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선릉에는 조선 제9대 왕인 성종과 3번째 정실부인 정현왕후 윤씨가 좌우에 나란히 묻혀있다. 성종은 조선의 전성기를 이끈 군주로 평가받는다. 성종은 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이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요절해 왕의 계승권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숙부인 예종마저 요절하자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와 신숙주·한명회 등 훈구대신의 뜻에 따라 형인 월산대군과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을 제치고 13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성종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문법인‘경국대전’을 완성시켜 반포하고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등을 편찬하는 등 조선 전기의 제도 및 문물 정비를 완성시킨 군주로 평가받는다. 스카이데일리가 성종의 여러 자식 중 세 아들인 안양군, 양원군, 완원군의 후손들이 서울 강남에 소유한 3채의 빌딩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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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 윤씨와 관련된 귀인 정씨를 죽은 시체까지 때릴 정도로 극도의 복수극을 펼쳤다. 연산군은 또 귀인 정씨의 아들 안양군을 제천으로 유배 보내고 가산을 몰수한 다음해 사약을 내려 죽였다. 다만 안양군의 후손들은 살아남아 ‘전주이씨안양군파종사회’를 구성한다. 사진은 귀인 정씨의 아들인 안양군의 후손들이 소유한 안양발딩(왼쪽, 강남구 대치동)과 실존 인물 홍길동의 조카인 숙의 홍씨의 7번째 아들인 양원군의 후손들이 소유한 양원빌딩(청담사거리 인근)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성종은 총 16명의 아들을 뒀다. 그 중 안양군, 양원군, 완원군 등 세 아들의 후손이 종중을 구성해 강남 일대에 각각 빌딩 한 채씩을 보유하고 있다.
성종은 25년 동안 재위하며 38세의 나이로 붕어하기 전까지 3명의 중전과 10명의 후궁을 맞아 연산군, 중종 등 16명의 아들과 13명의 딸 등 총 29명의 자식을 낳았다. 조선의 임금 가운데 세 번째로 자식을 많이 낳았다. 때문에 ‘낮에는 전설상의 성군인 요순이고 밤에는 전설적인 난봉꾼인 걸주(晝堯舜 夜桀紂)’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성종이 맞은 세 명의 중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폐비 윤씨다. 성종의 첫 번째 중전인 공혜왕후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일찍 죽자 유일하게 원자를 출생했던 숙의 윤씨가 중전으로 승격된다.
성종은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중전 윤씨를 폐비시키고 끝내 사사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폐비시킨 이유를 묻는 신하들의 질문에 대해 성종은 “폐비 윤씨가 몰래 비상 등 독약을 주머니에 같이 넣어 두었다 나에게 먹이려고 했다”며 “나를 볼 때 낯빛을 온화하게 하지 않고 항상 나의 발자취를 찾아서 없애버리겠다고 말했다”고 답한다.
성종은 이어 “후궁인 소용 엄씨와 귀인 정씨가 모의해 폐비 윤씨를 해치려고 한다는 내용의 서찰을 거짓으로 만들어 엄씨와 정씨에게 해가 미치게 하려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폐비 윤씨는 사사당하면서 “나는 엄씨와 정씨 때문에 죽는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후 성종은 정현왕후 윤씨를 새 중전으로 맞아 훗날 중종이 되는 진성대군을 낳는다. 성종이 붕어하자 폐비윤씨의 아들이었던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다. 연산은 친어머니인 폐비 윤씨를 제헌왕후로 추숭한다.
▲ 성종의 처삼촌 중 하나는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대도 홍길동이다. 성종이 낳은 29명의 자식 가운데 10명을 숙의 홍씨가 낳았다. 숙의 홍씨의 아버지는 홍일동으로 그의 서얼 이복 동생이 바로 홍길동이다. 사진은 숙의 홍씨의 아들인 완원군의 후손들이 소유한 방배동 완원빌딩 ⓒ스카이데일리
어머니 때린 비운의 안양군, 홍씨 아들 양원·완원군 종중 소유
성종은 폐비 윤씨가 죽어가며 저주한 귀인 정씨로부터 안양군과 봉안군 등 2남1녀를 얻는다. 연산군은 왕위에 오른 이후 어머니 폐비 윤씨의 복수를 명분으로 갑자사화와 무오사화 등을 일으켜 신하들을 죽이고 의붓어머니인 정현왕후 윤씨의 침소 앞에서 칼을 휘두르는 등 패륜을 저지른다.
