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9] 아름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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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2-19 06:30:57

대학 패션 1번지 이대 앞엔 조다쉬 청치마에 힐을 신고 걸어 다니는 여대생이 넘쳐났다. 걸을 때마다 또각또각 금속음이 나는 총알굽에 짧은 조다쉬 청치마를 입은 여학생은 패셔니스트의 상징이었다.

진 브랜드로 리바이스나 LEE가 있었지만 조다쉬에 비하면 노회한 느낌이었고, 국내 청바지 브랜드 뱅뱅은 세련미가 없었다. 뱅뱅은 젊은 청춘들이 소화하기에 적당한 가격이었으나 브랜드 경쟁력은 조다쉬나 써지오 바렌테에 한참 처졌다. 써지오 바렌테 모델 중 하나가 키가 크고 다리 긴 연세대 남학생이란 소문이 돌았다. 승연은 뱅뱅 상업 광고에 왜 키 작은 전영록을 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은영을 바라보며 승연은 내내 잡생각뿐이었다.

“이런 얘기는 뭣 좀 아는 애들하고 해야 하는데 나는 대체 여기서 뭘 하는 것일까‘

금요일 마지막 수업 종이 울리자 은영과 기순이 달려왔다. 은영이 소박한 시골 스타일이라면 기순은 아예 깡촌 스타일이었다. 은영은 승연에게 친절했고 기순은 깍듯했다. 살면서 겪어 보지 못한 서울 여자에 대한 호감 내지는 관심이었다. 승연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이렇게 촌스런 애들과 어울리다니….’ 그런 승연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영과 기순은 마치 수사관이 용의자 도망 못 가게 팔 양쪽으로 꿰차듯 자연스럽게 승연과 팔짱을 끼고 정문 쪽으로 내려갔다.

학교가 생기면서 동시에 문을 연 식당이 아름식당이다. 식당 이름은 주인 부부의 딸 이름이었다. 식당 주인아저씨의 섹스와 음식에 관한 고찰은 -자꾸 듣다 보니- 일리가 있었다. 아름식당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가 수제비였는데 식당 아저씨는 수제비를 종종 여자에 비유하곤 했다. 여자나 수제비는 쫄깃해야 제맛이라나. 자기 집 수제비가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유지하는 비법은 발효 때문이라 했다. 여자도 발효되어야 맛이 좋다고. 아름식당을 처음 찾는 여자 신입생들은 아저씨의 음담패설에 기겁했다. 그것도 몇 번, 오히려 나중에는 무덤덤을 넘어 더 센 얘기는 안 해 주나 기대하는 눈치였다. 물론 듣기 좋은 얘기는 아니었다. 반찬으로 나온 김치는 이 식당이 최고였다. 주인아저씨는 음식을 성에 비유하길 좋아했다.

“겉절이 맛있다고 찾는 사람치고 떡 맛을 아는 놈이 없어. 김치야말로 최고의 발효식품이지. 몸에 좋고 맛도 좋고. 여자도 맛있게 먹을라치면 정성을 들여야 하는 법이여. 정성과 때가 중요한 것이제. 겉절이 좋아하는 놈들은 경험 없는 여자랑 떡쳐 놓고 맛있다고 하는 거와 같은 이치여. 우리 집 김치는 보름 전에 미리 담가서 잘 익힌 거 내놓잖아. 숙성이 답이여. 뭘 모르는 것들이 숙성도 안 된 어린 여자 찾고 그러지, 여자도 맛있게 먹으려면 나이가 적당히 들고 뭘 좀 알 때 먹어야 한다니께.”

주인아저씨가 여자를 ‘먹는다’고 표현하는데 반발하는 여학생이 없다는 게 신기했다. 수컷 포식자 중심의 발상에 발끈할 줄 알았는데 아저씨 입담이 재밌어서 그러려니 하는 건지, 이념 타파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히죽거리며 웃을 뿐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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