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세상에 농협과 KB국민은행 밖에 없는 줄 알았다. 시골에서 성장한 탓에 고향에서 접할 수 있었던 은행은 그 두 곳이 전부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비슷한 이야기가 돌아왔다. 시골에서 자란 이들은 “광주은행이나 농협은행 정도만 보았다”는 말을 흔히 한다.
특히 지방은 고령층 인구 비중이 높고, 고령층일수록 모바일뱅킹 사용이 어렵다 보니, “걸어서 갈 수 있는 금융 접근성”은 더욱 중요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의 실제 분포 현황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 분석에 사용한 자료는 은행연합회가 제공하는 지방 점포 현황이다. 6월 말 기준 수치를 기반으로 했으니 실제 현황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세종시는 제외했지만, 울산 울주군, 대구 군위군처럼 광역시에 속한 군 지역은 포함했다. 기본 몇 백 개 단위의 대도시보다는 은행이 희박한 군 단위의 점포 분포를 살펴보는 편이 오히려 흥미로웠다.
은행연합회 기준 전국의 은행 지점 및 출장소는 총 5521개다. 이 가운데 전국 82개 군에 설치된 점포는 319개로, 전체의 약 5.7%다.
광역시에 속한 군 지역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은 20개 지점이 운영 중이며, 7개 은행이 진출해 있어 군 단위 가운데 가장 많았다. 부산 기장군은 15개 점포(8개 은행)로 뒤를 이었고, 울산 울주군은 14개, 전남 무안군과 충북 홍성군은 각각 11개 점포가 있다.
다만 10개 이상 점포를 가진 군은 6개 뿐이다. 전국 82개 군 가운데 40.4%에 달하는 33개 군은 은행 점포가 3곳 소재한다. 이 경우 농협은행과 KB국민은행, 혹은 농협과 지역은행이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된다. 또 2개 점포가 존재하는 21개 군(25.6%)은 농협은행 단독으로 점포를 운영 중이다. 4개 점포가 있는 군은 10곳, 5개 이상 점포가 있는 군은 7곳이다.
농협이 없는 곳에는 은행도 없었다. 농협은 전국 82개 군 가운데 81곳에 점포를 두고 있었다. 그 뒤를 KB국민은행(24개 군), BNK경남은행·하나은행·광주은행(각 13개 군)이 이었다. 사실상 농협이 군 단위 금융 인프라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은행 접근성이 열악할 것으로 생각되는 울릉군의 경우에도 NH농협은행 점포가 두 곳 존재한다. 반대로 점포가 단 1곳에 그친 곳은 전남 신안군으로, 역시 농협은행이었다. 아예 은행이 없는 지역도 있는데, 인천광역시 옹진군이다. 옹진군은 인구가 약 1만9000 명이며, 섬으로 이루어진 도서산간 지역이다. 주민들은 인천 미추홀구에 위치한 NH농협은행 옹진군청점을 이용해야 한다. 옹진군청도 옹진군이 아닌 미추홀구에 있어, 은행도 군청도 옹진군 바깥인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배치된 은행 수가 적은 곳에는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 금융기관이 보완하고 있다. 특히 새마을금고는 본점과 지점을 합해 전국에 3200여 개 지점을 보유해 시중은행 가운데 점포 수 1위인 농협은행(1064개)을 크게 웃돈다. 금융취약지역에서 비은행금융기관은 사실상 ‘마지막 방어선’으로 기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법적 성격상 ‘은행’은 아니다. 예금자 보호 제도나 금융감독 체계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이들 기관이 지방의 금융 공백을 보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 있지만 근본 대안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는 주요 은행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점포를 줄이고 있다. 모바일·인터넷뱅킹을 비롯한 비대면 거래가 늘었기 때문이다. 재정 긴축을 위한 합리적 전략이지만, 금융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공공적 역할을 감안하면 이에 대한 대응책도 논의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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