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금리 상승이 한국 증시를 흔들 수 있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엔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일본의 금리 정상화로 해외 투자자금의 흐름이 달라지면서 중기적으로 엔화 강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엔화 강세와 엔캐리 거래 청산이 겹치면 해외 주식 매도와 엔화 매수가 잇따르면서 한국 증시에도 매도 압력이 번질 수 있다.
SK증권은 13일 발간한 ‘사쿠라다: 돌아온 일본 금리와 시작된 국내 재배분’ 보고서에서 일본의 추가 금리 인상보다 글로벌 자금 공급자로서 일본의 역할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오랜 기간 초저금리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자금을 공급해 왔다. 은행과 보험사, 연기금은 높은 수익률을 찾아 해외자산에 투자했고 해외 투자자들도 낮은 금리로 엔화를 빌려 해외 주식과 채권을 사들였다. 그러나 일본은행(BOJ)이 재작년 3월 마이너스 금리와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을 종료한 이후 국내 채권시장의 투자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지난달 3%를 웃돌며 1996년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자국 국채의 투자 매력이 높아진 것이다. 환헤지 비용을 반영하면 미국 국채의 수익률이 일본 국채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일본은행은 월간 장기국채 매입액을 올해 4분기 약 2조3000억 엔에서 내년 4월 이후 약 2조 엔으로 줄일 계획이다. 재작년 6월 말부터 올해 3월 말까지 시장 투자자들의 일본 국채 보유는 약 95조 엔 증가했다.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채권 대신 자국 국채를 선택하면 미국 등 주요국 채권시장으로 향하는 신규 자금이 줄어들 수 있다. 이는 미국 장기금리에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글로벌 주식시장에도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AI·반도체 등 성장주는 금리 상승에 민감하다. 미국 장기금리가 오르면 미래 이익의 현재 가치를 산정하는 할인율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만 SK증권은 해외자산 매각보다 신규 자금과 만기상환 자금의 국내 배분 확대가 먼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일본 국채금리가 오른다고 엔화 가치도 반드시 상승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엔화는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와 달러 강세, 일본의 외화 수요 등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엔캐리 거래가 대규모로 청산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엔화 약세가 이어지면 엔화 차입 투자에 유리한 환경이 유지될 수도 있다.
엔저 속 잠재된 엔캐리 청산 위험… 한국 증시 영향은
한국 증시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경로는 향후 엔화 강세 전환에 따른 엔캐리 청산이다. 엔캐리 거래는 금리가 낮은 엔화로 돈을 빌려 해외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일본 금리가 오르면 차입 비용이 높아지고, 엔화 가치까지 상승하면 상환에 필요한 외화도 늘어난다.
예를 들어 1달러당 150엔일 때 1억 5000만 엔을 빌려 100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가정하자. 환율이 130엔으로 내려가면 같은 원금을 갚는 데 약 115만 4000달러가 필요하다. 자산 가격이 그대로여도 약 15만 4000달러의 추가 부담이 생긴다. 이자와 거래비용은 제외한 계산이다.
차입 부담과 환차손 위험이 커지면 투자자들은 해외 주식이나 채권을 매도하고 확보한 외화를 엔화로 바꿔 빚을 갚는다. 해외자산 매도와 엔화 매수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엔화 가치가 더 오르면 추가적인 해외자산 매도와 엔화 매수를 자극해 연쇄 청산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 증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면 국내 주식도 매도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거래가 활발한 코스피 대형주에도 매도 압력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주는 글로벌 AI 투자와 업황에 대한 기대가 주가에 반영되는 종목이다. 엔캐리 청산으로 미국 기술주의 투자심리가 위축되면 국내 반도체주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다만 영향은 실제 엔캐리 자금의 투자 대상과 환헤지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SK증권은 신규 해외투자가 둔화하면서 구조적인 엔화 매도 압력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엔저와 별개로 중기적으로 완만한 엔화 강세가 나타날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다만 일본 기업의 해외투자 등에 따른 달러 수요가 이어져 엔화 강세 속도는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반면 해외자산 매각대금의 엔화 전환과 환헤지 확대, 엔캐리 청산이 겹치면 엔화 강세와 글로벌 위험자산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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