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연쇄 해킹 사태와 관련해 고객에게 피해 입증 부담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국정감사에서 나왔다. 국회는 개인정보 유출 이후 발생할 금융사기 등 2차 피해에 은행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따졌다. 5대 은행장은 증인석에 나란히 출석해 피해 보상과 보안체계 강화 방침을 밝혔다.
19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실제 피해 발생이나 입증을 전제로 보상하는 방식이 고객에게 입증 부담을 떠넘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개인정보 유출 이후 발생한 금융사기 피해와 해당 사고 사이의 관련성을 고객이 밝혀야 하는 상황을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은 이름과 전화번호뿐 아니라 연소득·대출 관련 정보가 함께 유출되면 보이스피싱 등 2차 피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보 유출에 대한 사과를 넘어 실질적인 피해 구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호성 하나은행장은 수수료 면제 등을 우선 시행했으며, 고객 동의 절차를 거쳐 금융안심보험 가입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확인된 금전 피해는 없다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향후 피해가 발생하면 전액 배상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날 국감에는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 강태영 NH농협은행장이 일반 증인으로 출석했다. 5대 은행장의 동시 국감 증인 출석은 2022년 10월 이후 4년 만이다.
이환주 행장은 신뢰를 기본으로 하는 금융기관에서 사고가 발생해 고객과 국민에게 염려를 끼쳤다며 사과했다. 정상혁 행장도 고객정보 유출에 대해 송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호성 행장 역시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예산·인력 확충 방침을 설명했다.
늦어진 해킹 인지·보안 예산 집행도 추궁… 은행장들 “대응 강화”
은행들이 해킹을 얼마나 신속하게 알아차렸는지도 쟁점이었다. 김 의원이 이날 국감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해킹 발생부터 인지까지 15시간 26분이 걸렸고, 정보 유출 피해자는 2만5729명이었다. 하나은행은 사고를 인지하기까지 41시간 44분이 걸렸다.
공격을 차단하는 능력뿐 아니라 침입을 조기에 탐지하고 피해 확산을 막는 대응이 적절했는지를 따진 것이다. 사고 인지가 늦어질수록 정보 유출을 차단하거나 고객에게 주의를 안내할 시점도 늦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응체계가 검증 대상에 올랐다.
보안 예산을 편성하고도 충분히 집행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정보보호 예산 집행률은 국민은행 58%, 농협은행 53%에 그쳤다. 김 의원은 보안 투자 확대를 촉구했다.
이환주 KB국민은행장은 “재발 방지를 위해 보안 예산과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AI를 활용한 공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은행 보안시스템 역시 AI 기반으로 고도화하겠다는 취지의 답변도 내놨다.
이번 공격에서 고객정보 유출이 확인되지 않은 은행들도 안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피해가 없었던 것을 두고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며, “지속적인 공격 시도에 대비해 감독기관·금융보안 관련 기관과 예방에 힘쓰겠다”고 설명했다.
강태영 농협은행장은 “2022년 구축한 차세대 통합관제 시스템을 올해와 내년에 걸쳐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공격 수법의 변화에 맞춰 탐지와 대응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날 은행장들은 보안 투자 확대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피해 구제에 관한 질의는 고객이 실제로 보상받을 수 있는 절차에 집중됐다. 정보 유출 이후 발생한 피해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고객의 입증 부담을 어떻게 줄일지가 주요 쟁점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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