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alk] ‘무지의 베일’에 갇힌 망 사용료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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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규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2-27 14:02:03

‘무지의 베일’은 미국의 사회철학자 존 롤스가 주장한 개념으로 사회적 정의의 원칙을 도출함에 있어 사회적 지위나 계층 등에 관해 알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지금 하려는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개념이지만 단어만 보면 이번에 할 이야기와 맞는 것 같아서 인용한다.

망 사용료 논쟁이 다시 터졌다. 이전부터 이야기가 많았고 최근에는 트위치 코리아 철수 논란을 계기로 재점화됐다. 요약하면 트위치코리아가 한국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한국의 망 사용료가 다른 나라에 비해 10배 이상 높아 철수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통신사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달 22일에는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가 트위치코리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모 CDN(Content Delivery Network·콘텐츠 전송망) 업체의 국가별 요금 단가를 근거로 제시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에 따르면 북미를 제외한 한국·일본·홍콩·싱가포르 등의 국가에서 CP(Contents Provider·정보 제공자)가 지불하는 요금은 거의 같은 수준이다.

해당 업체 요금에 이미 망 사용료가 반영됐기 때문에 해당 업체의 요금에 국내·외 차이가 없다면 국내 망 이용대가가 해외보다 크게 비싸지 않으며 트위치의 한국 시장 철수는 사업 실패가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의 주장이다.

먼저 하나 궁금한 것은 한창 망 사용료로 시끄러울 때는 왜 이런 자료를 내놓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트위치코리아 철수 발표가 지난해 12월이니까 두 달이 지났다. 진작 내놓았으면 될 걸 왜 2030 남성이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다고 말하면서 비판을 자초했는지 모르겠다.

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자료의 부실함이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가 제시한 것은 원문 그대로 모 CDN 업체의 국가별 요금 단가다. 그 CDN 업체를 트위치가 이용해서 망 사용료를 내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거의 같은 수준이라고 썼을 뿐 요금제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도 없다.

혹시 CDN 요금이 기밀인가 싶어서 구글에서 CDN 요금을 검색해 봤더니 아마존 클라우드프론트의 지역별 요금이 바로 나온다. 업계에서 통용되는 비밀 유지 계약을 아마존만 무시한 것이 아니라면 못 밝힐 자료도 아닌데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는 공개하지 않았다.

사실 국내와 해외의 망 사용료가 차이가 난다는 하소연은 트위치만의 주장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왓챠가 공개적으로 국내 망 사용료에 대한 불만을 제기한 적이 있고 왓챠 외에도 망 사용료와 관련해 통신사를 비판한 기업은 꽤 있었다. 망 사용료는 문제가 없는데 콘텐츠 기업들은 장사가 잘 안되면 일단 통신사랑 망 사용료 핑계를 댄다고 할 셈인가.

이제까지 통신사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만 트위치 역시 떳떳하지는 않다. 트위치는 한국의 망 사용료가 비싸다고 했을 뿐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다. 일단 트위치는 한국에서의 매출 규모 또한 확실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트위치코리아가 신고한 2022년 매출이 20억 원 안팎인데 같은 해 아프리카TV의 매출이 3149억 원이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세금을 덜 내기 위해 매출이나 영업이익 등을 속이는 사례가 흔한 만큼 트위치 역시 비슷한 방법을 쓴 것으로 보인다.

즉 망 이용료 논란은 가장 확실한 자료는 공개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나 일방적인 주장만을 내놓는 데서 빚어진 것이다. 이런 구도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유는 결국 진실을 밝혔을 때 서로에게 유리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맨 앞에서 언급한 무지의 베일의 진실은 탐욕의 베일인 셈이다.

워낙 공개된 것이 없기 때문에 일개 기자의 입장에서는 추측밖에 할 것이 없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억울하다면 망 사용료 내역을 까 보면 된다. 계약상 기밀이라고 한다면 통신사든 트위치든 서로에게 실제 망 사용료를 공개하자고 공개 요청을 하면 된다.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양준규 기자 jgyang@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