는 순간, 아내는 웃음을 접었다. 아이들은 동작 그만. 저 아저씨는 누굴까, 하는 것 같은 얼굴로 얼어붙었다. 터진 입술을 보고 놀란 것 같았지만 아내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어색한 인사 다음에 부동산 전화번호를 주며 집이 팔릴 것 같다는 말에도 시큰둥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모래를 퍼 나르던 둘째는 내가 손이라도 잡아 보려 하자 제 어미 뒤로 숨었다. 아내가 억지로 안아 올려 내게 건네주었지만, 입을 삐죽거리더니 금세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혔다. 기어이 죽어라 악을 쓰며 울어댔다. 어미 품으로 돌아가서야 안심한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자 다시 모래 장난에 빠졌다.
그네에 앉아 있던 큰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아이에게 다가갔다. 무릎을 접고 아이와 시선을 맞춰 앉았다. 아이는 그사이 조금 큰 것 같았고 머리카락은 짧아졌다. 다섯 바늘이나 꿰맸던 이마의 흉터가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미안해서 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내렸다. 아이의 신발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새 발도 자라서 아내가 새로 사 주었을 것이다.
“그네 밀어 줄까?”
나는 애써 웃음을 짓고 고개를 들었다. 또렷이 나를 쳐다보던 아이는 그네에서 깡총 뛰어내렸다. 나를 피해 놀이터 한쪽에 있는 미끄럼틀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아이는 계단을 서둘러 밟고 뛰어 올라가 로켓발사대처럼 높은 미끄럼틀 꼭대기에 앉았다. 문어발처럼 원통형 미끄럼틀이 동서남북을 향해 구불구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서 가 보라고, 아내가 내 등을 밀었다.
아이는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다가가자 쪼르르, 통속으로 쏙 들어가 몸을 감추었다. 어느 방향으로 나올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초조하게 미끄럼틀 주위를 돌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사방으로 원형 미끄럼대가 뻗어 있었다. 아이는 어느 쪽으로도 나오지 않았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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