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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말은 원래 동사였다. 움직이는 것들이 굳어 명사가 된다. 아직 굳지 못한 기억이 동사로 남아 꿈틀댄다. - 작가의 말에서
황정산 시인의 첫 시집 ‘거푸집의 국적’이 출간됐다. 시단에 발 디딘 지 22년 만의 시집이다. 평론가로 이름이 높기에 그가 시인인 줄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는 꾸준히 시를 쓰고 발표해 왔다. 맹렬하달 순 없지만 한 번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은 꾸준함의 시인이다.
거푸집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일정한 형태로 만들기 위하여 굳지 않은 콘크리트를 양생하는 가설 구조물이다. 구조물이 완성되면 거푸집은 거추장스러운 외피가 되어 현장에서 버려진다.
구조물이 완성되면 이름을 얻지만 거푸집은 거푸집이라는 이름조차 잃는다. 시인은 거푸집의 이름과 국적과 행방을 찾아서 불러주는 이다.
“길가 공터에 거푸집이 포개져 있다/ 시멘트 얼룩을 지우지도 못하고/ 잠시 누워 쉬고 있다/ 거친 질감이 상그러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흑단과 마호가니도 아니고/ 삼나무나 편백이 아니라 해도/ 그들도 이름은 있었을 것이다/ 와꾸나 데모도라 불리기도 하지만/ 응우옌이나 무함마드라 불러도 상관은 없다// 어디서 왔는지 누구도 묻지 않는다/ 상표도 장식도 아닌 국적을/ 구태여 말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들도// 타이가의 차가운 하늘을 찌르거나/ 우림의 정글에 뿌리내려 아름드리가 되길 꿈꾸었으리라// 오늘도 도시를 떠받치던 불상의 목재 하나가/ 비계 사이에서 떨어지고 있다// 이제 국적과 이름이 밝혀질 것이다” - ‘거푸집의 국적’ 전문
시인이 던지는 질문들·명령어들·수수께끼 같은 시편들에 독자들은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과 답변과 반박을 내놓을 수 있다. 이 시집은 잠겨 있는 형식으로 열려 있다. ‘거푸집의 국적’은 독자가 그 안으로 들어와 거푸집을 깨부수고 거푸집을 탈주할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아직 오지 않은 잠재태의 시공간 안에 비밀스럽게 그러나 ‘능동적’으로 존재한다. 시집의 비밀번호는 오로지 당신만이 알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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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 ‘반대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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