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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평화는 큰소리로 외친다고 주어지는 게 아니다.
평화는 쟁취하는 것이다. 평화는 누릴 자격이 있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그래서 평화를 지키고자 한다면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전쟁을 잊으면 평화가 깨진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때로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인가 보다. 내가 이런 종류의 글을 쓰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서 말이다.
나는 늘상 글쓰기에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이런 연재 글을 쓸 정도로 부지런하지도 못했다. 글을 써서 여러 사람에게 읽게 한다는 건 나의 상상력 밖의 일이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자서전을 쓸 정도로 빛나는 삶을 살지 못했고, 회고록을 남길 정도로 인생을 오래 살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작은 기록이 실패한 전직 정보요원의 한풀이나 넋두리 정도로 치부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국가정보원에서 근무하면서 알게 된 여러 가지 일들, 직접 경험한 일뿐만 아니라 어깨너머로 보고 들은 일들까지 포함해 그 모든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정보요원의 ‘비밀 준수’ 미덕을 깨뜨리다
정보 종사자들은 재임 중에 지득(知得)한 비밀을 무덤에까지 가지고 가는 것을 미덕으로 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알게 된 사실들은 나 혼자 지고 가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짐이었다.
나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에 눈이 멀어 민족을 배반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또한 우리의 안보 책임자가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발목이 잡혀 국가를 반역하는 광경도 목도했다. 이런 일들은 나는 양심상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몰랐던 게 하나 있다. 나는 김대중과의 싸움이 이렇게 시간을 오래 끌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우리나라 국민이 나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줄 거라고 생각했다. 진리가, 정의가 금세 승리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판단 착오였다.
양심의 소리를 낸 대가… 양치기 소년‧당나귀 이발사 취급
나는 양치기 소년으로 치부되었고, 당나귀 이발사 정도로 취급되었다. 나의 이마에는 배신자라는 딱지가 붙여졌고 내 등에는 음해의 소리가 비수처럼 꽂혔다. 나는 오랫동안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야 했다.
내가 경험한 우리나라는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증오의 공간이었다. 내가 본 우리 사회는 갈가리 찢어지고 갈라져서 도저히 화합할 수 없는 분열의 땅이었다. 진실과 양심과 용기가 조롱당하고 배척당하는 의미 없는 곳이었다.
나는 이제 이 지루하고 외로운 싸움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며 어디서부터 꼬였고 언제부터 접혔는지 되짚어 보려 한다. 아울러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또는 할 수 있을 것인지도 생각해 보려 한다.
앞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부분은 ‘나’라는 인간에 대한 나의 설명이다. 이는 또한 “전직 국정원 직원이 왜 양심선언을 하게 됐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내 나름의 변명‧해명이기도 하다. 물론 국정원에서 내가 보고 겪은 경험이 주요 내용이 될 것이다.
뒷부분은 2003년 이후 내가 공개한 양심선언과 기자회견문을 모은 것이다. 양심선언은 김대중의 노벨상 공작과 대북 송금, 임동원의 간첩 혐의, 국정원의 불법 도청, 김영삼‧김대중 정권의 무기 구입 비리와 비자금 등에 관한 것이다.
양심선언 이후 계속된 국정원의 흑색선전
양심선언 이후 나는 국정원의 치졸하고 어처구니없는 흑색선전에 시달려야 했다. 정신병자라느니, 돈을 노린다느니, 정치권을 기웃거린다느니, 여자 문제로 미국으로 도망쳤다느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 오명에 일일이 대꾸하고 해명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국민들께 직접 설명하고 싶었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가?”를 해명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도청사건이 마무리되던 2005년 겨울 즈음에 대충 원고를 썼다. 원고를 쓰고 나서 여기저기 출판사를 알아보았지만 선뜻 출판해 주겠다는 데가 없었다. 그러다가 간신히 한 신생 출판사를 찾아내 원고를 맡겼는데 어디서 누구로부터 무슨 압력을 받았는지 마지막 순간에 “못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대한민국에서 관(官)이 이렇게 무서운 줄 미처 몰랐다”는 게 출판사가 내게 남긴 말이었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책을 출판할 생각을 접었다.
미국 망명 허가 후 주요 일간지들과의 인터뷰
2년여의 시간이 지난 2008년 4월, 미국 법정에서 나의 미국 망명 허가가 났다. 망명 재판 후 주요 일간지들이 나의 망명 소식을 기사화해 주었다. 일부 주간지들은 심층기사를 게재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김대중의 동교동 측에선 여러 언론사들 중에서 유독 ‘일요서울’만을 골라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했다.
나는 내 문제로 인해 곤란에 처한 일요서울에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뭔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일요서울에 나의 원고를 연재하는 게 어떨지 문의했다. 내 제안은 의외로 선뜻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30회분을 연재했다.
그해 연말, 일요서울은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원고의 연재를 중단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편집국장이 옷을 벗었다. 자세한 사정은 듣지 못했지만 나의 원고와 관련이 있는 듯했다. 그 후 일요서울과 동교동 간에 벌어졌던 명예훼손 소송의 건은 양자 간에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졌다. 지난 10년간의 ‘반역의 세월’에 대해 이명박정부가 뭔가 엄정한 조치를 취해 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끝내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제 연재를 시작하며 몇 가지 밝혀 두고 싶은 점이 있다. 먼저, 이 글은 순전히 나의 기억에 의존해 쓴 것이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나는 국정원을 나올 때 아무런 자료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메모를 해 놓았던 것도 없다. 평소에 저절로 기억되지 않는 일은 기억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기억은 희미해지고 퇴색되어 있었다. 더 이상 기억해 낼 수 없는 것도 있었고, 아예 왜곡된 형태로 기억하고 있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므로 혹시 있을지도 모를 ‘사실관계의 부정확함’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둘째, 이 글에 등장하는 누구에게도 아무런 사적인 감정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한다. 나는 누구를 모욕하거나 폄훼할 생각이 전혀 없다.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가능한 한 누구의 명예도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셋째, 앞으로 이야기할 나의 체험은 순전히 나 개인의 관점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나의 경험이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글로 인해 국정원 직원에 대해 편향된 인상이 심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넷째, 보안 문제를 고려했음을 밝히고 싶다. 보안에 관한 내 나름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국익(國益)이다. 아무리 중요하고 아무리 얘기하고 싶은 내용이라도 알려져서 김정일에게 이로운 내용이라 판단되면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 이 글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전‧현직 국정원 직원의 이름은 실명으로 실었다. 하지만 명예훼손과 보안을 우려해 최소한 한 글자 이상을 가렸다. 이 점에 대해 독자와 당사자들의 특별한 양해를 구한다.
마지막으로, 원고를 준비하는 동안 신세진 분들을 기억하고 싶다. 한국에서 내가 속한 로펌으로 연수를 온 전세준‧백종건 예비변호사는 친절하게도 교정을 봐 주면서 젊은 세대의 시각으로 글의 내용에 대해 조언도 해 주었다. 이분들을 비롯해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에도 원고 작업에 도움을 준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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