李대표가 화두 꺼내면 尹대통령이 설명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폴리로그 > 대통령실·총리실

영수회담 누가 주도했나

李대표 공개 발언서 기자들 세워놓고 15분간 작심 공세
예정 없던 메모 낭독에 尹대통령 당혹… 고개만 끄덕
洪정무 “7대3 정도”… 鄭실장 “이태원 특별법 반대”

오주한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4-30 17:43:33

29일의 영수회담은 사실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도했다는 평가가 정치권에서 나온다. 이 대표가 언론에 공개된 모두발언에서 예정에도 없던 ‘총선 청구서’를 내민 반면 대통령실은 상대적으로 끌려가는 모습이었다는 분석이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특별법 독소조항을 반대했다는 점 등에서 반론의 목소리도 있다.

회담 당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도착한 이 대표는 검정 양복 안주머니에서 5400자 분량의 모두발언이 담긴 두툼한 A4 용지를 꺼냈다. 모두발언은 간략히 하기로 앞서 합의된 상태였다. 이 대표는 퇴장하려던 기자단을 불러 세운 채 ‘총선 청구서’를 낭독했다. 민주당은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에 압승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장장 15분간 읽어 내려간 ‘청구서’에서 △민주당이 제안한 민생회복지원금(전 국민 1인당 25만 원 지급) 수용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자제 △해병대 채 상병 사건 특검법 및 이태원 특별법 처리 협조 △국정 기조 전환 등을 윤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독재·지배·탄압 등 거친 단어도 사용됐다.

이 대표는 사실상 김건희 여사를 겨냥해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국정 방향타를 돌릴 마지막 기회”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 대표와 악수할 때까지만 해도 웃는 표정이었던 윤 대통령 표정은 예정에 없던 청구서 낭독에 굳어졌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 발언 내내 고개만 끄덕였다.

이어진 비공개 회담에서도 대통령실은 주도권을 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에 배석한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29일 TV조선 뉴스9 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질문을 하니 대통령은 자연스레 질문에 대한 생각을 설명했다”며 “시간으로 따지면 제가 볼 땐 한 7대 3 정도는 된 것 같다”고 전했다.

홍 수석에 의하면 비공개 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이태원 사건의 국가 책임을 묻는 민·형사 재판이 진행 중인 것과 관련해 “1차 판결이 나고 유가족이 동의한다면 국가는 더 이상의 항소를 하지 않을 생각까지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회담 직후 이뤄진 참모 회의에선 “다음(2차 영수회담)엔 국회 사랑재에 가서 하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다만 대통령실이 마냥 끌려다니는 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회담에 배석한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 대표가 ‘의대 증원은 불가피하다’ ‘대통령의 개혁 방향이 옳다’고 언급했다. 적극 협력하겠다는 이 대표 말씀에 크게 다행이라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비공개 회담에서 이 대표의 이태원 특별법 수용 요구에 대해 “민간위원회가 결정하면 압수수색을 해야 한다는 건 형사법 원칙에 안 맞다. 독소조항은 제거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대통령이 이 대표 앞에 무기력했던 게 아니라 이 대표가 결례를 범했다는 지적도 있다. 김용태 국민의힘 경기 포천·가평 당선인은 “(이 대표가) 사실상 국정을 포기하라고 협박한 것”이라며 “대통령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이번 영수회담은 ‘집권 여당 패싱’ 논란도 야기했다. 2시간15분간 진행된 영수회담 배석자 중 국민의힘 인사는 없었다. 모두발언에서도 국민의힘은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배준영 사무총장 직무대행은 “영수회담이기에 저희는 (현장에) 안 보이는 게 맞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