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다 할까. 안에, 배에, 손에, 가슴에, 입에? 절정의 순간에 권지호는 침착하고 상냥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의 몸은 멈추지 않았다. 대신 희숙은 조급해졌다. 손이요, 라고 대답했지만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권지호는 여전히 친절했다. 그가 시키는 대로 약수 떠 마실 때처럼 두 손을 모으자 권지호가 그 위에 조심스럽게 정액을 쏟았다. 이러면 씻기 편하잖아. 권지호는 싱긋 웃었고 희숙은 멍하게 자기 손바닥에 담긴 그의 분비물을 바라보았다. 일을 마치고도 권지호는 뒷정리에 충실했다. 희숙을 꼭 안고 머리칼을 쓰다듬었고 얼굴을 어루만졌다. 섹스가 끝나면 “피곤하다, 나 좀 잘게” 하고 이내 스르르 코를 골아 버리는 변태섭과 달랐다. 입술 사이로 그의 손가락이 지나갈 때 희숙은 그만 혀로 그걸 핥을 뻔했다.
“뭐 먹고 싶니?” “떡볶이요.” 권지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선선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마침 나도 칼칼한 게 먹고 싶었어.” 막상 권지호가 희숙을 데리고 간 곳은 이태리 식당이었다.
여기 파스타가 맛이 떡볶이랑 비슷해. 이상한 남자다. 멋대로인데 그렇다고 멋대로도 아니고. 맛은 권지호가 장담한 대로 시장 떡볶이와 비슷했다. 이틀 전에 권지호와 먹었던 해피 타임 떡볶이. 일주일 전 오전 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마주 오던 권지호가 지나치며 무심한 듯 물었다.
“그런데 자기는 전공이 뭐야?” 하마터면 영문학이요, 대답할 뻔했다. 희숙은 이게 무슨 상황이지? 분명히 희숙의 전공이 뭐냐고 물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그렇게 숨겼는데,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권지호가 어떻게 알았을까? 희숙은 불안했다. 동료들과 잘 지내고 있었고 노동조합 설립 필요성을 조금씩 알리면서 조합원을 구성하고 있었다.
일월 내 노조 설립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희숙이 주워들은 소식처럼 전달했고 관심 가질 만한 동료들과 어울리며 정보를 흘렸다. 주변 사업장마다 다 노조가 설립돼 노동자 편익이 향상되는데 우리만 없으면 손해 아닌가?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동료들 사이에서 나오는 볼멘소리는 시기가 다가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었다.
희숙은 권지호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간단한 조례가 끝나자마자 권지호가 있는 영업부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창문으로 보니 권지호가 인스턴트커피 봉투를 들고 탕비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희숙은 노크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탕비실에서 컵을 들고 나오던 권지호와 눈이 마주쳤다. “어? 고금화 씨, 어쩐 일? 무슨 할 말이라도?” 희숙은 슬금슬금 권지호 옆으로 다가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 떡볶이 사 주세요. 해피타임 떡볶이요.”
권지호는 콧잔등을 찡긋하더니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응. 알았어, 해피타임. 오늘은 내가 약속 있으니 목요일 어때?” 희숙이 괜찮다고 응답하니 권지호는 들고 있던 커피를 희숙에게 건넸다.
“이거 좀 전에 막 탄 거야. 자기가 마셔. 오늘도 해피타임, 고구마 파이팅!”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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