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뒤에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서 투자금을 회수해야 할 수 있다.
정호철 NH투자증권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은 15일 본지에 “정기적으로 연금을 인출하시는 분들께서는 유의하실 만한 사항이다”고 강조했다. 주가가 떨어져도 인출하지 않으면 회복을 기다릴 수 있지만 생활비로 연금을 찾아 써야 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은퇴자 A씨와 B씨가 각각 1억 원의 노후자금을 마련하고 매년 500만 원씩 인출한다고 가정해 보자. A씨는 첫해 20% 손실을 본 뒤 이듬해 25% 수익을 올렸고, B씨는 반대로 첫해 25% 수익을 낸 뒤 이듬해 20% 손실을 봤다.
두 사람의 누적 투자수익률은 인출금이 없다면 모두 0%지만, 매년 말 500만 원씩 인출했다면 세금을 제외한 단순 계산 시 A씨는 8875만 원, B씨는 9100만 원이 남는다. 손실을 먼저 본 A씨의 노후자금이 225만 원 적은 것이다.
NH투자증권100세시대연구소는 14일 발간한 ‘연금자산 관리의 새로운 방법, 솔루션 펀드 TRF·TIF’ 보고서에서 ‘수익률 순서 위험(Sequence of Returns Risk)’을 은퇴자의 주요 위험으로 꼽고 타깃인컴펀드(TIF)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수익률 순서 위험이란 누적수익률이 같아도 손익 발생 순서에 따라 인출 후 남는 자산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특히 생활비를 정기적으로 찾아 쓰는 은퇴자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정호철 연구원은 “은퇴 전에는 초기 수익률이 나쁘더라도 나중에 회복할 수 있지만 은퇴 후에는 월급 같은 소득이 없어 손실이 난 자산도 생활비 마련을 위해 팔아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자금 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주가지수가 9000에서 6000으로 떨어졌을 때 생활비 때문에 주식을 매도하면 같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더 많은 주식을 팔아야 한다. 이후 지수가 9000으로 회복하더라도 이미 처분한 주식만큼 자산이 줄어든 상태다.
정 연구원은 “인출할 필요가 없다면 주식을 팔지 않고 기다릴 수 있지만 생활비로 매도했다면 이후 주가가 회복하더라도 줄어든 자산까지 복구되지는 않는다”며 “은퇴자에게는 가격 변동뿐 아니라 인출 위험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가 급락에도 버틸 생활비 필요
정 연구원은 은퇴자가 주가 급락에 대비하려면 당장 사용할 생활비를 별도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생활비를 길게는 3년, 짧게는 1~2년 정도 현금이나 안전자산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시장이 좋지 않을 때 위험자산을 팔지 않고 버틸 여유를 만들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타깃인컴펀드(TIF·Target Income Fund)는 은퇴 후 안정적인 현금흐름 확보에 초점을 맞춘 자산배분 펀드다. 주식과 채권, 배당주, 부동산투자신탁(REITs·리츠), 인프라 등에 분산 투자해 이자와 배당, 임대수익 등을 확보한다.
정 연구원은 “TIF는 채권이나 리츠·인프라처럼 자산을 매각하지 않아도 분배금이 발생하는 자산을 활용한다”며 “이런 현금흐름이 있으면 보유자산을 팔지 않고도 어느 정도 유동성을 확보해 인출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TIF도 시장 하락에 따른 원금손실이 가능하며 분배금이 줄거나 원금을 일부 인출할 수 있다. 상품별 운용 방식과 수수료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달 29일 기준 국내 TIF 순자산 규모는 미래에셋자산운용 6462억 원, 한국투자신탁운용 2089억 원 등으로 집계됐다. 월지급식 상품도 있지만 퇴직연금 전체 규모에 비하면 시장은 아직 작은 편이다.
정 연구원은 “TRF와 TIF 모두 TDF만큼 활성화되지는 않았다”면서도 “퇴직연금을 일시금이 아닌 연금으로 수령하는 비중이 늘고 있어 관련 상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 자료를 인용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000억 원으로 처음 500조 원을 넘어섰다. 실적배당형 적립금은 123조3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64% 증가했고 비중도 24.6%로 높아졌다.
지난해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수익률은 3.09%였지만 실적배당형은 16.80%를 기록했다. 투자형 상품의 성과가 두드러졌지만 시장 상황에 따라 원금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NH투자증권은 연금자산을 모으는 ‘축적 단계’와 생활비로 사용하는 ‘인출 단계’의 전략을 구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축적 단계에서는 위험 감내 수준에 맞춰 자산을 배분하는 TRF를, 은퇴 후에는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TIF 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은퇴 후에는 높은 수익률 못지않게 손실이 발생했을 때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주가가 회복되더라도 이미 팔아버린 자산은 되돌릴 수 없는 만큼 투자와 인출 계획을 함께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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