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가입자 A씨는 최근 법인보험대리점(GA)으로부터 보험 가입을 권유하는 전화를 받았다. 설계사는 A씨가 어느 보험사에 가입했는지를 알고 있었다. “내 정보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보험사에서 고객 관리 업무를 위탁받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A씨는 GA에 정보를 제공하는 데 따로 동의한 기억이 없었다. 그렇다면 보험사가 불법으로 정보를 넘긴 것일까.
불법일 수도 있고 합법일 수도 있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업무와 정보에 따라서 달라진다. GA가 보험사의 업무를 대신 처리하는 적법한 위탁이라면 제3자 제공을 위한 별도 동의 없이 고객정보를 넘겨받을 수 있다. 반면 GA가 자체 영업을 위해 정보를 제공받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고객의 제3자 제공 동의가 필요하다.
이때 고객이 정보 제공 대상과 이용 목적 등을 알고 적법하게 동의했다면 GA는 해당 범위에서 보험 가입을 권유할 수 있다. 다만 고객 관리 목적으로 받은 정보를 동의 없이 다른 영업에 활용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보험연구원의 윤기열 연구위원은 18일 발간한 보험법리뷰 ‘보험회사의 개인정보 위탁 관련 법률문제’에서 위탁과 제3자 제공의 경계, 목적 외 이용에 따른 보험사의 책임을 분석했다. 위탁의 형식을 갖추더라도 실제 관계가 제3자 제공에 해당하거나 당초 수집·이용 목적을 벗어나 정보를 활용하면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GA가 고객정보를 누구를 위해 사용하는지다. 보험사를 대신해 정해진 업무를 처리하고 보험사의 관리·감독을 받는다면 위탁에 해당할 수 있다. 반면 GA가 자체 영업을 위해 정보를 활용한다면 별도의 동의가 필요한 제3자 제공인지 따져야 한다. 보험사와 GA가 계약서에 ‘업무 위탁’이라고 적었다고 해서 모든 정보 공유가 합법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누가 정보 이용 목적을 결정하고 관리하는지가 중요하다. GA가 보험사의 자회사라도 예외는 아니다.
고객정보 영업 활용하면 위법 소지
실제 자회사형 GA가 고객정보를 영업에 활용한 사례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불거졌다. 한 보험사가 고객 동의 없이 자회사 GA에 고객정보를 영업 목적으로 활용하도록 허용하자 금융당국이 제재에 나섰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동의 없는 제3자 제공으로 판단했지만, 금융위원회는 최종적으로 고객정보의 ‘목적 외 이용’을 위반 사유로 제시했다.
윤 연구위원은 금융위가 정보 이전 자체는 위탁으로 보고, 이후 영업에 활용한 행위를 문제 삼은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금융위가 판단 근거를 명확히 공개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보험사가 GA에 고객정보를 적법하게 넘겼더라도 마음대로 영업에 활용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고객 관리 업무를 맡았다는 이유로 동의받지 않은 보험 가입 권유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험사에는 고객정보를 맡긴 이후에도 관리 책임이 따른다. 위탁업무와 수탁자를 고객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하며, 상품 홍보나 판매 권유를 맡길 때는 해당 사실을 고객에게 알려야 한다. 다만 이러한 공개·통지가 제3자 제공에 필요한 동의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GA가 개인정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보험사는 위탁계약을 문서로 작성하고 수탁자 교육과 정기 점검을 실시해야 하며 계약이 끝나면 고객정보를 제대로 파기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윤 연구위원은 위탁계약 기간과 수탁자 현황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위탁 종료 후 개인정보 파기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GA가 맡은 업무를 벗어나 고객정보를 활용하면 정보를 맡긴 보험사도 개인정보 보호 의무 위반으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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