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가 나흘째 이어지며 국가 행정 전산망 마비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29일 자정 기준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전체 647개 행정정보시스템 가운데 복구된 것은 39개에 불과하다. 96개 시스템은 전소돼 대구 분원 클라우드 존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어서 최소 2주 이상 복구가 지연될 전망이다.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 정부24, 국민신문고, 나라장터, 무인민원발급기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서비스가 사실상 ‘먹통’이 되면서 현장에서는 ‘민원 대란’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 불편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일부 주민센터에서는 전산망이 복구되지 않아 수기 접수를 받고 있으며, 고용·복지 서비스 지급이 지연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전국 화장시설 예약 서비스 ‘e하늘장사정보시스템’ 접속이 제한돼 유족들이 개별 화장장에 직접 문의해야 하는 상황도 빚어졌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홈페이지마저 중단돼 이메일로 침해 신고를 접수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6일 화재 직후 청와대 상황실에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한 데 이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사태 수습을 지휘했다.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국민께 송구하다”며 취임 이후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이어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밤을 새워서라도 조속히 복구해야 한다”고 지시하면서 “공직자는 국민의 불편을 자신의 불편으로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29일에도 대통령은 관계 부처에 “화재 원인과 관리 부실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즉시 마련하라”며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석 국무총리 역시 27일 밤 화재 현장을 찾아 소방·경찰·행안부 관계자들과 긴급 점검 회의를 열고 “국민 생활과 직결된 핵심 시스템이 멈춘 중대한 사안”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남은 장비와 데이터가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투입하라”며 백업 데이터 전환과 임시 서비스 개통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시했다. 총리는 이날 오전에도 다시 현장을 점검하며 “행정 공백이 길어질수록 국민 불신이 커진다. 완전 복구까지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공방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야당은 이번 사태를 “총체적 무능”으로 규정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이날 인천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에서 “국민 생활에 심각한 구멍이 뚫렸다”며 “국가 핵심 인프라 관리가 이토록 허술하다면 어떤 위기에도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직격했다. 같은 당 박성훈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국민이 원하는 건 변명이 아니라 책임”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대통령의 사과는 결국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는 유체이탈 화법처럼 들렸다”며 “현 정부가 내세운 ‘디지털 행정 선진화’가 구호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도 이날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주 4.5일제 같은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던 대통령이 정작 위기 상황에서는 밤샘 복구를 지시하고 있다”며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정부의 민낯”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국민에게 달콤한 약속만 내세우면서도 기초 행정 안전망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모순”이라며 “정부 시스템 가용성과 지리적 이중화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화재를 ‘예고된 참사’로 진단한다. 백승주 한국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이날 출연해 “리튬이온 배터리는 전국에서 하루 평균 두 건의 화재가 발생할 정도로 위험하다”며 “서버와 배터리를 같은 공간에 둔 것은 설계 단계부터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폐기 작업에 아르바이트 인력이 투입된 사실도 드러났다”며 관리 부실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