연산군은 생모인 폐비 윤씨의 죽음 뒤에는 소용 엄씨와 귀인 정씨가 있다고 판단해 복수하고자 했다. 때문에 사건 처리과정에서 귀인 정씨의 아들인 안양군과 봉안군까지 끌어들였다.
연산군은 봉안군과 안양군에게 생모인 귀인 정씨를 때리도록 했는데 봉안군은 자기 어머니인 줄을 알고 때리지 않았지만 안양군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기 어머니를 때린다.
연산군은 이어 엄씨와 정씨를 직접 때렸고, 죽은 이후에도 계속 때렸다고 한다. 다음날 연산군은 어머니를 때린데 대한 상으로 안양군에게 말을 한 필 내렸다.
며칠 뒤 연산군은 안양군을 제천으로 유배 보내고 가산을 몰수했다. 그리고 다음해 안양군은 사약을 받았다. 하지만 안양군의 후손들은 살아남아 ‘전주이씨안양군파종사회’를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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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 홍씨는 폐비윤씨의 참소와는 관련이 없었기 때문에 연산군의 치세에서도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다.
숙의 홍씨는 동지중추부사 홍일동의 딸로 ‘홍길동전’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유명한 홍길동은 그녀의 서얼 숙부였다. 성종은 숙의 홍씨로부터 양원군, 완원군 등 7남3녀를 낳는다. 양원군과 완원군에게 홍길동은 외종조부가 되는 셈이다.
양원군, 완원군의 어머니인 숙의 홍씨의 삼촌인 홍길동은 연산군 시기에 활동한 유명한 의적이다. 홍길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서얼 출신인 홍길동은 버젓이 당상관의 차림으로 무리를 이끌고 관아에 들어갔으며 그 기세에 눌려 지방 관리들도 깍듯이 존대했다”며 “일반 사람들도 그 위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때문에 홍길동 사건은 당시 지배층과 세간에 널리 퍼져 100년이 지나도 두고 두고 거론될 정도였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은 조선 시대의 불합리한 서얼 차별과 가혹한 백성 수탈 등에 대해 개혁을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형상화한 대표 인물이 바로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이었다.
한편 홍길동의 조카손자 중 하나인 양원군은 조경의 딸과 혼인했으나 1517년 사별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535년에 시녀를 강제로 범한 것이 문제가 돼 사헌부와 사간원 등에서 죄를 물었는데 중종은 엄벌을 내리지 않고 파직만 시켰으며 얼마 안 있어 직첩을 돌려주었다. 1551년 사망한 양원군의 후손들은 ‘전주이씨양원군파종중’을 구성한다.
완원군은 1504년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충청도 부여로 유배됐다가 중종반정으로 유배에서 풀려났다. 완원군은 1509년에 병들어 죽었는데 그가 죽은 후 중종반정에서 원종 공신의 공로를 빼앗긴 종실의 서얼들이 완원군을 왕으로 옹립하려는 계획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완원군의 후손들은 ‘전주이씨완원군파종중’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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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대치·방배동에 각각 위치… 3채 합치면 420억대
안양군파종사회, 양원군파종중, 완원군파종중은 각각 강남 일대에 문중 명의로 빌딩을 갖고 있다.
안양군파종사회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지하 1층 지상 8층의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지난 1990년 8월 매입한 이 건물은 대지면적 469.6㎡(약 142평), 연면적 1787.72㎡(약 541평)이다.
정성진 어반에셋매니지먼트 대표는 “이 건물은 휘문고 사거리에서 휘문고 정문 방향 좌측 도로변에 있는 제3종 일반주거 건물”이라며 “1989년에 준공된 것으로 시세는 85억원 전후”라고 말했다.
양원군파종중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지하 2층 지상 7층의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지난 1992년 8월 매입한 이 건물은 대지면적 869.5㎡(약 263평), 연면적 3504.75㎡(약 1060평)이다.
정성진 어반에셋매니지먼트 대표는 “양원빌딩은 도산대로와 청담사거리에 인접한 도로변 건물이라 가격이 비싸다”며 “일반상업지역과 제3종일반주거가 혼용된 부지로 시세는 320억원 전후”라고 설명했다.
완원군파종중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지하 1층 지상 6층의 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지난 2002년 1월 경매에서 낙찰 받은 대지면적 518.2㎡(약 157평), 연면적 1487.49㎡(약 450평) 건물이다.
정 대표는 “완원빌딩은 방배역에서 사당역 방향으로 가다보면 우측 에 있는 방배중앙로에 위치한 제2종 일반 주거지역에 있으며 시세는 15억원 가량”이라며 “세 문중이 보유한 빌딩 3채 가격을 모두 합치면 420억원대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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