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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보 가운데 8할은 불교 관련 미술품이거나 불교에서 고취된 것들이다. 그 엄청난 비중만 봐도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부분에 걸쳐 불교가 한국문화와 미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 수 있다.
코벨의 한국문화 미술사 2탄 ‘한국불교와 그 미술’에 수록된 글들은 한국불교미술사라는 틀을 잡고 편년체의 체계를 갖춰 쓴 것이 아니라 저자가 임의로 선택한 한국불교 관련 논문과 칼럼을 모은 것이다.
저자는 특히 △고려불화와 불교의 선(禪)연구 △관세음과 미륵불 △불교와 무속 간의 관련성 등 한국불교문화와 미술사를 깊이 있게 성찰하고 있다.
고려불화는 한국 회화의 정점
한국불교에서 열정적으로 받들어지는 관세음과 미륵신앙 얘기는 불교 전통 속에 있는 독자들에게 낯선 것은 아니지만 코벨의 객관적인 제3자 시각의 글을 통과하니 이해가 깊어진다.
이 책의 가장 큰 주제인 고려불화는 미술사학자로서 존 코벨이 자신을 갖고 분석한 미술 분야였다. 그는 1979년 일본에서 열린 고려불화 특별전을 통해 90여 점의 불화를 접하게 된 것을 계기로 16편의 논문과 칼럼을 썼으며 한국불교와 미술에 매료되어 많은 글을 남겼다.
존 코벨은 불교의 최전성기를 이룬 고려시대 불화를 ‘한국 회화의 정점’으로 평가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고려불화가 계승된 미술사적 자취를 찾아보고 불교미술의 여러 편편을 다루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불교에 이르는 예술품에 대한 코벨의 분석은 철학의 깊이와 사회사적인 통찰이 돋보인다. 설악산 신흥사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한 글이나 충주 정토사 터 홍법국사(弘法國師) 부도탑에 대한 분석은 그의 불교미술 연구의 깊이를 잘 드러낸다.
‘죽음의 형이상학’ 홍법국사 부도탑
특히 저자는 국보 102호로 지정된 홍법국사 부도탑에 ‘죽음의 형이상학’이라는 부제를 붙이며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기하학적 구도의 이 조각건축은 101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한국불교가 전성기의 막강한 힘을 과시할 때(최고의 순수성은 아니라 해도) 나온 불교사적 기념물이다. 고려가 몽골의 영향 아래 들어가 고려왕이 몽골 공주와 정략결혼하던 시기 이전, 불교사찰의 부패가 극에 달하기 이전에 제작된 것이다.”
그는 이 부도탑이 우아하고 섬세정교한 것으로 신라 조각을 능가한다고 분석한다. 코벨에 의하면 홍법국사는 살아생전 그 거룩함으로 우러러보였던 인물이 틀림없다. 코벨은 그를 화장한 후 육신에서 타지 않고 남은 것들을 수습해 둥근 원구의 탑신 내부에 안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타지 않은 것들이란 사리를 말함이다.
“깨달음의 의미를 담은 둥근 원은 거의 세계적 상징이지만 이 단순한 형상 외에 깨달음의 의미를 어떤 식으로든 예술 형태로 표현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난제다. 원구형 탑신은 몇 가닥의 대리석 줄로 가볍게 묶였고 가로·세로줄이 겹치는 네 부분마다 연꽃무늬로 매듭지어졌다.”
그가 이 탑을 처음 발견한 것은 경복궁에서였다. 이 탑은 본래 충청북도 충주 하천리에 있었던 것을 1915년에 서울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2005년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되어 보관되었다. 그러나 다시 충북 제천시로 이전 준비 중이라 2024년부터 비공개 처리되고 있다.
이 탑은 팔각원당의 기본형에 새로운 창안을 가미한 작품으로 홍법국사가 입적하던 1017년 고려 불교가 막강한 힘을 발휘할 때 건축되었다. 기단부 위에 탑신이 놓이고 그 위에 지붕 격인 옥개석과 상륜이 장식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꼭대기 상륜부 두 부분은 현재 소실되었다.
코벨은 옛 사진과 비교할 때 사라진 부분은 연꽃 형상의 조각품이라며 속히 제자리에 돌려놓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 부재들은 상륜부에 느슨히 얹혀 있어 혹시나 떨어지진 않나 불안했는데 과연 떼어내 간 손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일제 강점기의 일본인들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 제발, 누군지 알 수 없는 도둑이여, 동트기 전 사람들이 없을 때, 또는 눈보라 치는 날 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에 이것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아다오!”
그의 호소에서 한국미술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도둑이 자발적으로 내놓을 가능성이 적은 데다 돌려놓을 때는 놓더라도 우선은 옛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복원해도 좋다는 생각이다.
끈질긴 미술사학자 그리고 현장답사를 불사한 편역자
또 저자는 한국불교의 진정한 가치를 말해주는 최대의 유물로 고려의 인쇄술과 장경각 건축을 꼽고 있다. 근대에 와서는 탱화 그림을 통한 고려불화의 명맥을 확인하는 동시에 한국불교와 화단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고찰한다.
백제가 일본에 전한 불교미술 역시 한·일 양국의 불교를 깊이 연구한 코벨 박사의 대표적인 연구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은 일본에 가 있는 것이라 해도 분명한 한국미술사의 한 부분에 틀림없다.
가령 표지를 장식한 ‘양류관세음도1’는 일본 교토 다이도쿠지에 소장된 고려불화다. 하단에 충숙왕과 그 수행원들 그리고 바다에서 솟아난 존재들이 행렬을 이루는 모습이 표현돼 있다.
저자는 충숙왕이 들고 있는 동일한 모양의 연꽃 모양 화로가 국내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밝힘으로 이 그림이 중국 것이 아닌 고려의 것임을 알아냈다. 양류관세음도는 일본으로 넘어 갔지만 이 화로는 국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영문으로 쓰여진 코벨의 글들을 오랫동안 번역해 온 편역자 김유경은 이 책을 엮으면서 글에 언급된 내용들을 재확인하기 위해 직지사·용주사·송광사·신흥사 등 여러 절을 현장답사하고 사진을 모았다.
코벨이 글을 쓴 시점과 오늘과는 40여 년이란 시차가 있어 사라지거나 변한 것도 있었고, 절의 미술사적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역자는 밝히고 있다. 한국인의 문화철학·역사 그리고 미학이 용해된 코벨의 원고가 또 하나의 코벨이라 할 편역자의 집념과 노고에 의해 소중한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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