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불길이 치솟았다. 16일 아침 부천시 금속부품 도장공장 화재 현장. 검게 그을린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이 쓰러졌다. 가장 먼저 불길을 헤쳤던 김진석(44) 소방위였다.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이튿날 목숨을 잃은 고인의 영정사진 앞엔 딸이 쓴 편지가 놓였다. “아빤 어제 돌아가셨는데 지금도 너무 보고 싶네요.” 유치원생 딸은 소방차를 그린 편지에 “나중에 꼭 다시 만나요”라고 썼다.
고인의 명복을 빈 소방관은 “장비 확보만이 소방관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2026 소방장비 통계집을 살펴보면 경기도 소방관 보호장비 가운데 무려 49.3%가 사용기한을 넘겼다. 방화복(62.5%)과 공기호흡기(74.4%)도 마찬가지다. 국민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소방관이 목숨을 걸고 있는 셈이다. 불 속에서 공기 호흡기가 작동하기 않아서 유독가스를 마시면서 탈출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권력자 눈에는 보이질 않는다. 경기지사는 15년만에 소방을 무시했다. 보수 진영 대권 잠룡이었던 김문수 지사는 2011년 119 긴급전화를 걸었다. “이름이 누구냐는데 왜 말을 안해?” 관등성명을 요구한 도지사에게 위급상황 처리규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진보 진영 대권 주자인 추미애 지사도 비슷했다. 추미애 지사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이 막말하는 이유는 뭘까? 뇌과학자 이안 로버트슨은 승자 효과(winner effect)로 설명한다. 정치인은 선거에서 이길수록 자신감이 넘친다. 승리가 거듭할수록 자신감이 커지고 다음 목표에 집중한다. 그러나 의욕이 지나치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거울뉴런 기능이 약해진다. 김문수는 소방관 따위가 도지사를 무시한다고 생각했고 추미애는 화염을 불사하는 소방관을 재정 빨대로 여겼다.
소방관은 동네북이었다. 경기지사는 사과마저 변명으로 활용했다. 포천과 가평으로 전보 조치됐던 인사는 취소됐지만 김문수 당시 지사는 관등성명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부천 화재 현장에서 추미애 지사는 빨대 발언에 대해 묻는 취재진에게 “그런 얘기 하지 말자”고 했다. “제 의도와 다르게 전달이 됐다면”이라던 추 지사는 “사과를 바라시니까 정말 마음을 다해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조건부 사과에 국민여론은 싸늘했다.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했던 김문수와 소방을 예산 낭비 요인으로 본 추미애의 언행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진짜 비극은 실언 뒤에 숨은 셈법이다. “1년 후에 국민은 또 달라진다”던 어느 정치인은 “1년 지나면 다 찍어주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야인으로 지내던 김문수는 지난해 대통령 후보가 됐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불길에 뛰어드는 소방공무원의 헌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세금을 왜 걷는가. 국민을 보호하고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다. 목숨을 걸고 화염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을 보호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왜 필요한가. 화재와 폭발 사고에서 우리를 지킬 영웅을 홀대할 사람에게 도정을 맡겨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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