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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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대한민국과 CIA’를 지면에 연재한다.
심문은 두뇌 싸움이다
미8군 528군사정보대가 개편되며 이름이 바뀐502군사정보단은 A·B·C 3개 중대로 편성되어 있었다. 내가 A중대는 한·미 합동으로 북한 귀순병·귀순 민간인·자수 간첩·체포 간첩·송환 어부 등을 상대로 심문 작업을 했다. B중대는 미군 단독으로 방첩 활동을 했고 C중대는 미군 단독으로 대북 공작 활동을 주 임무로 하고 있었다.
나는 이 502군사정보단에서 15년 8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약 450명을 상대로 단기간·장기간의 심문 작업을 했다. 그동안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가족을 포함해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으며 철두철미하게 보안을 유지해야 했다. 직업치고는 특수한 직업이었고 참으로 힘들었다. 보안 유지를 위해 외부와의 접촉을 삼가고 대인관계를 조심해야 하는, 고독함을 강요받는 생활이기도 했다.
또한 그 일은 결코 쉽거나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는 천편일률적·기계적인 일이 아니었다. 북한에 대한 전문 사전지식이 있어야 했고 피(被)심문자를 다루기 위해서는 인격적 자질과 예리하고도 심리학적인 감각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모든 심문조서는 3급 비밀 또는 2급 비밀로 취급되었다. 조서는 반드시 육하원칙(六何原則·보도기사 등을 쓸 때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의 여섯 가지 기본 요소를 적용해야 하는 규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세련되고 깔끔한 영문으로 작성해야 했다.
북한에 대한 사전지식이란 공산주의 이론·북한의 건국 과정과 권력 구조·권력 투쟁과 숙청 과정·북한의 정부 구조와 기능·당의 조직과 운영·북한 군부와 전투 능력을 기본으로 하는 정보 지식을 뜻한다. 이와 함께 심문관은 북한의 경제·사회·문화·교육·대남 공작·통일 정책·대외 정책·언어·풍습·인민 생활 수준은 물론 간부들의 비리·지도급 인사들의 개인 신상 문제·사회 갈등·반체제 활동·인권 문제·북한 국내의 치안과 보안 기관의 활동·남북한 비교 등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이와 같은 다양한 기본적 사전지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량살상무기 개발 등 현안 문제를 비롯해 남북 교류·국제관계 등 모든 분야에 대해 많은 것을 상당히 심도 있게 알고 있어야 했다. 이 사전지식이 없으면 상대방이 허위진술을 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판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심문관은 이러한 사전지식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행동과 태도·말과 눈빛·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며 그가 진술하는 내용의 진실 여부를 탐지해야 한다. 또한 피심문자를 대하는 심문자 자신도 진실하고 진지한 태도로 상대방이 마음속으로 반감을 갖지 않고 인간적으로 존경할 수 있게 처신해야 한다. 무식하고 경망스럽거나 진실성이 없다는 인상을 주면 상대방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문관은 논리적이고 조리있는 말로 피심문자와의 대화를 이끌어야 하며 설득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말도 되지 않는 말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문 절차
당시 대한민국에선 귀순병이나 귀순민간인·자수 간첩·체포 간첩에 관한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시로 발생했다. 전방이나 후방에서 이러한 사람이 포착되거나 체포되면 즉시 군·경으로부터 그들을 인도받아 무조건 48시간 이내에 대방동 수용소에 도착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도착하면 다음과 같은 절차로 처리된다. 이것을 502군사정보단에서는 ‘어라이벌 프로세싱(Arrival Processing·도착 절차)’라고 했다.
1)목욕과 건강진단 2)소지품 점검 3)수용소 의복과 세면도구 지급 4)수용소 내에 특별히 마련된 한식당으로부터 식사 제공
이러한 도착 절차를 거쳐 502군사정보단 도착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심문 활동에 들어갔다.
제일 먼저 작성하는 심문조서는 정보단 내부 용어로 ‘지득 범위 조서’라고 하는 K B R (Knowledgeability Brief Report)이다.
KBR에 포함되는 내용은 △인적 사항(Personal Data) △소지품 목록(Items in Possession) △귀순 또는 침투 경로(Route of Entry·Infiltration) △귀순 이유 또는 공작 임무(Reason for Defection·Espionage Mission) △구체적인 경(Chronology) △심문관 평가(Interrogator's Comment) 등이다.
심문관 평가에는 피 심문자의 지능 수준·지식 수준·협조도·일관성과 진실성 여부·긴급 첩보 유무·피심문자 본인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파악해 향후 중점 심문 방향과 피심문자 개인의 성격을 고려한 주의사항 등을 기록한다.
KBR 조서는 작성 후 24시간 이내에 주한 미8군 G-2·주한 미국대사관·미국 CIA·DIA·FBI·NSA를 포함한 여러 정보기관에 보고된다. 한국 측 심문관들도 동일한 내용의 조서를 육군본부 G-2와 육군 정보사령부, 그리고 합동참모본부에 발송했다.
KBR 조서를 접수한 각 정보기관에서는 자신들이 꼭 필요로 하는 특별정보 수집 요청서, 즉 SRI(Special Requirements of Information)를 보내온다. 이 요청서를 접수한 심문관들은 우선적으로 요청서의 내용에 해당하는 심문을 진행한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부대 자체의 기본 지침에 따라 심문을 진행했다.
기본 지침에 따른 심문에서는 먼저 군사정보에 관한 질문을 하고 이어서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심도 있는 심문을 진행한다. 피심문자가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한 사람에 대한 심문 기간은 대개 3∼4개월이다.
심문이 진행되는 동안 심문관은 어떠한 형태로든 피심문자에 대해 정신적으로 또는 언어로 협박을 할 수 없으며 모른다고 하는 내용에 대해 답변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철두철미하게 인간 대 인간의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피심문자가 스스로 협조하도록 유도하게 되어 있다.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기자회견식 일문일답을 피해야 하며 경찰이 취조하듯 “바른대로 말해” 하면서 위압적인 질문을 해서도 안 된다.
심문관과 피 심문자의 관계
심문관이 수행해야 하는 첫 번째 임무는 피심문자와의 인간관계 조성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 어떠한 집단인가 대한민국이 어떠한 나라인가를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또한 그들의 협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해시킨 다음에 민족 분단의 비극을 함께 슬퍼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그들과 손을 맞잡고 퍽퍽 우는 일도 숱하게 있었다.
그런 관계가 조성되면 거의 모든 피심문자들의 태도가 아주 협조적이 되었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그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곤 했다. 그러나 체포된 간첩인 경우에는 협조적일 수도 있지만 끝내 비협조적으로 허위 진술을 반복하는 골수분자도 있었다.
502군사정보단에서의 심문이 모두 끝나면 그들은 대한민국 정부의 검찰로 이관되었다. 이후 법적 절차와 행정 절차에 따라 자유 시민으로 정착이 되거나 간첩일 경우 우리가 알 수 없는 한국 정부의 보안 원칙에 따라 자유 석방이 되거나 실형 또는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체포 간첩 등 심문관들이 판단하기에 실형을 받게 되리라 추정되는 대상의 경우에도 심문 과정에서 충분히 협조를 하고 확실한 전향 의사를 판단할 수 있을 때는 한·미 합동심문관들이 공동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관대한 처분을 청원하는 탄원서를 보내는 것이다. 실제로 이 탄원서가 긍정적인 역할을 해서 자유의 몸이 되거나 형이 감면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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